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 주제 첫 국제 심포지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22 ㅣ No.1068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 주제 첫 국제 심포지엄

“순교는 우리들이 사는 이유를 증거하는 거룩한 의식”, ‘순교’ 이론 정립, 신앙 고백 · 복음 선포 위해 필요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내 순교영성연구소는 10월 15~18일 4일 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순교’ 주제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순교’를 성경과 역사, 교의와 영성 신학 분야에서 총 망라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한국에서 최초로 열렸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총원장 황석모 신부) 내 순교영성연구소(소장 강석진 신부)는 10월 15~18일 4일 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순교’ 주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심포지엄 첫날인 15일에는 구약과 신약에서 나타나는 ‘순교’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 살펴봤으며, 둘째 날에는 역사 신학 분야의 발표가 이어졌다. 셋째 날에는 교의 신학 분야, 넷째 날에는 영성 신학 분야 발표가 진행됐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발터 카스퍼 추기경과 프랑스와 부스케 몬시뇰, 심상태 몬시뇰 등 세계적인 학자들이 발제자로 참여해, ‘순교’에 관한 심도 깊은 신학적 의견을 제시했다.

내년 창설 60주년을 맞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신학적 기반 위에서 ‘순교영성’을 파악, 해석하고자 이번 심포지엄을 마련했다. 또한 심포지엄에서 제시된 다양한 내용들은 ‘순교영성’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총원장 황석모 신부는 “순교는 ‘죽는 이유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증거’하는 거룩한 의식”이라며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와 사실이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않고서는 신앙을 고백하고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심포지엄의 취지를 밝혔다. 다음은 발제문 요약.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내 순교영성연구소 ‘순교’ 주제 국제 심포지엄에서 클로드 타생 신부가 발표하고 있다.



유대교에서의 순교 신학이란?(마카베오기 제2권) - 발제 : 클로드 타생 신부(파리 가톨릭대학교 교수)

마카베오기 제2, 3, 4권에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순교 신학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 논문에서는 마카베오기 제2권과 관련해 엘아자르의 유명한 순교 장면, 일곱 형제들과 그 어머니의 순교 장면(2마카 6,18-7,41)을 통해 순교라는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스인 박해자들은 영웅 엘아자르가 모세 율법에서 금지한 돼지고기를 억지로 먹게 만들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를 거부한 엘아자르를 마카베오기 제2권 저자는 스토아적인 모범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사용한 원천 사료에서 출발하여 점점 확대해 나가면서 순교를 받아들이고 정당화하는 두 가지 가치 체계를 병치시킨다. 첫 번째 가치 체계에서 엘아자르의 영웅적 행위는 보수적인 사제와 율법학자의 모델로 남아 있으며, 이 개념 속에서 주님은 그들이 죽으면 즉시 구원하시고 보상을 베푸신다. 두 번째 가치 체계에서는 일곱 명의 젊은 형제들과 그들의 어머니의 순교(2마카 7)를 문학적 기교 관점에서 엘아자르의 영웅주의가 낳은 명백한 결과로 제시한다. 이 인문들 역시 스토아주의의 덕으로 장식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의 영웅주의는 부활에 대한 기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일곱 명의 젊은이들은 모세에 의해 조상들에게 주어진 율법(2마카 7,30)을 위해, 하느님과의 결합(2마카 7,36)을 위해, 자신들이 받는 ‘교육’에 충실하기 위해 죽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2마카 7,39-41)은 순교라는 감추어진 신학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마카베오기 제2권 7절에서 ‘순교’라는 어휘는 여전히 탐구되어야 한다. 고대 유대교 순교자들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율법을 위해 죽었다. 초세기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은 종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자 하느님인 분을 위해 죽었다. 그들은 “나는 그리스도입니다”하고 말하였다. 즉 나는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신약성서 안에 나타난 순교 - 발제 : 이브-마리 블렁샤르 신부(파리 가톨릭대학교 교수)

