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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현대교회의 가르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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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1-18 ㅣ No.599

[현대교회의 가르침] (38)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 (상)


은총의 대희년 마감하며 새로운 천년 향한 희망 제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황 재위 23년째인 2001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반포한 교서로서 2000년 대희년 폐막에 즈음하여 주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보내진 교황 문헌이다. 교황께서는 2000년 대희년을 마감하면서 느껴오는 감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다. 

 

“신랑이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에 몰두하였던 이 해에 교회의 기쁨은 대단히 컸습니다. … 대희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이 은총의 사건을 헤아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이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이 오랜 감사의 말씀을 새로운 기쁨으로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1항)

 

무릇 사람이 어느 순간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갑자기 선물이 주어졌을 때도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였던 일이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을 때에 그 기쁨은 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황께서 대희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와 같이 모든 이와 함께 기쁨을 만끽하고 싶으셨던 것은 주님의 은총도 함께 하셨기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계획하셨던 일이 생각했던대로 잘 마무리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교황께서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1994년 발표하셨던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의 원인으로 ‘화해와 참회’를 강조하신 바 있다. “모든 희년의 기쁨은 무엇보다도 죄의 용서에 기초한 기쁨, 회개의 기쁨입니다. … 개인이든 공동체든, 회개는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제삼천년기」 32항) 그리고 교황께서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회개의 정신을 교회 쇄신의 원동력으로 삼으시면서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저는 이 성년 거행을, 교회가 새로운 열정으로 복음화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35년 동안 얼마나 자기 쇄신을 해 왔는지를 성찰해 보는 섭리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2항)

 

그래서였는지, 교황께서는 대희년 중인 2000년 사순 제1주일 ‘용서의 날’ 강론에서 ‘용서’라는 주제를 강조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저는 이 자비의 해에 교회가 주님께 받은 성덕을 강화하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과거와 현재에 자녀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를 간청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 우리 모두 용서하고 용서를 청합시다.”(‘용서의 날’ 강론 3항) 

 

교황께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 진리를 빙자하여 행사되기도 하였던 폭력, 이따금 다른 종교인들에게 보였던 불신과 증오의 태도에 대하여 용서를 청합시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죄악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져야할 우리의 책임까지도 고백합시다. …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죄를 용서합시다.”(‘용서의 날’ 강론 4항) 그리고 교황께서는 이 성년(聖年)이 화해의 때와 구원의 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면서 강론을 마치셨다.

 

물론 교황께서 이러한 주제로 강론을 하시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제삼천년기」에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을 요청하신 데에 따라 보편 교회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며 자기 성찰을 철저히 시도하였고, 그에 대한 결실로 문헌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교황께서도 강론 중에 국제신학위원회가 몇 달 전에 발표한 문서를 언급하셨고, 이러한 노력을 마무리 하는 차원에서 ‘용서의 날’ 강론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국제신학위원회는 2000년 대희년을 경축하자는 취지에서 1998년에서 1999년까지 ‘교회와 과거의 잘못’이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나온 내용을 신앙교리성 장관의 허가를 받아 1999년 12월에 「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표하였다. 국제신학위원회는 문서의 서론에서 1998년 11월 29일에 발표된 2000년 대희년 칙서인 「강생의 신비」(Incarnationis Mysterium)에 나오는 중요한 주제인 ‘기억의 정화’를 모티브로 하여 작성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문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관련하여 ‘기억의 정화’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대하여 신학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 따라서 이 문서의 목적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을 조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에 대한 참회의 바탕이 되는 전제들을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 서론)

 

국제신학위원회가 문서에서 밝힌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회개 행위의 도덕적 식별이다. 문서는 식별을 위한 도덕적 기준들로 양심의 원리와 사실성의 원리 그리고 ‘패러다임 변화’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그와 함께 교회가 성찰해야 하는 주제로 그리스도인의 분열, 진리를 위한 폭력의 행사, 그리스도인과 유다인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엄중한 오늘날의 잘못은 종교적 무관심, 생명 의식 결여, 세속주의 풍조, 윤리적 상대주의, 태아의 생명권 부인,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 등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반드시 이와 같은 죄악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성찰은 국제신학위원회가 교황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교황께서는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이와 같은 주제를 이미 언급하셨다. “그리스도교의 제2천년기가 그 끝에 이르면서, 교회는 자기 자녀들의 죄과를 더욱 철저하게 의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가치에 영감을 받은 삶을 세상에 증언하기는커녕, 참으로 반증거와 추문의 형태를 보이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 빠져 들어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의 정신에서 벗어났던 역사의 모든 시대를 그 자녀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제삼천년기」 33항) 어쩌면 교황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교황 즉위 때부터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교황께서는 재위 2년 차인 1979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 판결을 재고할 것을 권고하여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결국 가톨릭교회는 1992년에 ‘당시 조치가 비극적인 상호 이해 부족에서 나온 실수였다’고 고백하면서 교회 법정의 오류를 인정한 바 있었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또 다른 것을 준비하는 일이다. 교황께서는 교서 「새 천년기」에서 우리의 시선이 미래를 향하기를 권고하였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희년을 과거에 대한 기억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 삼아 다가오는 새 천년기를 전망하였습니다.”(3항) 즉,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과거에 대한 회상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는 것은 미래에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의 여정을 걸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마도 교황께서는 우리가 지난 이천년보다 더 나은 새 천년을 맞이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서 서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언급하신 초대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라! 오늘 우리에게 들려 오는 이 말씀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열심히 살며 신뢰를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1항)

 

* 전영준 신부는 1991년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교황청립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영성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4년 11월 16일, 전영준 신부]

 

 

[현대교회의 가르침] (39)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 (하)


생명존중 · 사회교리 실천 · 인류평화 … ‘친교의 영성’ 오늘날 과제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를 읽고 있노라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그 동안 발표하셨던 많은 문헌들과 사뭇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교황께서는 신학적 관점이든, 윤리적 관점이든 아니면 시대적으로 떠오르는 중요 주제를 다루는 관점이든 모든 문헌에서 영성적인 숙고를 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번 문헌은 문헌 전체를 영성적인 관점에서 서술해 간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총 4장에 걸쳐서 작성된 문헌 안에서 교황께서는 영성적인 성찰과 함께 새로운 천년기의 시작을 맞이하면서 사목적 과제를 던져 주고자 하셨다.

