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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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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민족의 화해와 일치, 통일사목적 반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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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9 ㅣ No.442

[경향 돋보기] 민족의 화해와 일치, 통일사목적 반성은?

 

 

‘되찾은 아들’의 비유

 

남과 북 사이의 화해와 일치를 말하기에 앞서 곰곰이 따져볼 문제가 있다. ‘과연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화해와 일치를 바라는지,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말하는 화해와 일치의 신앙적 의미를 스스로 규명해 본 적이 있는지’ 하는 점이다. 성경을 근거로 해서 말하자면, 루카 복음 15장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가 흥미롭다. ‘탕자의 비유’로 불렸던 이 비유는 자비로운 아버지와 두 아들 사이의 애증의 관계를 나타낸다. 작은아들은 아버지한테서 유산의 몫을 먼저 챙겨 먼 고장으로 떠난 뒤 방종한 생활을 하다가 결국 거지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이제나 저제나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자비로운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 작은아들을 기꺼이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며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고 말한다. 이처럼 방탕한 아우를 위해 잔치를 베푼 아버지를 큰아들은 이해 못할 뿐 아니라 분노하게 된다. 사실 웬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큰아들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의 이 구절이 아버지의 자비로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큰아들의 다음 역할을 살피도록 초대하는 것이 방점이다. 결국 큰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어 아버지가 다시 맞아들인 아우를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다시 품어서 그의 신원을 회복시키는 것에 동의하는 것, 그리하여 아우와 함께 아버지 나라의 공동상속자가 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사랑, 그 화해와 일치이다. 이런 의미에서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미완성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악화일로에 있다. 자칫 무력충돌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하다. 이처럼 관계가 나빠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사실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서 북쪽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것은 그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과 달리하면서 빚어지는 현상들이 과거의 호의적인 태도에서 돌변한 모습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북한이 이를 적대적인 것으로 규정, 전면적으로 대화를 거부하고, 일종의 ‘통미봉남’으로 선회함에 따른 것이다. 이 상황에서 현 정부 관계자들은 아직도 대북교류 협력정책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이 이런 남쪽의 진정성을 몰라준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진정성이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말과 행위가 일치되어 나타나야만 한다. 오히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행동이 정반대로 나타날 때 진정성은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복음적 의미로 볼 때 남과 북 사이의 화해와 일치는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큰아들과 같은 처지의 남쪽이 작은아들의 처지와 유사한 북쪽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큰아들이 처음에는 불평을 했지만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자 아버지를 대신하여 아우를 기꺼이 받아들여 참된 화해와 일치를 이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만약 남쪽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큰아들로 다가서게 된다면, 남과 북은 그야말로 평화통일이라는 공동상속의 결실을 맛보게 될 것이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노력

 

한국 교회에서 분단 상황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4년의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부터다. 1970년대까지는 민간이 통일문제 자체를 다루지 못하도록 금기시하였지만, 1980년대 이후 점차 그 폭을 넓히게 된 것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0주년기념사업회 안에 ‘북한선교부’를 설치하고, 행사가 끝난 뒤에도 이를 주교회의 산하의 공식기구인 전국위원회로 제도화하여 ‘북한선교위원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는 기도운동과 계몽운동을 펼치면서 대북선교의 교두보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중장기적인 준비를 위해 1988년에 통일사목연구소를 설치하고, 1989년 10월에 개최된 세계성체대회 때에는 행사의 일환으로 국내외 심포지엄을 개최했을 뿐 아니라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도라산 전망대에서 한반도 평화와 민족화해를 위한 평화통일미사를 봉헌했다. 이 미사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참가했다.

 

더욱이 북한선교위원회가 1992년도 춘계 주교회의에서 그동안 사용되어 오던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의 명칭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변경토록 건의, 시행되도록 만든 것은 한국 교회의 인식을 바꾸어 놓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곧 북한교회를 ‘침묵의 교회’ ‘죽은 교회’로 보는 소극적 부정적 태도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새롭게 다가가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통해 한국 교회가 겨레의 하나 됨과 평화 통일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자 한 것이다.

 