증언의 개념과는 분리될 수 없으며, 증언의 극단적 형태를 구성하는 그리스도교적 순교의 전망은 주교님의 표양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도록 불린 모든 제자들이 갖춰야하는 생명을 내어줌과 관계되는 예수의 말씀의 전통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복음 안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이는 잃을 것이요, 자기 목숨을 잃는 것에 동의하는 이는 목숨을 구한다”는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기의 고유한 목숨을 보존하는 것과 관계되는 일반적인 태도의 대치점에서 예수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사실은 기존 상황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보다 무한히 더 우위의 이득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일상생활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보다 우위의 형태에 대한 언급은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분명하다. 요한복음 12장의 몇 구절들은 주님이 맡겨주신 양떼를 돌볼 뿐만 아니라, 예수께 가해진 것과 비슷한 형벌을 통해 자기 목숨을 주도록 불린 베드로의 사명의 마지막 장면을 예고하고 있다.

‘잃다’-‘구하다’라는 반대점을 인용한 표현은 공관복음에도 두 차례 언급된다. 루카복음서는 두 말씀만을 제시하지만 그 역시 순교에 대한 분명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순교의식은 그리스도교처럼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원초부터 그 이상으로 가혹한 박해 때문에 변사에 노출되어 있음은 그리스도의 모범에 합치하기에 십자가를 외면할 수 없는 제자의 삶의 정상적인 결과로 인식된다.

여기서 또한 제자들에게 가해진 환난과 박해를 연상시키는 또 다른 모습이 있다. ‘세례’에 관한 암시인데, 단어의 첫째 의미는 ‘잠김’ 이를테면 ‘삼킴’, ‘전멸시키기’, ‘죽임을 당한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마르코와 루카에게 있어서, ‘세례’라는 용어의 사용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예수께 주어진 비극적 운명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동시에 부활 이후,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받은 세례 행위를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거행된 주님과의 합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과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일치를 배제할 수 없다. 이를테면 그 일치는 예수를 따르기로 한 결단의 논리적 결과인 순교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십자가를 본받는 삶을 내포한다.

순교의 신약성서 신학은 은밀하면서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자체로 암시적이지만, 순교의 신약성서 신학은, 역사(고통스러운)와 신앙(영광스러운)의 양 차원에서 볼 때, 순교자들의 상황 안에 온전한 예가 드러나듯이,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높임을 받는 과정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약성서의 문헌들이 일치된 신앙고백을 하며, 그 신앙을 정점에 두는 사실에서 힘을 얻는다.


교회사적 관점에 따른 순교의 해석 - 발제 : 세르지오 탄자렐라 교수(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교수)

순교자들의 증거에 대해 우리는 적은 양이지만 아주 중요한 원천자료를 가지고 있다. 가장 확실한 자료들은 공통되게 순교자 ‘행전’과 ‘수난기’로 정의된다. 역사적 가치 외에도 최초의 참되고 고유한 순교자 신학을 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이러한 원천자료들의 커다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 자료들은 오늘날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고, 학자들보다는 고대교회의 역사와 교부학의 보급에 이용되었다.

그리스도교 순교의 원천자료에는 그리스도교인들과 제국 사이의 대립의 참된 동기는 하느님과 권력에 대한 판단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괴리의 문제로 나타난다. 결국 오해의 문제가 아니라 지상의 권한자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가용하는 사람과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의 수위성을 말하며 오직 하느님께만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 사이의 지울 수 없는 참되고 고유한 간극의 문제인 것이다.

20세기에 이뤄지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순교는 신앙 자체의 토대와 그 결과들에 의해 야기된다. 이런 이유로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을 복구하는 일은 교회의 역사 자체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이 기억의 복구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신의 교황직 말기에 많은 노력을 경주했던 기억의 정화 과정에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선택으로 드러나 보인다.

