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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사목] 논평에 대한 답변과 종합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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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2-07 ㅣ No.348

논평에 대한 답변과 종합 토론

 

 

논평에 대한 답변

 

사회자: 먼저 논평에 대한 발제자들의 답변을 듣겠다.

 

곽승룡: 논평이 주로 주제 발표에 대한 보완적인 성격이 강해서 따로 드릴 답변은 없는 것 같다. 용어 문제를 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total이란 단어와 holism이란 단어가 나왔는데, 먼저 holism은 유사영성에서 전체주의로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 내키지가 않는다. 여하튼 total도 아니고, holistic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부족함이 없는 관점이기 때문에 integral이라는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핵심은 ‘필수’와 ‘종합’이다. 필수적인 것이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 나라,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데 빠질 수 없는 복음화, 교회의 비전을 담아내는 필수적인 사목분야와 사목구조와 사목교육, 이것을 신학적 영성적 사목적 차원에서 통합해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통합사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목 구조와 분야와 교육이 통합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통합사목은 상당히 포괄적이다. 그래서 비전을 담아내야 되겠고, 교회와 사회의 관계도 고려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본당 안에서도 본당이라는 통합적 울타리가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분야들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는 분야들 사이의 경계 또는 접점 관리가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경계사목이라는 말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경계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신학적으로는 삼위일체론과 연결되고, 또 토착화 관점에서는 동양사상과도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통합사목과 경계사목이란 이 두 부분이 잘 공존해 나갈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원: 차동엽 신부님께서 세 가지를 지적해 주셨다. 하나는 통합의 의미에 대해서였고, 두 번째는 단체와의 관계에서 과연 소공동체가 통합적인 관점에서 단체를 어떻게 품을 수 있는가 하는 것, 세 번째는 미래사목연구소에서 개발한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사목 모델을 제시하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한국말로 integral을 어떻게 옮겨야 할지 망설여진다. 개신교에서 쓰는 통전이라는 말도 왠지 낯설고 불충분한 것 같다. 통합에는 필수적인 것과 전체를 반영하는 것이 있으며, 이 두 가지의 공존이 통합사목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많은 것을 갖다 붙일수록 복잡해질 수 있다. 그러니까 사목의 필수적인 것과 전체를 반영할 수 있는 것 두 가지를 integral의 의미로 잡고 싶다. 통전이라는 용어보다도 해석에 좀 더 중점을 두어 이해하고 싶다.

 

단체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데, 왜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가 보았을 때, 유기농법과 약탈농법의 예를 들 수 있겠다. 우리는 1980년대에 행사 위주, 성장 위주, 단체 위주의 사목을 해왔다. 그것이 사목이라는 데 너무 익숙해 있다. 이런 행사를 하지 않으면, 성당을 짓지 않으면, 바자회를 하지 않으면, 행사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또 신자들을 이런 쪽으로만 몰고 갔다. 이것이 농사에서 말하면 약탈농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방 눈에 보이는 결과를 얻는 데 치중하였다. 그런데 유기농법은 퇴비를 바꾸고, 토양을 바꾸고,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고, 영성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토지를 바꾸는 종합적인 의미에서 단체라는 것이 무엇이냐 했을 때, 토양에서 나는 농작물, 결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소공동체는 밭이고, 밭에 있는 농작물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두 개를 나눠서 하는 것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

 

마산교구에서 어떤 신부님께서 소공동체를 하겠다고 해서 단체를 없앴더니 둘 다 망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신부님은 둘 다 잘 가꾸었더니, 다 잘 되었다고 한다. 밭이 좋으면 나무도 잘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목자들은 레지오 등으로 감 따먹는 데만 정신이 없었지 밭을 가꾸고 토양을 가꾸고, 삶의 자리에서 복음적으로 식별하고 성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놓치고 살았다. 소공동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교회 안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소공동체라는 밭을 가꾸는 과정에서 농사일을 하라니까 힘든 것이다. 

 

의정부교구 구리본당의 서춘배 신부님께서 소공동체를 함께하시면서 자신도 발전했다고 말씀하셨다. 본인도 소공동체 모임에 가서 똑같이 자신을 나누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목이다. 그런데 지금의 사목자는 관리적 차원에서 소공동체를 발전시키려 한다. 이렇게 하면 여전히 어렵다. 

