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2006-11-01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11-01 ㅣ No.853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묵시 7,2-4.9-14     1요한 3,1-3          마태 5,1-12

      2006. 11. 1. (수)  무악재

주제 : 죽음 너머의 세계

오늘은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입니다.  아주 오래 세월 전, 보니파시오 교황이 건축한 성전을 봉헌하면서 정한 축일에서 시작됐습니다만,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한번은 반드시 만나야 할 죽음너머의 세계에서 이루어질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축일이기도 합니다.


죽음 저 너머의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거기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곳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 그곳의 소식에 대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 너머의 세계가 아닌 경우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전달을 쉽게 받아들이고 인정합니다.  내가 지금 시간이 안 될 뿐이지, 나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지식이나 태도를 신앙사회에 적용할 방법은 없을까요?  질문은 쉽지만 대답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세계의 너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믿음과 신앙뿐입니다.  신앙이나 믿음은 매 순간 경험에 의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경험세계를 유지하게 하는 또 다른 세상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세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한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어설프게 보거나, 세상의 기준에서 바라본다면 전혀 행복할 구석이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은 교회에서 2000년 가까운 세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존해온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세상에서 통용되는 기준으로 바라보는 행복과 신앙에서 말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준을 따라 사는 것이 옳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 행복에 대한 것은 묵시록에 나오는 말씀과도 비슷합니다.  요한사도와 원로의 대화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자기들이 입고 있던 옷을 어린양의 피에 빨아서 희게 만들었다!’는 말은 세상의 논리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말씀을 읽고 들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죽음 너머의 세계가 있다면, 그곳이 어떤 곳일지, 거기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떤 생활일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렇게 알 수 없는 세상을 그리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바쳤고, 교회는 그분들을 기억한다는 것이 신기할 뿐일 것입니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꾸고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와 앉아있는 우리가 갖는 생각이나, 그 생각 너머의 세상은 어떠하겠는지 올바로 살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세상을 기대하십니까?



59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