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29 주일-가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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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10-16 ㅣ No.156

연 중 29 주 일 (가 해)

       

        이사 45,1.4-6    1테살 1,1-5b    마태 22,15-21

       

     1999. 10. 16.

     

주제 : 인간의 것?  하느님의 것!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토요일 이 시간에 처음으로 미사 봉헌하는 시간입니다.  내일은 본당 신자들 상당수가 ’해미’로 성지순례를 가기에 특전미사로 앞당겨 합니다.  흔히 성지순례는 9월에 가지만, 지난9월에는 추석도 있었기에 이리저리 미뤘다가 단풍철이 시작된 다음에서야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미사는 성지순례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미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몸으로는 함께 하지 못하셔도 마음으로나마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때에 맞추어 특별한 일들을 합니다.  추석이라고 해서 휴일을 며칠씩 묶어서 쉬기도 하고,  주일이라고 해서 한 주간의 하루를 정해서 쉬며 가족과 함께 하는 특별한 시간도 갖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각자 선호도에 맞추어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누구에게 득이 되는지, 그런 일들의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결실은 누가 챙길 것인지에 더 큰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결과 얻을 수 있는 결실이 내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 더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 정치 체제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보다는 ’자본주의’라고 주장합니다.  개인이 열심히 움직인 만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조건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하는 것도 ’돈이 생기는 면’에서는 맞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정말 개인의 모든 면에 도움이 되는가?’하고 묻는다면 그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는 그 인간과 그 인간이 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하느님이 한 개인을 선택해서 모든 사명을 맡겨주고 그가 움직일 수 있는 힘까지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은 첫 독서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말씀이고, 서로 표현하는 감사와 격려로써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바울로 사도의 부탁을 전하는 두 번째 독서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만, 앞에서는 거룩하고 모범인 냥 칭찬하고 뒤돌아서면 안면(顔面)을 바꾸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에 앞서서 하느님께 첫 번째의 마음을 두라고 요구하시는 내용’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일에 쉬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마는 우리는 내가 정성을 들이고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실을 얻지 못한다면 사람은 대개 흥분합니다.  진득하니 기다리거나 남을 이해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 바쁜 현대인들이 보이는 첫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바쁘고 진정으로 이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네 것도 내 것, 내 것도 당연히 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욕심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 세상을 유지하는 기초라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왜곡된 심성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고, 그런 삶의 모습은 우리가 감히 ’모범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황제였습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신 것보다 7-80년 먼저 로마 황제의 자리에 앉아 정치적으로 그 세계를 다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철저하게 로마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면서 군대에 가지도 않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산 사람들이었으며,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서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정적(政敵)을 발견하자, 애초에 반겨하지도 않았던 ’로마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할 것인지? 내지 말아야 할 것인지?’ 하는 질문으로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곤경에 처하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겠습니까?  우리가 흔히 선택하는 방법은 둘 중의 한가지입니다.  세금을 낼 것인지, 세금을 내지 말 것인지.... 둘 중의 한가지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중의 어떤 대답도 곤경에 빠지게 돼 있는 질문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뒤로 감추기로 작정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머리는 비상했습니다.  이 정도면 진퇴양난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그 방향으로만 발전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내 것도 내 것, 하느님이 잠시 맡겨주신 것도 영원히 내 것’이라고 하는 짧은 생각이 가득 담겨 있을 사람들입니다.  물론 옳지 않은 삶의 방법입니다.

 

세상의 사물에는 오로지 자신만의 것은 없습니다. 사람은 세상을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갖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을 살만큼 살고 떠날 때에도 아무 것도 갖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현명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순수하게 하느님의 것과 내가 잠시 맡아서 사용하는 것’의 구별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올바른 지향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재산이나, 삶의 여유나, 나에 대한 좋은 평판이나 그 어떤 것도 얼마나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살지 않는다면, ’미처 하느님을 몰랐지만 엄청난 축복을 받은 이방인의 왕 고레스에게 내려졌던 축복’은 모습을 감추고 우리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

 

축복은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우리가 쌓아놓은 재산이나 명성에서 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난하며 분수를 알고 만족하게 사는 사람들이 오로지 돈을 모으며 살려고 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법입니다.  얼마 전에는 1억원 짜리 복권에 당첨됐던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상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이런 것이긴 하지만, 권장하고 싶지 않은 일이고 우리 삶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일입니다.

 

현실이 어려운 삶을 지내며 잘못을 범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잘못을 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잘못할 수 있는 일들을 모조리 드러내서 개과천선을 유도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이해하고 감싸주는 아량도 필요한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여러분은 이웃의 잘못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사십니까?

 

우리 인생을 통하여 은총과 평화를 누리는 방법을 멀리에서 찾으려고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아예 포기해 버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미움보다도 포기’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멀리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하느님이 주시는 행복, 그것을 우리가 이미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웃에게 주려고 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잠시 우리의 마음을 다지면서, 하느님의 뜻에 내가 얼마나 일치하는 삶을 지내고 있는지 돌이킬 시간을 갖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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