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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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148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1818-1840, 부인, 기해박해 때 참수)

 

 

서울에서 태어난 최영이(崔榮伊) 바르바라는 어려서 아버지 최창흡 베드로와 어머니 손소벽 막달레나의 모범을 따라 입교하여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20세 때, 상처한 조신철(가롤로)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최영이는 친정으로 피신해 있다가 6월에 친정식구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체포될 때 어린 아들을 생각하는 모정으로 인해 배교할까 두려워 아들을 친척에게 맡겼다. 남편이 중국에서 가져온 교회서적과 성물 때문에 포청에서 두 차례의 주뢰와 태장 260도를 맞는 혹형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고 형조에서도 3차의 형문을 이겨내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1840년 2월 1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22세의 몸으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 성 조신철(趙信喆) 가롤로는 남편.

- 성 최창흡(崔昌洽) 베드로는 아버지.

- 성녀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는 어머니.

- 성 최창흡(崔昌洽) 베드로, 성녀 손소벽(孫小碧)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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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남편 그리고 베네딕타(현경련)가 모두 순교하였으니 내 마음이 어찌 안온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천국을 생각하면 스스로 위안을 받고 이 은혜를 천주께 감사하게 됩니다"라는 옥중 편지를 남긴 최영이는 순교자인 최창흡과 손소벽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성이 순량하고 총명하였던 바르바라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들이 출가시키려 하자, "지위나 재산은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저 열심하고 글을 많이 배운 교우와 혼인했으면 좋겠어요."하였다. 이리하여 마부이던 조신철(44세)과 혼인하였다. 그녀는 열성적인 교우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였고, 서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깊이하고 선행을 하도록 격려하였다.

 

기해 박해가 일어나자 친정으로 피신해 있던 바르바라는 1839년 5월 체포되었다, 체포될 당시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모정으로 인해 배교할까 두려워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아들을 친척집에 맡겼다. 남편이 중국에서 가져온 교회서적과 성물 때문에 매우 심한 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바르바라의 굳건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포장이 배교하고 신자들의 이름을 대라고 했을 때, "차라리 죽을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동범자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포장은 더욱 심하게 고문하였으나 바르바라는 이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이겨내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스물두 살 때인 1840년 2월 1일 두 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치명하였다. [경향잡지, 199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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