순교자들의 증거를 잊지 말라는 것은 만만치 않은 요구다. 현재의 우리 시대에 순교의 현실은 단순하고도 동시에 용감한 삶들의 많고 많은 이야기들 속에 교차한다. 인간들 사이의 역사의 변두리에 위치한 곳으로 부름 받은, 그리고 자신의 이미지보다는 현재에 더 마음을 쓰면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존재들이다. 시민 공동체건 교회 공동체건 공동체 안에서도 반대 받는 표적이 되는 몫은 일관성 있게 떠맡고 그 결과인 고립상태를 받아들인 그리스도교인들, 그 고립상태가 바로, 순교가 될 자신의 사형을 선고하는 통지가 된 그리스도교인들이다. 특히 중부와 남부 아메리카에서 봉사로서의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으로서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름으로, 때로는 의회 민주주의로 가장한 폭군적이고 독재적인 모든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순교로 증언한 그리스도교인들이다.

이러한 순교자들의 사연은 그리스도교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는 차원이 무엇일 수 있는지도 가리키는 것 같다. ‘피를 흘리면서까지 보여 준 그리스도께 대한 증거는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공동 유산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박해시대 순교의 의미 - 발제 : 조광 교수(연세대학교 석좌교수)

순교라는 단어는 한국교회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 키워드로 평가되고 있다. 즉, 박해시대 이들의 순교는 당대 교회사의 이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목된다. 이 뿐만 아니라 순교와 순교정신은 오늘의 한국교회에서도 살아 있는 전통 및 신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한국천주교회사의 순교는 한국이라는 문화와 전통 속에서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러므로 순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한국사와 문화의 맥락을 중요시해야한다. 한국문화의 콘텍스트 위에서 한국천주교회의 순교라는 텍스트를 이해할 때 올바른 이해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박해시대의 순교는 실제로 죽음을 당하고 죽음이 신앙을 반대하는 사람에 의해 초래되어야 하고, 그 죽음을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에 철저히 부합할 수 있는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교가 결행된 배경에는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백이라는 측면만이 작용하고 있지는 않았다. 전통문화에서 강조해온 충효관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창조적 결합이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순교자들은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대군대부(大君大父) 인식과 피조된 인간의 평등성과 존엄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전통문화의 유형에 따라 천주께 대충대효를 드리는 과정에서 그를 위한 순교도 불사하게 됐다.

그리고 충효의 결과로 획득된 불교적 환생 모티브는 가톨릭의 부활로 더욱 쉽게 연결될 수 있었으리라 판단된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 획득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인식은 그들의 순교가 가지고 있는 의로움과 정당성을 확인시켜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더불어 신자들은 치명이라는 특정 용어를 사용하면서 군자나 사족들에게만 적용되던 고귀한 행동을 자신들이 순교를 통해 실천해 나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박해시대 한국교회의 순교는 한국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가 결합하여 생겨난 역사현상이었다. 


순교자 - 진리와 자유의 증인: 순교의 신학에 관한 고찰- 발제 : 발터 카스퍼 추기경

우리가 순교자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단지 먼 과거의 사건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교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근본적인 쇄신과 새로운 성장에 대한 희망의 근거다. 순교자들의 피는 오늘날에도, 미래에도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 될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순교의 신학’에 대해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끔 독려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무엇이 혹은 누가 진정한 순교자인가? 신학적으로 순교는 무엇을 의미하며, 순교자들이 우리에 전해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세기는 순교자의 세기라 할 정도로 이전의 그 어떤 세기보다도 순교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세기다. 이데올로기적, 민족적-인종주의적 그리고 광신적-종교적 절대주의의 요구에 직면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자유(갈라 5,1.13)를 위해 투신한다는 점에서 초대교회의 순교자들과 오늘날의 순교자들은 다르지 않다. 그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 세상 안에 존재하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증인이며,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존엄성을 증거하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적인 동기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자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역시 신학적인 의미에서 순교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 즉 자유 안에서의 진리와 진리를 위한 자유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은 오직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독재자들의 치하에서만 요구될 뿐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새로운 순교자들은 자유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현시대의 다원주의적이고 세속화되어 있고 쾌락주의적인 삶의 문화는 여러모로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가치관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로써 우리는 진리가 종말론적인 투쟁의 장에 새로이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은 피로 쓰인 그리스도교적 진리의 문서고다. 그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교적 실존이 십자가의 그늘 아래 서 있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또한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자 교회적 삶과 결실의 원천임을 깨닫게 해준다.


