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강론자료

2013-0519...성령강림대축일...다해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5-18 ㅣ No.1355

성령강림 대축일 - 다해

사도행전 2,1-11 코린토112,3-7.12-13 요한 20,19-23

2013. 5. 19. 등촌3.

주제 : 성령의 은총을 열매로 만들기

오늘은 하느님의 힘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열흘이 지나고 나서 성령이 사람들에게 선물로 오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약속하셨던 대로,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처음 선물로 내려오신지 2000년쯤 지난 후에 우리가 다시 기억하는 오늘 축제일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대답할 수 있어야, 우리가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고, 그 선물로 올바른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성령의 모습이 어떤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때에는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고, 오늘 독서는 불 혀 모양으로 전합니다. 이 성령의 강림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도들과 함께 머무르시는 동안 실현된 일은 아니기에, 우리가 4개의 복음서에서 성령강림에 대한 내용을 읽어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성령의 강림에 대한 내용은 사도행전 첫 부분과 바오로사도가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말하고, 그때에 하느님께서 응답을 보여주신 몇 가지 기록들에서만 읽을 수 있을 뿐입니다.

 

성령이 우리의 삶에 찾아와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 또 그렇게 찾아온 성령이 우리 삶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맺게 하시는지 우리가 알아듣기 쉬운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고,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한다고 해도, 하느님의 능력은 하느님의 일에서 드러나고, 사람의 능력은 사람의 일에서나 드러낼 수밖에 없으니, 사람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삶에서 자신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도 다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 기억하는 성령강림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간절히 원해서 실현된 하느님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하느님께서 판단해서 보내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 삶에서 필요하다고 여기고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일이라고 청할 법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돈이나 건강을 청하는 것이 첫 번째일 것이고, 세상의 높은 권력이나 사업의 성공을 원하거나,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것들이 둘째나 셋째 혹은 그 다음순서를 이룰 것입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에 나온 내용은 아닙니다만,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을 이렇게 청할 법한 것과는 달리, 교회공동체가 말하는 하느님의 힘, 성령의 은총은 일곱 가지를 말합니다. 전통적인 표현입니다만,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워함의 은총으로 구별합니다. 이러한 낱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은총인지는 우리가 따로 시간을 두고 배워야 할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은총, 하느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총은 앞서, 우리가 하느님께 청해야 하겠다고 상상할 법한 것과는 아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도 분명히 있는 것이겠습니다만, 공통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사람은 삶에 필요한 것을 다 채우고 난 다음에 하느님에 관련된 것을 청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할 것이고, 하느님은 인간이 하느님의 일에 먼저 마음과 뜻을 향하고 일치하기만 하면, 나머지 인간의 일은 아무런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출발점이 다르면, 아무래도 공통분모를 찾기가 어렵게 됩니다. 누가 자세를 바꾸어야 할까요? 흔히 하는 질문입니다만,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맞추어 삶의 자세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너그러우신 하느님이 인간의 필요성대로 변하셔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성령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삶의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역시 성령께서 알려주신 내용은 없으니, 성경에 기록된 바오로사도의 말씀을 들을 수밖에는 없는 일입니다. 역시 오늘 독서는 아니지만, 갈라티아서522에는 이 성령을 받은 사람이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열매가 아홉 가지가 나옵니다. 앞서 우리가 하느님께 청할 만한 것이라고 상상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개인에 관련된 내용은 없습니다. 그 아홉 가지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라고 바오로사도는 알려줍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에 긍정할까요? 이런 것을 성령을 받은 사람이 세상 삶에 이루어야 할 열매라고 누가 긍정하겠습니까?

 

사람은 생각이 가는대로 세상에서 그 결실을 맺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 시간에 사람이 맺을 열매가 좋을 것인지 나쁠 것인지 말씀드릴 시간은 아닙니다. 우리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크기가 다르고, 하느님께서 대하실 세상의 크기가 다르다면,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이겠는지 판단하고, 어느 쪽이든 삶의 자세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에, 우리가 원하지는 않았더라도 하느님의 선물이 우리에게 내려오는 날,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잠시 우리가 바라는 것이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에 포함돼 있는지 살피고, 부족한 삶의 자세를 간청할 시간입니다.



1,45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