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강론자료

연중 07 주일-나해-2000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0-02-19 ㅣ No.188

연중 제 7 주일 (나해)

          이사야 43,18-19.21-22.24ㄴ-25       2고린 1,18-22     마르코 2,1-12

     2000. 2. 20.

주제 :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교우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연중 7주일이고, 본당의 설립 6주년을 기념하는 축제의 하나로 정월 대보름을 지내고 여러 곳에서 하는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예로부터 잔치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려야 제멋이 난다고 했읍니다.  정말로 바쁘다거나 다른 약속이 있어서 가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축제에 정성이 깃든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모습을 통해서 고양동 성당이라는 공동체의 분위기도 살아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우리가 미사를 통해서 들은 성서 말씀의 내용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힘든 것을 우리가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다짐하고, 그 다짐을 실천하는 전환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먹고사는 것, 남들에게 봉사하는 것, 내 목숨을 바쳐 대신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과 그가 처한 입장에 따라서는 각자 어렵고 힘든 일들이 따로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그 질문에 답을 알려줍니다.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바로 ’용서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사람마다 할 수 있는 이유와 핑계는 다양하겠지만,  사람은 용서에 참으로 인색합니다.  모르기는 해도 ’용서하는 일’에 진정으로 우리의 속마음을 함께 담고 싶은 지 않아서 그럴 것입니다.  용서란 말로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우리의 마음을 담아야 하는 것이며, 마음을 담는 일뿐만 아니라, 다음 순간 이후에는 같은 기억에서 탈출하려는 노력을 두 배, 세 배 이상으로 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담스럽기 때문 일 것입니다. 용서는 단순히 입으로 한번 외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모를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는 말을 우리는 씁니다.  그 마음과 생각을 조절 할 수 있어야만, 오늘 하느님이 전례를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뜻을 익히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나눠주는 일에 도움되는 일없던 사람이 원래 말은 더 많이 하는가 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항상 원칙(原則)을 강조합니다. 일이 그렇게 처리되면 원칙이 깨진다는 것이죠. 그러나 혜택을 입는 사람이 자신이라면, 또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생각은 달라질 것입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과거의 깨끗하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공천 반대가 되었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설 생각은 하지 않고, 그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드러내놓고 말합니다. 세월이 흘러 잊혀지길 기대하는 눈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돼서는 안될 것이 우리 사회에는 있읍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 매개체로 우리 신앙인들이 활동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안위(安危)만을 내세워 그 뜻을 거부하는 무리에 속해있지는 않은지 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왜곡된 심성에 한번 화를 내신 예수님은 그들이 알아듣는 대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선언하십니다.  하느님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이들은 그렇게 말하면 하느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리고도 죄를 짓지 않으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읍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을 깰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세상 모든 일은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하느님을 바라보는 대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기억하고 행동합니다.  하느님은 흘러간 일에 우리의 마음이 묶여 있기를 바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건은 항상 있는 법입니다. 하느님이 시작하시는 새로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과거의 잘못이 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는 말로만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고 훌륭한 일이지만, 하느님에 대해서 갖는 생각도 제대로 해야 할 필요가 있읍니다. 하느님을 기억하되, 우리를 처벌하시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바라보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해도 그저 모든 것을 다 참아주시는 분이겠지 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을 담은 생각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이 이야기는 여러분이 하느님을 무조건 두렵고 피해야 할 분으로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바라보되 자신감 있고 떳떳하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은 ’용서’입니다. 용서는 우리가 부족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곧게 설 수 있게 해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그러나 그 힘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길로 찾는 사람, 올바르게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에게 찾아볼 수 있는 힘이고 삶의 기둥입니다.

 

이제 만 6살이 되는 우리 고양동 성당의 공동체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귀한 선물을 나누어주는 곳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48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