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강론자료

성령강림대축일.....200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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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6-06-03 ㅣ No.739

  성령 강림 대축일

              사도행전 2,1-11     1고린토 12,3ㄴ-7.12-13            요한 20,19-23

      2006. 6. 4. 무악재.

주제 : 신앙인의 본질 용서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시는 분이라고 교회공동체에서는 설명합니다.  우리가 미사를 통하여 봉헌하는 우리의 시간과 정성을 비롯한 예물이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 사람들에게 선물로 오신 성령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드러나는 모습의 한 가지 표현입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좀 더 잘 알아듣기 위하여 셋으로 구분하고 나누어 설명합니다만, 이렇게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구별이지 하느님의 의도는 아닐 것입니다.


성령이 사람들에게 선물로 오신 것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해마다 날짜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합니다만, 오늘 성령강림날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태어난 생일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받았던 위안이 승천 때문에 사라지고, 두려움에 떨면서 숨어있던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있던 사도들이 자기들에게 오신 성령의 강림으로 이제는 더 이상 죽음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는 부활하셨으며,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을 통하여 드러내는 일은 다양합니다.  성령세미나를 통해서는 ‘이상한 언어를 잘 하고, 그 말을 해석해주는 능력을 주로 이야기합니다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예전에는 방언이라고도 불렀습니다만, 하느님의 업적을 전하는 이상한 언어능력은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하느님의 능력들 가운데 주변머리에 속하는 것에 속합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의 중간에 생략된 부분에서 바오로사도는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 등장하는 성령에 의한 이상한 언어를 말하고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는 일은 복음말씀에 나오는 ’용서‘는 한참 기본적인 선물에 해당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고 들은 말씀만으로는 성령강림이 언제 일어났는지 알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디.  농사 파종법에 따라 겨울이 되기전에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이 겨울을 거쳐 봄이 다 지났을 무렵이 바로 수확하는 계절인, 오순절이었으며 바로 그때에 성령께서 선물로 내려오셨다는 것니다.  사람들이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바치는 때에, 사람들이 봉헌하는 정성을 읽으시고  하느님께서 응답하신 것이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선물은 받기만 하는 일로써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고받는다는 말을 우리가 흔히 쓰는 것처럼,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어야하고, 내가 뭔가를 받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맺게 하고 싶다면 내가 먼저 삶에서 움직여야 할 것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일상생활이나 신앙생활의 자세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지나치게 계산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을 계산해서 그만큼 돌려드리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돌려드릴 것은 아무 것도 여길 것입니다.  모두 내 손과 발을 움직여서 벌어들인 것이고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산은 우리가 쉽게 합니다만, 하느님마저도 우리가 하는 계산법을 따라서 하실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주고받는 일에 대하여 어디까지나 정확하게 계산은 합니다만, 하느님은 가끔씩 사람들이 미처 계산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받은 사람으로서 합당하게 움직이는 방법은 복음에 나온 것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세 삶의 희망을 주는 일입니다.  세상살이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한 가지, 우리가 해야할 일으 한 가지를 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의 죄를 용서해줌으로써 그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실천하고 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용서하려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평화를 간직하고 살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잠시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를 선물로 받아 이웃에게는 용서를 베풀 마음자세를 갖출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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