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강론자료

연중 31 주일-나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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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0-11-05 ㅣ No.206

연중 31 주일 (나해)

  신명기 6,2-6    히브리 7,23-28   마르코 12,28ㄱㄷ-34

 2000. 11. 5.

주제 : 세상을 오래 사는 방법(?)

 

오늘은 위령성월의 첫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 몸이 배부를 수 있도록 논밭의 작물을 추수하고 난 다음, 도움이 꼭 필요한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할 시간을 배려하도록 교회가 정한 특별한 시기가 위령성월입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이 기억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면서 여러분의 기도가 그들에게 가 닿을 수 있도록 특별한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은 그 육체가 이 세상에 머문 모습에 따라 둘로 갈라진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 하느님이 마련하신 축복에 참여하거나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영혼들과 그 가능성이 아주 없는 영혼들로 구별합니다.  우리가 위령성월을 맞이하여 드리는 기도는 하느님이 마련하신 축복에 아직 참여하지 못하고 우리의 도움이 꼭 필요한 영혼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전교의 달 ’시월’을 보내고 새로운 달의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성당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와 감나무는 모조리 옷을 벗고, 다가 올 겨울을 준비합니다. 이 시기가 되면, 나무는 올해 모아들인 영양분으로 다음 해에 꽃피울 새 생명을 준비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한 주간을 지낼 힘을 오늘 하느님에게서 얻는 것이고, 그 힘을 효과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함께 마음을 모았으면 합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을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좀 더 활기찰 수도 있고, 어제와 같은 오늘, 올해와 별로 다를 것 없는 내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기를 원하고, 올해보다 내년에는 더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욕심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응답하는 것만큼 사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삶이란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가능하게 만들려면 응답을 바르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올바른 응답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신명기 독서를 통해서는 한번, 마르코 복음을 통해서 네 번 등장하는 낱말이 올바른 답입니다.  제가 드린 질문에 알맞은 답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제와 똑같아 보이는 오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으며, 현실에서 당하는 어려움에서도 지치지 않고 일어나게 하며,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못살게 굴어도 꿋꿋하게 견딜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또 우리를 누르는 슬픔의 힘이 너무 강해서 우리를 무릎 꿇게 해도 그 슬픔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막는 일도 사랑이 하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랑이 드러나는 모습을 이렇게 다양하게 말할 수 있다면, 남은 일은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는 것뿐입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을 따라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당신 아들의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해 주셨으며,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가 당신께로 다가오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말입니다. 이 사랑은 또 다른 모습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오래도록 살고 싶어합니다. 거기다가 건강하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수무강(萬壽無疆) 하시기를 바라는 인사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육신의 삶의 길이가 길다고 해서 사람이 오래 사는 방법은 아닙니다. 사람이 산 모습에 따라서 짧게 살아도 다른 이가 기억하는 길다란 길이의 생애도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오늘 위령성월의 첫째 주일에 생각해보는 주제, ’정말 오래 사는 일’은 이웃에게 도움이 되며, 자신의 가슴에도 뭔가 뿌듯하게 남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일입니다. 머리로 먼저 살 줄 알았던 율법학자는 예수님에게 성서에 나오는 응답을 통해서 자신이 더 많이 안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학자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두 번째의 중요한 계명까지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삶의 폭을 넓혀줍니다. 이스라엘의 정통을 고집하는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이마에 성구갑을 매달고 다니면서 오늘 독서에 나오는 신명기 6,4이하의 말씀을 달고 다닙니다.  율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갖는 삶의 모습이 이런 것이라면 우리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말고 실천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드러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웃에게 삶의 힘을 갖게 해주는 일, 필요하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 위령성월을 맞아 내 이웃으로 남아있지는 않더라도 연옥의 영혼에게 내가 쌓은 덕행을 양보하는 일, 또 예수님의 영원한 사제직을 본받아 우리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이 될 수 있도록 힘쓰는 일도 그 방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삶의 정신을 기억하고 산다면, 우리는 율법학자를 칭찬하셨던 말씀, "너는 하느님에 가까이 와 있다"는 선언을 예수님에게서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재밌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는 칭찬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당장 다가오는 행복은 적다고 느낄지라도,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은 하느님의 인정일 것이고,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쌓은 덕행이 있다면,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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