한편 북한에서는 1988년 6월 ‘조선천주교인협회’(2000년 1월부터 명칭을 조선카톨릭교협회로 변경함)를 창립하였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평양에 장충성당을 건립하는 등 크게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평양을 방문하는 남한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평양 장충성당을 찾아 미사를 봉헌하고, 북한 신자들과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교류를 하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한국 교회의 대북 접근이 가시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이다. 서울대교구가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한 김수환 추기경의 염원을 실현하고자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가운데 교구내 공식기구로 민족화해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이다. 처음에는 민족화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게 여겨졌지만, 마침 북한이 1995년 여름에 당한 대규모 수해를 구실로 국제사회에 구호의 손길을 호소함에 따라 민족화해라는 용어는 현실성 있는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당시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최창무 주교(현재 광주대교구장)는 1995년 9월 미국 뉴욕에서 북한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장재철 사무엘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 뒤 장재철의 이름이 장재언으로 바뀌고, 북한의 조선천주교인협회 명칭도 조선카톨릭교협회로 바뀌지만 사람이나 기관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최창무 주교는 1996년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을 활발히 펼치면서 드디어 1998년 5월에 김수환 추기경을 대신하여 ‘사목적 방문’을 목적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 최 주교는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하고 평양교구장 서리인 김수환 추기경을 대신하여 찾아왔음을 밝혔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이때 북쪽 관계자들이 최창무 주교에게 견진을 베풀도록 요청했지만, 최 주교는 세례문서를 비롯한 교적 정리가 미비한 점 등을 들어 허락하지 않았다. 북측이 사전에 아무런 협의나 언급도 없다가 불쑥 꺼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북한 교회에 대한 인식을 교회 공식 문건으로 표명한 것은 1995년 10월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를 통해서였다. 광복 50년, 분단 50년이었던 1995년을 계기로 삼아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 위원장인 이동호 아빠스 명의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하여’라는 일종의 사목교서를 발표한 것이다. 이 아빠스는 여기에서 “우리는 1988년 6월에 평양에서 ‘조선천주교인협회’가 결성되고 같은 해 10월에 평양 장충성당이 건립된 사실에 주목하고, 우리 한국교회 역시 분단의 역사 속에서 북한 사회의 특수성과 역사성을 겸허히 수용한다는 측면에서 이에 대한 깊은 관심과 기대를 표명하여 왔다.”고 언급하고, 그렇지만 조선천주교인협회가 “한국 천주교회나 성청과 교계적 연관 없이 결성되었고, 결성된 뒤에도 교계적 연계를 뒷받침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때문에 조선천주교인협회가 일치의 성사인 교회의 존재양식에 부합되는 것으로 인식되기 어렵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후 한국 교회는 북의 관계자들이 이러한 방향에서 좀 더 전향적으로 노력해 주기를 바라면서 상주 사제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해 왔지만, 진전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해 오고 있다.

 

한편, 1990년대 후반 특히 2000년 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남과 북 사이를 오간 편지가 수없이 많아졌다. 대북 인도적 지원의 선도적 역할을 해온 남한 교회 역시 각 교구나 수도회 차원에서 북한 교회 관계자들과 많은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 가운데 지난해 초에는 조선카톨릭교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장재언 사무엘의 명의로 2008년 6월 15일부터 22일까지 캐나다 퀘벡에서 거행된 제49차 세계성체대회에 참가할 뜻을 가지고 남한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왔다. 결과적으로는 북의 캐나다 세계성체대회 참가가 무산되고 말았다. 아쉽게 느껴진다. 반면에 남쪽에서는 48명의 공식대표단이 참석했고, 여기에는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총 1만 2천 명이 참가했다. 북이 염원했던 것처럼 참가하여 제49차 세계성체대회가 이들에게도 “성체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통일사목의 진로 모색

 

민족화해라는 용어를 현실화하고, 사목적으로 정착시키는 노력이 통일사목이다. 이미 1만 5천 명이 넘는 새터민들이 국내에 정착하고 있는 현실은 통일사목이 미래형이 아닌 현재형임을 말해준다. 통일사목은 분단 구조의 특수성과 교회의 보편성을 조화시키는 지혜를 바탕으로 삼게 된다.

 

분단 구조의 특수성 측면에서는 먼저 북한 사회의 특수성과 그 속에 존재하는 교회의 속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제가 따른다. 북한 사회는 엄연히 사회주의 체제라는 점과 그 체제적인 특성을 전제로 하여 북의 관계자들을 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남쪽 교회 관계자들 특히 성직자들을 대하는 북의 관계자들이나 신자들의 태도는 깍듯하다. 다만 그들 역시 북한체제의 특성에 따른 행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군대 내의 신자들이 군대의 규율이나 질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중국 역시 지금의 북한과 같았지만, 중국 사회의 개방에 따라 상당히 탄력적인데 아직도 중앙정부 차원의 통제는 여전하다. 또한 분단 구조의 특수성은 남한 교회에도 적용된다.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이념적 갈등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생긴 상처의 골은 아직도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 나타난 큰아들의 심정을 벗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단 구조의 특수성과 교회의 보편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을 깊이 천착하는 것이 통일신학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아직도 분단 현실과 통일을 향한 시대의 흐름에 대한 현실인식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다. 통일신학에 대한 접근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1970년대부터 민중신학에 접근하면서 통일신학을 병행시켜 왔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통일신학을 전공하는 신학자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서울신학교에 북한학이 전공 선택으로, 통일사목이 세미나로 개설되어 있고, 인천신학교에 북한학이 개설되어 있는 경우 외에 다른 교구 신학교에서 통일사목 관련 과목을 찾아볼 수는 없다.

 

이런 현실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한국 교회의 본격적인 접근이 구체화되기는 힘들다. 단지 화해라는 성경적 의미를 살려 대북 인도적 지원의 폭을 넓혀 나갈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사목적 접근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교회 일각에서 그동안 상당한 양의 대북지원을 해준 결과가 무엇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북의 교회 관계자들에게서 얻어낸 것도 없고, 사목적 환경의 변화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물음과 그에 걸맞은 응답만이 과연 통일사목적 의미의 민족적 화해와 일치로 접근하는 것인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통일신학이다. 만약에 한국 교회가 그런 잣대도 없이 설왕설래하고 우왕좌왕한다면, 작은아들은 작은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쳐도 큰아들이 큰아들 몫을 하지 못한 책임을 아버지 앞에서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변진흥 야고보 -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상임위원. 호남대 교수,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북한학, 통일사목을 강의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9년 6월호, 변진흥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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