순교의 교의 신학적 고찰(한국교회 박해와 순교의 새로운 이해)- 발제 :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논자는 1790년 말 조선 사회에 전해진 ‘조상 제사 금령’이 고대로부터 정착되어 있던 동아시아 제국 당국자들이 천주교를 사교로 낙인 찍어 배격토록 한 결정적 원인으로 간주하는 상당수 한국사학자들과 신학자들과 같은 입장을 공유한다.

이 금령은 조선에서 태어나서 생활하면서 외래 종교 천주교를 구원의 종교라고 믿고 기꺼이 입교했던 한국교회 창설 주역들을 위시하여 많은 초기 신자들을 엄청난 충격으로 몰아갔다. 그들은 천주교 교리가 인륜과 천륜에 상응하는 유가의 사상과 윤리 규범을 폐기하지 않고 보완하여 완성하는 진리로 여겨 기쁘게 받아들이고 생활하며, 조선 후기사회 질서를 천주교 진리에 따라 서서히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던 중이었다. 그런데 조상제사 금령은 달레가 자신의 저서 「한국천주교회사」 안에서 적은 표현대로 당대 조선 사회에서 ‘조선 국민의 모든 계층의 눈동자를 찌른 격’이었다.

조상제사 금령이 전해진 당시 조선 사회에서 창설 주역들을 위시한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비상 상황 안에서 제기되는 물음들에 대해 어떠한 신학적·사목적 해명이나 취지도 교회 당국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없는 처지에서 조상제사 금령에 관한 심문관들의 질문에 자신들이 늘 보편타당한 진리로 간주하던 유가적 삼강오륜의 관점에서 답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처지에 있었다.

후기 조선사회 전문 사가 조광 교수는, 북경 구베아 주교가 18세기 조선교회의 탄생을 기적적으로 인식했는데, 바로 이 기적의 주인공들인 권철신과 권일신과 같은 교회 창설 주역들이 당대 교회의 부적절한 선교 정책으로 말미암아 희생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피해에 대한 교황청의 사과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3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참회 의식과 함께 거행된 장엄미사에서 십자군 전쟁, 교회 분열, 종교재판, 유다인 학살 등과 관련된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한편, 여성의 존엄과 인류의 일치를 거스르는 죄도 고백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오 인정과 과실 고백 내용 중에 아시아 지역에서의 선교활동에 심대한 타격을 끼친 ‘조상 제사 금령 조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논자 역시 교회 당국이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이제라도 전 세계와 그리스도교계 안에서 중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동아시아지역에서 ‘새 복음화’의 정신으로 18세기에 내려진 ‘조상제사 금령’이 적절치 않았음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한편,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한국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선교에 헌신하여 역동적인 교회의 오늘을 있게 한 공로자 창설 주역들을 복권하고 그들의 위대한 생애를 기리는 시복시성 추진도 진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이러한 공식 조치가 취해진다면, 세계적 종교와 문화의 요람인 아시아 대륙 안에서 지속된 저간의 침체 상태를 돌파하는 획기적 계기로 작용하면서 아시아 교회 안에서 펼쳐질 ‘새 복음화’ 과업이 어쩌면 놀라운 결실을 새로 맺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근대 한국교회의 순교 신심(한불조약 이후부터 해방 후 순교자 현양 수도회 출현까지)- 발제 : 강석진 신부(순교영성연구소 소장)

한국교회의 태동 때부터 신심의 바탕을 이룬 ‘순교 신심’은 근대 시기로 이어져, 한국교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종교 탄압 속에서도 신앙을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힘이 되었고 신자들에게는 천주교인이면서 ‘한국사람’으로서의 민족적 결속력을 갖도록 이끌어 주었다.