 

먼저, 첫 번째 장에서 교황께서는 전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모였던 축제의 시간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인식을 비추셨다. “이번 희년은 새 천년기의 시작과 일치함으로써, 분명히 우리에게 천년 왕국의 환상에 젖지 않고 구원 역사의 원대한 지평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5항) 

 

사실 교황께서는 지난 「제삼천년기」에서 이미 대희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천년왕국설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시면서 철저한 준비를 요청하신 바 있었다(참조. 「제삼천년기」 23항). 그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욱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준비 기간 중에 참회의 성찰을 성실하게 수행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정화하고자 대희년은 용서의 요청으로 확연히 특징지어졌습니다.”(6항) 

 

교황께서는 대희년 기간 동안에 있었던 각각의 행사들을 회상하시면서 총평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희년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15항) 결국 역사 안에 그리스도와 신비 안에 그리스도를 동시에 직시하여야만 드디어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이 시작되면서 교회의 올바른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장에서 교황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얼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소개하셨다.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 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방법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계시의 은총이 필요하였던 것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얼굴을 관상하는 신비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은총이 이끌어 주는 침묵과 기도의 체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참조. 20항). 

 

특히 교회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성자의 신원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친다(참조. 21~24항). 말씀이 사람이 되시면서까지 성자께서 자신을 비우셨음을 깨달아야만 역설적으로 고통에 찬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고통은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절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의 기도인 것이다(참조. 25~26). 그리고 이와 같은 사막 체험은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많은 영성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체험되어져 왔다(참조. 27항). 

 

결국 고통에 찬 그리스도의 얼굴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주보게 될 준비가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추억은 부활이 가져다주는 감미로운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헌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이러한 경험에서 힘을 얻은 교회는 오늘 제삼천년기를 시작하는 세상에 그리스도를 선포하고자 다시 여정을 시작합니다.”(28항)

 

한편 세 번째 장에서 교황께서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한 그리스도인이 걸어가게 될 다양한 영적 여정, 즉 “그리스도인 생활의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각 공동체의 상황에 맞는 사목 계획”을 마련할 것을 당부하셨다(29항). 

 

문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거룩함에로의 보편적인 부르심’의 정신에 따라 첫 번째 사목 계획으로 성덕을 제시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숭고한 보통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시 한 번 온 마음으로 강조할 때가 왔습니다.”(31항)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성화를 위하여 각자 ‘성덕의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성덕의 훈련은 아주 특별한 어떤 것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그리스도인이 잘 알고 있는 보통의 방법을 통해서 실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실천, 성찬례의 참여,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로 회귀 등이 성덕의 훈련을 위한 통상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참조. 32~37항).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성화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참조. 38항).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새롭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성덕과 기도의 으뜸가는 중요성은 물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39항) 그러므로 성화의 완성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뿐만 아니라 ‘말씀의 봉사자’가 되어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데에 있다고 문헌은 강조하였다(39~41항).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장에서 교황께서는 새로운 천년기에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과제로 ‘친교의 영성’을 언급하셨다(참조. 43항). 특히, “친교는 모든 교회 생활 구조 안에서 날마다 모든 차원에서 개발되고 확대되어야”한다는 것이다(45항). 즉, 다양한 신분의 하느님 백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도 교회와 조화를 이루며 친교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참조. 46항). 또한 교회 안에 갈라진 형제들도 함께 친교를 이룰 수 있도록 대화를 촉진하여야 한다(참조. 48항). 

 

그런데 교황께서는 친교의 본질은 결국 사랑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우리 안에서 모든 인간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고무”한다는 것이다(49항).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구체적인 분야에서 사랑을 실천하도록 요청받게 되는데, 그 과제는 바로 생태 위기에 대한 염려, 모든 인간 존재의 생명에 대한 존중을 위한 최첨단 과학 지식의 선용, 교회의 사회 교리, 다른 종교인들과 개방과 대화의 관계 구축 등이다(참조. 50~56항).

 

교황께서는 이 문헌을 끝마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는 교회에 대희년 준비의 한 방법으로 공의회의 가르침을 얼마만큼 받아들였는지에 대하여 성찰해 보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공의회 문헌들은 그 가치나 광채가 전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57항)

 

비록 이 문헌의 제목은 ‘새 천년기’였지만,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에는 사실 새로운 것은 없다. 교회 역사 안에서 기존에 배워서 알던 것들만이라도 잘 실천한다면 새로운 천년기에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훌륭히 살아갈 수 있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다. 

 

즉, 과거에 대해서 충분히 참회하는 성찰을 하고, 현재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열심히 실천한다면, 미래에 우리 모두는 구원의 은총을 받고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는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교의 영성이다. “희년의 폐막과 함께 희망의 미래가 밝아 오는 이 때, 온 교회의 찬미와 감사 기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다다르기를 빕니다.”(59항) 아멘! [가톨릭신문, 2014년 11월 23일, 전영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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