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진리를 찾아서: 성품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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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찾아서] 성품성사 (1)
삶에서
사제 서품식에 참석할 때마다 가슴 뭉클하게 느끼는 순간이 있다. 학장신부가 수품 후보자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면 부제들이 “예, 여기 있습니다.”(Adsum.)라고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때다. 성경의 모든 부르심과 응답이 바로 여기서 재현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신학교에서 양성자로 있으면서 공부 못한다고 신학생들을 꾸짖기도 많이 했고, 젊은 혈기와 열정에 분을 삭이지 못해 화를 내고는 후회한 적도 많았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왜 그렇게도 많이 남던지.
나 또한 ‘앗숨’ 하며 부르심에 응답하고 사제의 삶을 시작하였지만, 어느 순간 ‘앗숨’이 ‘한숨’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예, 여기 있습니다.’라는 환희와 열정의 응답이 ‘왜 접니까?’라는 불평불만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앗숨’에 담겨 있는 ‘제가 가겠습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라는 적극성이 온갖 핑계와 이유를 들어 외면하거나 포기하는,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한숨’으로 점점 변해 가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신학생 때는 ‘주님, 저를 보내 주소서, 당신이 아파하시는 곳으로.’라고 노래를 곧잘 불렀건만, 요즘은 당신이 아파하시는 곳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만 눈길이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초심을 유지하기란 이렇게 어려운가 보다.
다가가기
성품성사(聖品聖事)에는 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의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지난날에는 신품성사(神品聖事)라고 불렀는데, 신품이라는 말이 사제(신부)품만을 뜻하고 다른 품계들은 포함하지 않기에 특별히 사제품을 구분해 써야 할 경우 외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성품성사가 이루어지는 예식을 서품식(敍品式)이라고 부른다. 서품이란 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을 주는 예식의 성사적 행위에만 사용되는 용어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단순한 지명이나 위임, 임용 등에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서품식의 핵심적인 행위는 주교의 안수와 축성 기도로, 이는 서품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 표징이다.
주교품은 특별히 선발된 신부에게 서품으로 주교직을 수여하는 것이다. 가끔 누가 주교품을 집전하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모든 성품성사의 집전자는 주교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0항 참조). 따라서 주교품도 주교가 집전한다.
주교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교구 안에서 신자들을 거룩하게 하며, 가르치고 다스리는 직무를 수행한다. 주교품을 ‘충만한 성품성사’, ‘거룩한 봉사 직무의 정점’이라고 부르는 것처럼(가톨릭교회 교리서, 1557항 참조) 주교들은 자기가 받은 성령을 통해 신앙의 진정한 참스승, 대사제, 목자가 된다.
한국 교회에는 추기경 한 명과 대주교 두 명을 포함하여 모두 스물일곱 명의 주교들이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다(2017년 8월 30일 현재). 추기경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주교품을 받아야 하며, 추기경은 성품성사를 통해 수여되는 별도의 품계가 아니라 교황이 자유롭게 선발하는 것이다. 추기경들은 특별히 지상의 최고 목자인 교황의 사목 직무를 보좌하는 일을 수행하며, 교황이 공석일 때는 교황 선거를 준비하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사제품을 받은 신부들은 주교의 협력자로서, 주교에게서 파견되어 자신이 맡은 소임지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하며, 신자들을 사목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사제들은 오직 주교에게 속하고 주교와 일치를 이룰 때에 비로소 그들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
사제품을 받으려면 각 교구 성소국이 운영하는 사제 지망자와 성품성사 후보자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세례받은 뒤 신앙생활이 적어도 3년은 넘어야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101조 참조). 또한 신학교 과정 안에서 독서를 봉독할 자격을 얻는 독서직, 제단에 봉사할 수 있는 시종직, 그리고 성품성사인 부제품을 받아야 한다.
부제품은 부제의 명칭인 ‘diaconus’에서도 알 수 있듯이 ‘봉사의 품계’로, 오직 봉사 직무를 위하여 안수를 받는다. 사제품은 주교 다음에 모든 사제가 후보자들에게 안수하여 사제단의 일치를 드러내지만, 부제품은 오직 주교만 부제에게 안수하여 그가 특별히 주교에게 속해 있음을 강조한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부제품이 사제직을 준비하는 품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시적인 부제직뿐만이 아니라 사제품을 받지 않는 지속적인 부제직도 있는데, 이를 ‘종신 부제’라고 부른다.
기혼이나 미혼 남자들에게 수여되는 종신 부제직은 본당 전례에 봉사하거나 주교나 신부를 대신하여 교회 공동체를 지도하고, 사회사업이나 자선 활동을 통해 봉사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한국 천주교회는 이 종신 부제직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성품성사를 받는 사제는 교구 사제와 수도회 사제로 나뉜다. 교구 사제는 교구 성직자로서 자기 주교 아래에서 소속 교구에 봉사한다. 또한 교구 사제단을 이루어 주교와 함께 교구 전체의 영적 선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수도회 사제는 수도회에 입회하고 사제로 양성되어 사제품을 받거나 또는 사제품을 받은 뒤에 입회하여 수도 서약을 한 수도자이다. 교구 사제이든 수도회 사제이든 모두 주교의 협력자이며 자신의 소명과 은총에 따라 온 교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교회헌장, 28항 참조).
살펴보기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발표한 「현대의 사제 양성」(Pastores dabo vobis)은 급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사제 양성의 총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문헌이다. 이 문헌은 참된 목자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제의 영성 생활을 활기차게 해 주고 이끌어 주는 힘, 즉 내적인 원칙은 ‘목자로서의 사랑’입니다. … 이러한 목자로서의 사랑에서 필수적인 것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 즉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모범을 좇아 자신을 교회에 온전히 내어주는 것입니다. … 바로 목자로서의 사랑 때문에 사제직 수행이 ‘사랑의 직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23항).
직무 사제직은 신자들에게 봉사하고자 받은 거룩한 권한이지만, 그 바탕에는 목자로서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성품성사는 가르치고, 예배드리며,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하는 성사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성덕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성덕이란 모든 영혼을 남김없이 사랑하는 것이며, 그들을 대신해서, 또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다.
결심하기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공부했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수업 중의 하나가 ‘성소 사목’(Pastorale Vocazionale)이라는 과목이다. ‘아마데오첸치니’라는 카노시안회의 수사 신부님이 가르치셨는데, 처음에는 명칭만 보고 사제와 수도자의 성소자를 많이 모으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과목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과목의 핵심 내용은 세상의 모든 사목은 ‘부르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르시는 분이 주님이신데 세상에 거룩하지 않은 부르심이 어디에 있냐며, 우리 신앙의 출발점은 부르심과 응답의 도식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교는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종교’이다. 이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바로 ‘신앙’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잘나거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부르신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혼인 성소든 사제성소든, 그리스도교의 모든 부르심의 출발점은 사랑이다. 내가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실천하는 것과도 같다는 점을 꼭 명심하자.
* 박종주 베드로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장으로 일하며 차별화된 가톨릭 평생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학교에서 교리 교육을 가르쳤다. [경향잡지, 2017년 9월호, 박종주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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