일제의 종교 탄압과 선교사들의 종교 분리 정책은 신자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그런 여건 속에서도 당시 신자들은 한국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고자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신앙대회(1931), 천주교 조선전래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1935), 기해박해 기념 행사(1939) 등 순교 신심 관련 사업들을 진행시켰다. 이러한 노력들은 결국 한국교회가 순교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교회임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또한, 당시 신자들은 민족의 역사적 현실과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순교 신심’을 앞세워 한국순교자를 현양하였고 일제 강점의 우리나라의 구원을 위해 순교자들에게 기도했다. 중일전쟁 이후 종교탄압이 극에 달했을 때조차도 신자들은 자발적으로 ‘순교신심’ 고양을 위한 복자공경주일 운동을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거행된 이 운동은 근대시기 종교 박해를 극복한 신자들의 ‘삶’이며 ‘신앙’의 표현이었다.

해방 직후 ‘순교 신심’은 19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과 함께 강조됐다. 같은 해, 조선 천주교 순교자 현양회가 설립됐으며 순교자 현양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인 수도회가 출현했다. 서울교구 사제로 당시 개성 동흥동본당 주임이었던 방유룡(1900~1984) 신부가 창설한 수도회는 한국인 사제에 의해 창설된 최초의 한국인 수도회였다. 방 신부는 한국적 수도 생활의 맥은 한국 순교자들의 얼을 이어가는 것이라 생각, 수도회 이름을 ‘한국순교복자수녀회’라고 정했으며 이후 1953년 창설된 남자수도회 역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로 했다.

한국교회의 순교 신심은 근대 한국교회 역사 안에서도 신자들의 신심을 북돋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것은 ‘순교’가 단지 과거 순교자들의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이로든 현재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순교 신심’을 통해 자기 성장, 자기 성화의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노력은 세상에서 나와 내 이웃이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생명의 삶이 될 것이다.


선교, 문화 및 종교 간 대화와 순교 - 발제 : 프랑스와 부스케 몬시뇰(로마 성 루이 프랑스 신학원 원장)

순교자들은 순교 사건이 일어나는 문화 한가운데서 문화의 뿌리뿐만 아니라 최후의 것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는 논쟁을 개시한다.

순교 사건이 극에 달하는 폭력적인 죽음 안에 실현되는 사건의 근원적 성격은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줄 뿐 아니라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제기한다.

근본이 되는 싸움은 우상에 대항한 싸움이다. 하느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타고난 차이는 어떠한 힘이라도 그것을 우상화하는 것을 금지하며, 실제적인 새로운 가능성들을 도래하도록 하는 자신의 긍정적 능력 안에서 모든 힘을 하느님의 선하심과 창조적 힘에 연결시키도록 요구한다. 사물들에게서 가능한 새로운 차원을 시작게 하며 조화와 하느님의 계획에 더욱 부합하는 차이는 우리가 이후에 보듯이 순교자에 의해 진리와 정의에 행해진 증언에서부터 이뤄진다.

자비의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패가 나타나도록 허락하시며 상처 입은 인간성에 당신의 부활의 힘을 전해주신다. 이 상처는 박해받는 이들뿐 아니라 가련한 처지에 놓여있는 박해자들 편에서도 있다. 그러므로 기다려야 할 ‘선(善)’은 화해다.

화해는 교회뿐 아니라 순교자와 박해자들이 함께 속해 있는 사회 안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순교자들이 뿌린 평화와 용서와 비폭력의 씨앗은 어떤 방식으로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순교자들이 증언한 진리는 ‘길 안에’ 있는 진리다. 그는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희망을 위해 보다 높고 크며 박해 받는 이들과 사형집행자들 모두에게 공통된 선을 기다리며, 모든 이들의 부활을 미리 앞당기는 용서 자체인 자기증여를 배가한다. 이 진리는 늘 보다 큰 진리다. 우리가 이해했거나 체험한 것보다 큰 진리의 지평 아래 함께 위치하는 몸짓이 실제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가톨릭신문, 2012년 10월 21일, 이지연 기자]


2,10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