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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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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13 ㅣ No.48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 (상)

 

 

창립과 영성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 금정산 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부산분원. 입구를 들어서면 소박하게 꾸며진 정원이 푸른빛을 더하며 방문객을 맞는다. 오륜대 순교자박물관을 왼쪽에 두고 오른쪽으로 곧게 난 길을 따라 쭉 들어가면 「은총의 집」을 오른쪽에 두고 눈에 들어오는 아담한 반양옥 한채. 이곳이 바로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의 본원이다. 

 

『요즘 보기 드물게 보잘 것 없는 수녀원』이라며 기자를 반가이 맞이하는 손엘리사벳 원장 수녀의 말이 수녀회의 정신이랄까,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에 짐작케 한다.

 

한국순교복자수도 공동체의 막내둥이인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원장=손엘리사벳 수녀, 이하 빨마수녀회)는 1962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창설자인 무아(無我) 방유룡 신부에 의해 창설됐다. 방신부는 1946년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세운데 이어 53년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57년에 복자수녀회 제3회를 창립했다.

 

빨마수녀회는 출발 당시 기혼 여성들을 위한 수도공동체로 시작했다. 『방신부님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와 성직수도회, 제3회까지 만드신 후 저희 빨마수녀회를 세우심으로써 다양한 계층, 더 많은 이들이 당신이 뜻하신 영성을 따라 살기를 원하셨어요. 빨마수녀회의 설립은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의 막내이면서 방신부님께서 원하셨던 수도가족이 완전한 꼴을 갖추게 됐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3회 회원이던 안영옥(루시아) 하복순(발바라) 수녀가 62년 10월 부산 청학동에서 집 한칸을 빌려 수도생활을 시작한 것이 공동체의 탄생이다. 당시 명칭은 한국순교복자빨마원. 창립 수녀들은 당시 3회 회원이면서 미망인들이었다.

 

1975년 오륜대로 본원을 지어 옮겼고, 1992년 부산교구 소속 수도회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그해 명칭을 한국순교복자빨마수도원으로 바꾸었고, 1996년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로 다시 명칭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빨마수녀회는 순교복자수도공동체의 가족인 만큼 창설자 방유룡 신부의 창립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실천한다.

 

순교복자수도회의 영성은 기본적으로 한국천주교회의 역사와 순교자들의 신앙에 근거한다. 서양에서 전래된 그리스도교 사상을 동양사상의 그릇안에 담아내고자 고심했던 창설자의 의지는 「면형무아(麵形無我)」의 정신으로 표현됐다.

 

「면형무아」는 밀떡이 모두 녹아 없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성체를 이루듯 자신을 온전히 없앰으로써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경지를 뜻한다. 자기비움의 정신, 나를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른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르는 삶, 그것은 곧 순교자들이 죽음으로써 신앙을 증거하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었던 삶과도 통하는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2년 8월 11일, 전대섭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 (하)

 

 

주방봉사는 빨마수녀회 수녀들의 소임 중 가장 두드러지는 활동이다.

 

 

사도직 활동

 

빨마수녀회의 다양한 활동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주방봉사다. 창설시기와 초창기엔 회원들이 본당 사제관에 파견돼 주방일을 맡아했다. 입회하는 회원들의 연령과 경험 등을 감안하면 주방소임은 다른 수도회에서는 선택할 수 없는, 따라서 빨마수녀회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사도직 활동으로 자리잡아왔다.

 

현재는 시대변화와 수녀회 여건의 변화 등으로 본당에는 수녀를 파견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대전가톨릭대학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원 등과 같이 대규모 기관 단체의 주방에 수녀들이 파견돼 있다.

 

주방소임에 대한 수녀회의 긍지는 대단하다.

 

『예수님을 기르신 성모마리아를 본받아 침묵과 겸손, 단순성과 노동을 신앙과 봉사의 표본으로 삼아 사제들을 위해 기도와 가사로 직?간접으로 협력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데 그 일익을 담당하는 것』을 사도직 활동의 모토로 삼고 있다.

 

『처음엔 어려워하지만 단순히 파출부 일을 하는게 아니라 사제를 길러내는 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하느님의 특별한 소임이라는 인식을 하면서 고귀한 사도직에 대한 긍지를 느끼고 기쁘게 일합니다』

 

드러나지 않는 일, 겸손을 요하는 일, 소박하고 미천한 일, 하지만 그만큼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신앙의 역설을 수녀들은 삶으로써 증거하고 있다.

 

수녀회는 또 부산교구 지역 성물 보급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지금도 중앙성당과 남천성당에 성물부를 운영하고 있다. 또 양로원 「무아의 집」(경남 양산)과 빨마피정의 집을 운영하며 사회복지 및 교회 신심사업에도 일조를 하고 있다.

 

빨마수녀회는 올해 40주년을 맞는다.

 

엘리사벳 원장수녀는 『오늘 이처럼 영적공동체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순교복자수녀회, 특히 마뗄과 쁘로마뗄의 지도와 부산교구 신부님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이라며 『겸손하게 사는 것이 우리 몫이라는 생각으로 기도와 활동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빨마수녀회는 만 38세 이하의 독신여성이면 입회 가능하며, 타 수도회 입회 경험자에게도 문은 열려 있다. 매월 둘째주 주일 오후2시 본원에서 성소모임을 갖는다.

 

※ 문의=(051)582-4997 [가톨릭신문, 2002년 8월 18일, 전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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