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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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폴란드 아우슈비츠: 학살의 땅 아우슈비츠에서 빛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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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8-21 ㅣ No.699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폴란드 아우슈비츠


학살의 땅 아우슈비츠에서 빛난 십자가

 

 

폴란드 크라쿠프 시내를 벗어나 한 시간 반을 걸려 도착한 아우슈비츠는 간간이 비가 쏟아지고 바람에 키 큰 나무들이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어서 더욱 을씨년스럽다. 버스에서 내리며 1940년대 초의 어느 날 기차에 실려 이곳에 닿았던 유다인 같은 심정으로 기도한다. “제가 있는 그대로, 이 순간을 진지하게 잘 받아들이도록,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 님, 저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바로 이곳 아우슈비츠에서 콜베 신부와 에디트 슈타인은 주님의 사랑을 증언했다.

 

 

십자가여, 유일한 희망이시여!

 

유다인으로 뛰어난 현상학자이자 무신론자였던 에디트 슈타인은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은 뒤 “이것이 진리다.”라고 외치며, “그리스도의 충만함에서 생겨난 교회가 비로소 내 눈에 분명하게 나타났다. 불신은 사라지고 내 마음은 그리스도의 빛,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비에 사로잡혔다.”라고 고백했다. 1933년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한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로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라는 이름을 얻어 가르멜 수도자가 된 그는 히틀러가 제3제국에 자행한 불행한 사태를 비오 10세 교황에게 알리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2003년 바티칸 문서국이 공개한 편지에서 그는 가톨릭의 교권으로 유다인들을 구원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매일 라디오를 통해 대중을 포격하는 인종차별주의와 국가권력이란 이 우상은 과연 새로운 이단의 시작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또한 유다인들을 수용소로 끌어가는 이 전쟁은 우리 주님과 성모님, 또 사도들의 그 거룩한 인성을 더럽히는 것이 아닙니까? … 이 전쟁은 가톨릭교회에 대해서는 은밀하고 덜 잔인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 오래지 않아 어떤 가톨릭 신자도 이 전쟁의 소용돌이와 상관없이 지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톨릭교회의 수도자였던 그 자신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유다교의 속죄의 날인 키푸르(kippur)에 태어났고, 1939년 성토요일에 유다인과 지상의 평화를 위해 속죄물로 자신을 봉헌하고자 청했던 그는 1942년, 마치 운명처럼 자신을 속죄의 양으로 봉헌했다. “흠숭하나이다, 십자가여! 유일한 희망이시여!”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으로써 그는 마침내 죽음을 넘어서는 진리에 들어섰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의 존엄성이 있다

 

초기에는 폴란드 정치범과 종교인, 집시들과 동성애자를 수용하는 곳이었다가 1942년부터 유다인들의 죽음의 수용소가 된 이곳에서만 무려 150만 명의 유다인이 죽임을 당했다. “노동이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구호가 걸린 입구를 지나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이 이중으로 설치된 막사들을 바라본다. 막사 안에는 결코 지지 않으리라고 믿었던 독일군이 미처 소각하지 못한 기록사진들이 곳곳에 걸려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두려움에 질린 흑백사진 속의 눈빛들이 목에 걸린다.

 

“살고자 하는 마음을 영원히 앗아간 밤의 침묵”(엘리 위젤, “나이트” 77쪽) 속에서 그들은 상처 입은 짐승처럼 매순간 단말마를 살아야 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자보는 안드라스의 죽음 후 아우슈비츠행을 예감하며, 그가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를 유추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의 존엄성이 있어. 우리는 상처 받고 모욕당해. 다만 마지막 남은 존엄성으로 버티는 거지. 더 이상 못 견딜 상황이 오면 떠나는게 나아. 존엄성을 가지고.”

 

문득 그의 음성에서 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버랩된다. 인간의 존엄성, 그 누구도 감히 침해해서는 안 되는 타인의 존엄함 앞에 묻는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숨 쉬기가 자유로운가.

 

“이곳은 아우슈비츠다.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

 

지난 6월 작가들이 2009년 대한민국 상황에 대하여 뱉어낸 말이다. 그들은 “이것은 과장인가? 그러나 … 문학의 과장은 불길한 예언이자 다급한 신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

 

수용소의 몇 개 막사는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방을 옮겨 들어설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변색된 머리카락, 안경들과 신발들과 유다인들의 경제 수준을 짐작케 하는 고급 법랑들, 의수와 의족들이 유리창 너머에 둔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샤워’를 마친 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가죽 트렁크에 주소와 이름을 커다랗게 적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치 앞을 예상하지 못한 채 가스실로 옮겨져 죽음을 당했다.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런데,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듯이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기적 같은 사랑의 샘이 솟았다. 한 사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죽은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성모 신심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원죄 없으신 성모기사회’의 창설자 콜베 신부는, 백만 부에 이르는 잡지 발행자로서 폴란드 국민에게 커다란 영향과 권위를 가진다는 이유로 수용되었다. 소년 시절 신비체험을 통해 두 개의 상자를 내보이는 성모님께 두 개 모두를 원한다고 말씀드렸던 그는 그 약속에 충실했다. 그 상자는 ‘순결’과 ‘순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순간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리라는 원의를 가지고 살았다. 결국 그의 죽음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주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른 것이었다.

 

몇 동의 막사를 지나 블록 11의 지하 18방 앞에 선다. 두 평 남짓 그 방에서 콜베 신부는 굶주림 끝에 석탄산 주사를 맞고 선종했다. 어둠 속에 꽃 한 송이 놓여있다. “성덕은 사치나 호사가 아니라 단순한 의무입니다.” 그는 사부 성 프란치스코가 그랬듯이 삶의 뼈대를 놓치지 않는 그 거룩한 단순함으로 귀한 삶을 마감했다.

 

‘독일의 아들로서’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베네딕토 16세는 “이런 곳에서는 결국 두려운 침묵만 가능하다. 그 침묵은 ‘주님, 왜 침묵하십니까?’라는 절규를 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가를, 동시에 얼마나 위대한 자유와 사랑을 구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현장에서 나는 묻는다. 그렇다면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의 탐욕은 끝난 것인가. 우월한 소수가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다수를 지배하고자 하는 세상, 모든 것을 장악하고자 덤비는 물신주의 앞에 속수무책인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여전히 아우슈비츠가 아닌가.

 

그럼에도 그 참담한 폭력 속에 솟아나 오늘까지도 순례자의 가슴을 적시는 거룩한 사랑의 물줄기를 생각하면 다시금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분명해진다. 너 또한 삶의 자리에서 그들처럼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랑의 삶을 살아라. 그것이 오늘 아우슈비츠가 전하는 냉엄한 요구이다.

 

* 이선미 로사 - 서울 혜화동성당 신자이며 가톨릭교리신학원 성서영성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9년 8월호, 이선미 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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