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3일 (목)
(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성미술ㅣ교회건축

바실리카의 여러 부분들1: 안마당, 주랑, 현관, 정면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5 ㅣ No.77

[전례 상식 / 교회건축] 바실리카의 여러 부분들 (1)

 

 

안마당, 주랑, 현관

 

초기 그리스도교의 바실리카는 오늘날처럼 예배를 위한 공간과 여러 목적을 위한 부속건물들의 복합건물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전례의 기능에 따라 지정된 공간들의 총체였다. 공동체를 여러 부류로 분류하고 전례거행 중에 각 부류에 맞는 고유한 자리를 배정하면서 예비자들을 위한 공간을 성당 문앞에 배치하고,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안쪽에서 성찬례 거행 전체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구조의 가장 공통적인 공간은 3면 혹은 4면의 주랑으로 둘러싸인 지붕이 없는 넓은 공간인 안마당(atrio)이다. 이 안마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 이래 그 예를 조금밖에 찾아볼 수 없는 시리아와 북부 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지중해 지역에서 넓게 나타난다.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주랑(portico)들은 담장으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거나 담장없이 개방되어 있으면서,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지붕으로 덮인 긴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안마당의 중심에는 보통 정화의 목욕을 위한 욕조 같은 구조물(cantharus)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곳에는 욕조 대신에 분수나 한쪽 벽면에 샘을 만들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유럽의 여러 성당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안마당의 분수나 연못은 그저 조형미를 더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은 아니다. 로마에서는 이러한 성당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클레멘스 성당은 대표적인 예이다.

 

어떤 경우에는 내부의 마당을 잘 가꾼 정원처럼 만들어 놓은 곳들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낙원의 인상을 주려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서구의 많은 수도원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chiostro). 이후 세기를 거듭하면서 초기 바실리카의 안마당이 가지고 있던 전례적 기능은 사라지게 되었다.

 

동방의 많은 바실리카들은 안마당을 대신하는 현관(propileo, nartece)을 만들었다. 많은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이 새로운 양식의 넓은 공간은 이전의 안마당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입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어쩌면 이것은 고전적인 양식을 모방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이러한 고전적인 구조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성당 구조에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오늘날 우리 한국 가톨릭 교회의 성당들도 대개는 커다란 마당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것이 성당 건물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과연 성당으로 수렴되기는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쩌면 마당은 성당과는 전혀 별개의 공간이고, 오히려 마땅히 중심을 이루어야 할 성당에서 신자들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역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간다.

 

성당을 짓고 남는 자투리 땅을 마당으로 쓰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마당이 어떤 전례적인 기능을 수행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 그러나 주랑 또는 현관은 마당을 대신하는 전례적인 공간인 만큼 그러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고려해야 한다.

 

연못이나 분수 등이 가지고 있던 정화의 기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예를 우리 나라의 산사(山寺)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니 우리 나라의 산사는 서구의 어떤 성당보다도 더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본당인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저절로 정화되어 본존(本尊)을 뵈옵는 것이다. 제일문을 들어서 사천왕문을 지나면 내[川]를 만나기도 하고 보통으로는 연못을 만난다. 그 물소리를 들으며 가슴속에 타오르는 욕정을 진정시키고 씻어내면 연못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오르면 본당에 이른다. 이쯤이면 본존을 뵈올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네 성당은 어떤가? 그것을 다 살려내지는 못하더라도 성당을 들어서기 전의 입구 현관(기둥이 없어 ‘주랑’이라고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과 그곳에 놓일 성수대로 어떻게 그 뜻의 일부라도 살려낼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입구의 현관은 다만 출입을 돕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현관은 성당의 밖과 안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즉 세상에 속한 것과 하느님께 축성된 것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당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기에서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 생각과 원의, 탐욕과 근심, 미움과 질시의 마음을 모두 떨어버리고 깨끗하게 되어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현관의 넓은 공간은 다만 건축학적인 의미나 출입의 편리를 넘어서 전례적 기능 수행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출입하는 신자들에게 정화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세례대를 설치하거나 성수반의 형태를 독특하게 하고 그것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은 사목적으로 크게 유익함을 가져다 줄 것이다.

 

 

정면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정면은 매우 단순했다. 정면의 아래쪽으로 하나 혹은 세 곳에 문이 있어 입구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위쪽에는 중심에 두 쪽 혹은 그 이상의 커다란 창이 나있고, 어떤 경우들에는 양쪽 끝 위쪽으로 두 개의 창이 따로 나 있어 내부로 빛을 제공하고 또 길고 넓은 표면이 주는 지루함을 차단하는 기능을 갖게 하기도 했다. 어떤 지역들에서는 기둥 위의 문양돌(돌림띠, trabeazione, entablature) 부분의 배내기(cornice)는 문틀과 아치로 장식하여 옆으로 길게 벽 측면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돌이 주는 중량감을 완화시키며 리듬을 주려고 한 것이다.

 

바실리카의 정면(facciata)은 기능적이기보다는 미적인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정면 앞에 안마당이나 그 밖의 부속 건축물이 있으면 정면이 지닌 미와 가치는 그만큼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정면의 미를 강조해 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출입문으로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때 출입문은 측랑 쪽으로 난 문을 이용한다.

 

또 안마당(atrio)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성당들은 정면의 아랫 부분을 긴 벽면 대신에 개방 양식의 기둥들로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출입문 대신에 매우 큰 규모의 아치형 기둥들로 주랑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처럼 교회의 정면은 출입문 이상의 뜻을 지닐 수 있다. 이곳은 교회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보여주는 교회의 얼굴인 만큼 다양한 조형미와 장식미를 통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교회로 이끄는 또 다른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향잡지, 1995년 3월호, 김종수(주교회의 사무차장, 본지 주간, 신부)]



2,18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