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ㅣ 봉헌생활
유럽 수도원 기행: 독일 도나우 계곡의 보이론 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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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수도원 기행 6] 독일 도나우 계곡의 보이론 수도원
시간이 지날수록 협곡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양편에 산이 늘어서 있고, 기찻길 옆으로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 이름이 도나우탈 즉 도나우 계곡이었다. 이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장장 2천 8백여 킬로미터를 달려 흑해 연안으로 빠진다. 그러니까 보이론 수도원은 도나우 강의 발원지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멀리서 산위에 서 있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오자, 독일 수사들이 다 왔으니 내릴 준비를 하란다. 역 이름도 수도원 이름과 같이 보이론이었다. 젊은 수사 두 명이 우리를 마중하러 역에 나와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던 메토디오 수사였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수도원 앞에는 조그만 동네가 있었다. 예전에는 수도원을 찾는 순례객들이 워낙 많이 밀려들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한때 이 동네도 북적거렸을 것이다.
수도원은 여느 독일 수도원들과 같이 깔끔했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원래 수도원 건물은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지어지지 않았다. 1802년까지는 이 수도원의 주인은 아우구스티노회 수사들이였다. 나폴레옹 전쟁 때 그들이 쫓겨났고, 1863년 마우로 볼터와 플라치도 볼터 형제가 텅빈 수도원을 접수하여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하지만 보이론에 갓 자리 잡은 베네딕도회원들은 1875년부터 1887년까지 불어 닥친 문화투쟁(Kulturkampf)에 된서리를 맞고 수도원을 빼앗겼다. 그 후 장소를 옮겨 기회를 엿보며 수도생활을 하던 수사들이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왔고, 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하여 보이론 연합회가 결성되었다. 보이론 연합회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베네딕도회 총연합에서 매우 비중 있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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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회 연합회 연구주간을 지도하던 저스틴 아빠스는 감탄을 마지않는 우리를 보고 이렇게 보이론 수도원을 좋아하는 그룹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이론 수도원에서 자고 오기는 우리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그룹들은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제공해주는 버스를 타고 왔다가 점심만 먹고 휑하니 돌아갔으니, 뭘 느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이론 수도원을 좋아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수도원 손님의 집에 들어섰을 때, 풍성하게 차려진 음료와 다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과가 끝날 무렵 아빠스께서 오셔서 환영 인사를 했고,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맥주와 음료수를 많이 넣어놨으니, 마음껏, 그것도 공짜로 마셔도 된다는 말을 남기고 들어갔다.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는 보이론 수도원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가서도 약간 불편하게 지내다 오겠거니 예상했던 참가자들의 예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우리가 맥주를 공짜로 얻어 마시게 되어 보이론 수도원에 혹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따뜻한 환대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따뜻한 환대가 돋보였던 부분은 사실 공짜 맥주가 아니었다. 다과를 들고 나서, 수도원을 돌아볼 때였다. 우리는 성당을 둘러보고, 성당 지하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역대 총아빠스들의 무덤이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그중 유독 한 무덤 앞에만 꽃병이 놓여 있고, 촛불이 켜진 촛대 두 개가 세워져 있었다. 누구의 무덤인가 라틴어 비문을 들여다보니, 일데폰스 쇼버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분은 바로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가 갑자기 상트 오틸리엔을 떠나 버렸을 때, 사후 수습을 위해 시찰관으로 왔다가, 형제들의 간청으로 장상직을 수락하여, 상트 오틸리엔 선교원을 베네딕도회 수도공동체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수사들이, 우리의 방문에 맞추어 미리 그분의 무덤을 꾸며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주일 미사 중에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독서가 영어로 낭독되었고, 신자들의 기도 역시 영어로 드려졌다. 정말로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그들의 살뜰한 마음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보이론 방문은 우리를 아주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고, 연구주간 막바지에 가졌던 나눔 모임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보이론 수도원에서 받은 인상을 이야기하였다. 비록 다른 유럽 수도원만큼 유서가 깊지는 않았지만, 보이론 수도원은 시대에 맞는 문화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돋보이고, 따뜻한 환대의 정신이 살아 있는 공동체였다. 그리고 공동체 전체가 아름다운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미사 복사를 하는 연로한 수사들의 웃는 낯도 눈에 어렸고, 한 목소리가 되어 부드럽지만 힘찬 노래 소리도 귀에 울렸다. 그렇게 잘 준비된 전례가 강력한 선포가 된다는 사실은 성당을 꽉 채운 신자들이 증명해 주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은 공동체 구성원의 노령화와 감소이다. 물론 나이와 머릿수가 공동체 수도생활을 하는 데 절대적이지는 않겠지만, 이런 수도원이 더욱 융성해져서, 거기에서 흘러넘치는 에너지가 교회를 쇄신시키고, 세상을 교화하는데 큰 몫을 해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분도, 2009년 가을호, 글 · 사진 고진석 이사악 신부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0 1,602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