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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43: 기도의 단계 (8) 단순한 합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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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1-24 ㅣ No.627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43) 기도의 단계 ⑧ 단순한 합일의 기도


하느님 은총으로 온전한 ‘인격적 합일’ 이뤄



합일의 기도

성녀 데레사가 초대하는 기도의 여정은 ‘합일의 기도’라고 불리는 단계에서 그 정점(頂點)에 이릅니다. 용어 그 자체가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이 단계에 들어선 영혼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더불어 깊은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이 단계는 「자서전」 11장에서 설명한 정원에 물을 대는 네 가지 방식에서 네 번째 방식인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 정원을 적시는 단계로 인간의 노력이 전혀 들지 않고 물로 상징되는 하느님의 은총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는 가운데 인간을 온통 사로잡아 당신과 더불어 온전한 인격적 합일을 이루는 상태입니다. 성녀는 이 단계를 하느님과 영혼이 합일하는 정도에 따라 ① 단순한 합일(5궁방), ② 충만한 합일(영적 약혼, 6궁방), ③ 변모적 합일(영적 결혼, 7궁방)로 나눴습니다.


누에고치와 나비에 비유되는 단순한 합일

‘단순한 합일’은 5궁방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영혼의 모든 기능은 하느님과의 합일로 인해 완전히 마비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마비 현상은 무엇보다도 이 상태에 들어간 영혼이 하느님과의 합일로 누리게 되는 엄청난 환희 때문입니다(「자서전」 18,10). 성녀는 이 단계를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더욱 깊이 참여함으로써 그분의 파스카 신비를 몸소 살아내고 새 인간으로 탄생하는 시기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영혼의 성」 5궁방 2장 전체를 할애하는 가운데 ‘누에고치’와 ‘나비’의 비유를 들어 상징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누에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해 만드는 자신이 죽을 집인 ‘고치’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누에가 자신이 죽을 집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자애심과 자신의 뜻 그리고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고행과 기도와 극기와 순종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온갖 선행을 하면서 이 작은 고치를 틉시다”(5궁방 2,6). 그러기 위해 성녀는 그리스도처럼 온전히 자기 자신에 죽고 부활하도록 가르쳤습니다(5궁방 2,6-7).


의지적 합일이 지닌 중요성

성녀는 인간이 하느님과 2가지 방식으로 합일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① 신비적 합일(神秘的 合一) ② 의지적 합일(意志的 合一). 첫 번째 방식인 신비적 합일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 원하시는 사람에게 원하시는 만큼 허락하시는 것으로서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공로를 쌓는다고 해서 그에 상응해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길을 통해 주님과의 합일에 이르지 못합니다.

성녀는 이 신비적 방식을 통해 하느님과 합일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향해 의지적 합일을 이루기 위해 힘쓰도록 권했습니다. 이 방식은 신비 체험의 은혜를 많이 받았던 성녀 데레사 자신도 늘 원했고 혼신을 기울여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서, 이는 다름 아닌 복음서에서 주님이 권고하신 최고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혼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하는지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식별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는 애매모호합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웃 사랑’이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로 보았습니다. 이런 선상에서 참된 이웃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하느님과의 의지적 합일로 이끄는 관문으로 소개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슬퍼하고, 필요하다면 남을 먹이기 위해서 여러분은 굶으십시오.…이것이 바로 당신의 뜻과 하나가 되는 진정한 합일입니다”(5궁방 3,11). 그러므로 이웃 사랑만 제대로 실천해도 누구나 이 의지적 합일을 통해 5궁방의 단순한 합일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참된 기도의 바탕인 이웃 사랑

기도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사람은 기도를 마치 보다 깊은 신비 현상에 들어가기 위한 기술이나 기법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별의별 방법을 모색하며 마치 신비 체험 그 자체가 지상 과제인 것처럼 오해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거슬러 성녀는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그런 신비적인 기도는 우리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고. “어떤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잔뜩 상을 찌푸리고 자기들이 하는 그 기도가 어느 정도의 것인지를 분석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기도 중에 느끼는 맛과 열을 행여 놓칠세라, 몸을 놀리거나 생각을 돌리거나 하려 들지 않을뿐더러 만사가 여기에 달린 줄로 압니다만, 나는 그들이 합일로 도달하는 길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봅니다”(상동).

기도는 절대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준비되고 실현되는 수련이자 수도(修道)입니다. 이웃 사랑만이라도 제대로 실천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깊은 신비적 기도 단계에 준하는 영적 진보 상태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기에 앞서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돌보고 그들을 내 가족처럼 여기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께서 손수 실천하셨고 또 우리들에게 가르치신 길이었으며 이 길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게 완덕(完德)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웃 사랑을 잘 실천하면 5궁방인 의지적 합일에 도달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5년 1월 25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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