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대림 1 주일-나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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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11-28 ㅣ No.164

대림 1 주일(나해)

          이사 63,16ㄴ-17.19ㄴ; 64,2ㄴ-7      1고린 1,3-9    마르코 13,33-37

     1999. 11. 28.

 

주제 : 하느님이 오시는 때

 

교우 여러분,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무척 추워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의 마음까지도 추운 것은 아니겠죠.

날씨가 추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웃의 이익을 위한 것이나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자세도 날씨 따라 얼어버렸다면 그것을 가리켜 추워졌다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마음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추워진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으로 삭막하고 살맛 나지 않는 곳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는 오늘 하느님 앞에서 다짐하는 새로운 마음으로 마음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덥히고 이곳을 물러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대림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시기는 우리가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우리가 이웃을 향해서도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지난 해 이때쯤에도 대림절을 맞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성탄절도 지냈고,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셨다고 기쁨에 넘친 시간을 지냈습니다.  그렇게 그 기쁨으로 한 해를 지내고, 우리는 다시 그분을 맞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보다 나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시기를 알아서 제대로 움직이는 것은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새로운 해를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한 해는 달력에 남아있는 날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맞는 하루하루는 늘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어제와는 전혀 다른 아주 특별한 날일수도 있습니다.  해가 뜨는 시간도 비슷하고 지는 시간도 비슷한 데, 그 하루의 길이도 24시간 변함이 없는데, 무엇이 다른 결과를 맺게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 자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겠다는 자세, 나 혼자만의 이익을 생각하고 큰소리 치지 않겠다는 자세, 부족한 내 힘을 도와주시라고 기도할 줄 아는 자세가 남다른 결실을 맺게 하는 힘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대림시기는 2000년 대희년을 올바로 준비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한달 남짓 남겨놓은 올해의 남은 기간을 지내며 우리가 갖는 마음의 자세에 따라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주는 분으로 드러날 것인지,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한 주간을 성실하게 산 다음, 듣는 하느님의 말씀은 항상 기쁨과 활력을 갖고 살게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는 누구나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 하고 질문한다면, 세상에 사람이 많은 것만큼 우리 각자가 표현하는 삶의 모습이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삶에 늘 기쁨이 찾아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과 불행이 아주 가까운 친구라는 것을 압니다.  어제까지 어렵고 힘든 생활을 했다가도 오늘 갑자기 일이 잘 풀려서(?) 만족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 상황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바로 조금 전까지는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봄바람에 눈 녹듯이 그 마음을 바꿔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행복과 불행, 만족과 불만, 열심히 사는 것과 엉터리로 사는 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아주 가까운 친구라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노력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행복과 만족을 가까이 붙잡아 놓고 살 수 있는지 그 모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복잡한 생각을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본받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그 길에 충분히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첫 번째 독서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습니다.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면서 느끼는 점 한가지는 옛날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대의 우리도 삶에서 잘못을 범하지만 우리는 거짓말하고 변명하며 ’자신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무진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기를 간절히 원했던 예언자의 선언은 그래서는 잘못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 바로 그곳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이런 자세로 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 오래 전에 선언됐던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던 것이고, 예수님이 오셔서 활동했지만 그 결실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던 것이고, 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자신들만을 위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두 번째 독서에 나오는 것처럼, 새로운 삶의 자세로 하느님의 자리를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인간으로 마땅히 할 일을 다 할 때, 하느님은 삶의 축복으로 응답해 주신다고 바울로 사도는 강조합니다. 현명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대림절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들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기다림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슬픈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은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는 행동입니다.  내가 기다리고 바라는 대상이 오면, 나는 어떻게 보일까?  아니 내가 바라는 대상이 왔을 때, 내가 그에게 기쁨이 되고, 그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우리는 생각할 것입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살라는 말씀은 아니지만, 참된 기쁨을 위해서는 올바르게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대림 첫 주일을 시작하면서 하느님께 마음을 모아 올바른 준비를 할 수 있는 도움을 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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