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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세계 교회사 여행: 적대적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1-3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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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회사 여행] 적대적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1-3세기) (1)
그리스도인들이 증가하자, 사람들은 그리스도인과 유다인을 구별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교가 하나의 중요한 소수 종교 형태로 형성되어 갈 무렵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그리스도인들이 거행하던 예식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과 비밀이 무성해졌고,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는 동방에서 생겨났으며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이민자들이다. 그들의 관습은 아주 낯설고 이상하다. 그들은 은밀하게 분파를 이루고 있다!”라며 적대적으로 여겼다. 이에 당시 그리스도교 작가(호교 교부)들은 공동체를 옹호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했으나 박해하는 로마제국 병사들의 만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난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통적인 예식이나 황제 숭배를 반대하고 심지어 동방 종교들의 예식에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 종교에 대해서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이 때문에 도시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버림받은 신들이 복수해서 엄청난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리스도인들은 당나귀를 숭배하거나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당한 도둑을 숭배하는 등 로마제국이 금지하는 예식에 몰래 참여 한다고 의심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근친상간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단지 난교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르면서 가증스러운 일을 자행한다고 여겼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식인종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의식 중에 살해된 어린이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당시에 이 같은 중상모략이 팽배해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이것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엄청난 오해를 받았다. 사실 그리스도인에 대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지식인들이 성경을 읽고 교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를 맹렬히 비난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으로 가난한 하층민을 신자로 포섭했기에, 무식하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가난뱅이로 비난했다. 여자, 어린이, 노예들이 다수를 이루기에 그리스도교는 주로 남편과 아버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집단으로 로마 문명의 가치를 해하는 집단으로 생각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도시 종교의 예배에도, 황제 숭배에도 참여하지 않으며 ‘조상들의 관습’을 인정하지 않는 나쁜 시민이라 여겼다. 게다가 행정 기관 근무뿐만 아니라 군 복무마저도 거부하며 정치나 로마제국의 안녕에 관심을 갖지 않는 자로 분류했다.
셋째, 그리스도교에는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육화’라는 말이 있는데, 완전하고 불변하는 하느님은 결코 자신을 낮추어 어린아이가 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교는 비합리적인 종교라고 규정했다. 이러한 비난 외에도 왜 하느님은 그토록 늦게야 육화했지?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예수는 거창하게 죽을 능력조차 없던 가난뱅이라고 생각했다.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 오고 가르쳐져 오던 내용을 그대로 표절한 것에 불과하다. 육신의 부활은 얼토당토않은 어불성설이며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이 온통 잔인한 이야기들로 꾸며진 허무맹랑한 책이라고 주장했다. 복음서에 나오는 평화의 하느님과 구약의 호전적인 하느님은 일치하지 않고 네 복음서의 수난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일치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박해를 이겨내며 신앙을 지켜나갔다. [2017년 3월 5일 사순 제1주일 가톨릭마산 8면, 세계 교회사 여행 1. 고대 · 중세편 · 가톨릭출판사]
[세계 교회사 여행] 적대적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1-3세기) (2)
로마제국 기득권층의 수많은 반박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은 여론을 계몽하고 자신들을 변호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스도인들은 작품을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과 종교 예식을 분명하게 설명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려고 했다. 이런 작품들을 일컬어 ‘호교론’이라고 부른다. 호교란 옹호 또는 정당화라는 뜻이다.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믿지 않는 사람들(황제, 통치자, 지식인, 여론)을 대상으로 작품을 저술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작품을 써야 했으므로 그리스-라틴 문화적인 배경에서 작품을 저술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만의 고립된 문화를 깨고 나오게 되었다.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교를 헬레니즘화했고, 헬레니즘을 그리스도교화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을 만들어 냈다. 대부분의 많은 교부들은 이름만 남아 있으나 극소수의 작품들 중에는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것들도 있다. 로마에서 그리스도교 철학 학교를 개설한 유스티누스는 이방인과 유다인들에 맞서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했다. 그리스도교 호교론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가 저술한 『호교론』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재능과 변호사로서의 열정을 쏟아서 이 작품을 187년경에 저술했다. 모든 호교 교부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부당한 비난과 박해 시대에 자행된 유죄 판결의 부당성을 일일이 지적하고 그리스도인에 대한 모든 비난을 단계적으로 일소해 나갔다. 0 1,540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