 

단체는 복음화된 사람들이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복음화되어 가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으니까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단체다. 내가 복음적으로 말씀에 젖어서 살다 보니 성모님 신심에 빠지고 싶다고 했을 때 레지오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소공동체를 통해 복음화되고,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단체활동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단체와 소공동체가 부딪힐 이유가 전혀 없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 답해보겠다. 차동엽 신부님께서 제시하시는 본당 활성화 모델 가운데 시스템 부분에서 줄기 부분에 해당하는 조직, 리더십은 소공동체에도 있는 요소들이다. 뿌리-영성도 소공동체의 내용 안에 들어있다. EP-1234 활성화 모델도 그 중심에는 소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통합의 중심이 되는 것에 소공동체가 있다는 것이다.

 

통합사목이라는 것을 너무 복잡하게 이야기하면 답이 안 나오는데, 가장 본질적인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소공동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종합 토론

 

최정철: 통합사목에 대한 연구는 외부 요인을 좀 더 심층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주교 전체의 이미지가 중요하다. 또 바닥 요인들, 종교 문화적 요인들을 좀 더 심층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회의 물적 토대의 변화는 사회적 요구의 변화로 이어진다. 미래를 대비하려면 우리보다 앞선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외국 사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20년 전 상황을 우리가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적응에 실패해서 신자들이 떠나갔다면, 왜 실패했는가 하는 부분을 연구해야 한다. 여러 가지 전통적이고 문화적인 요인들 중에서도 상징적인 기준은 1인당 국민소득이 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아시아에서 지도적인 그룹에 속해있다. 

 

오늘 또 하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서울대교구가 소공동체 운동을 지속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이를 이끌어갈 만한 역량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이다. 서울대교구 입장에서는 본당이라는 체제를 더 이상 쪼갤 수 없다 보니 사목적 대안이 소공동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지역마다 그 경험이나 역사, 요구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통합이 온다. 먼저 교구별 지역별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 또한 이제 서울이 중심이 아니며, 분권화된 사회, 인터넷이 발달한 사회가 되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중앙을 또는 서울을 거쳐서 해외로 갔는데, 이제는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와도 통한다. 이런 분권화된 사회, 각각의 토양, 지역별 차이를 인정하면서 통합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김영수: 세 가지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지금 소공동체가 통합적 사목의 모델로 전제되면 많은 한계를 가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소공동체 사목 방법론을 전제하지 말고, 사목이라는 전체적 차원에서 통합사목을 이야기했으면 한다. 그러나 소공동체 운동이 이루어낸 성과를 받아들이는 수용력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편으로는 소공동체 운동에서 ‘소’자를 빼고 그냥 공동체 원리로 제시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소공동체를 어떤 사목 원리로, 공동체 사목 원리로 제시한다면 훨씬 접근하기 쉽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소공동체 운동이 이루어낸 결실들을 수용하고, 사목의 전체적인 차원에서 통합적 사목 모델을 이루어내자면 포괄적 의미를 지닌 공동체 사목 개념에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둘째, 앞으로 사목의 방향을 통합사목으로 정하는 것은 교계의 선언이 있어야 하며, 단지 사목방법의 공유 차원이라면 기술적 문제이므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보통신시대에 공유 문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용어에 대해 말하자면, integral이라는 용어 대신에 어떤 과제를 풀어나가고 연구하고 작업을 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인 integrative project에서 빌려온 integrative를 제안하고 싶다. 전체를 아우르되 각 부분의 전문성을 고려하고 조화시킬 수 있는 용어의 선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병수: 통합사목이 왜 소공동체 사목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본당에 가면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것은 사목의 다양성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 본질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면 다양한 사목을 인정하면서 아우르는 통합사목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과연 교회가 어떤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하는가 하는 의미에서, 친교나 하느님 백성 등 교회의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을 이야기할 때 통합사목이라는 내용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면 논의가 겉돌 것 같다. 

 

본당 신부님들이 고민을 많이 한다. 자신들은 사목적으로 많이 노력하는데, 왜 세례자가 감소하고 냉담자는 증가하는지, 왜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신앙의 매력을 잃어가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은 현대의 상황 안에서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전원 신부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교회의 필수적인 부분을 담아내는 것이 통합사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원: 김영수 신부님께서 방향과 방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소공동체 운동보다 그냥 공동체 운동이라고 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하셨는데, 여기서 ‘소’자라는 함축적인 말을 붙임으로써,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느낌, 영성적 관계의 교류가 가능한, 친교의 공동체로서의 느낌을 담아낼 수 있다. 통합사목이라는 다소 막연한 개념을 실천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교회의 모습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소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을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소공동체라는 개념을 풍요롭게 하고 사목실천의 차원에서 보완하고 교육하고 통합해서 만들어내는 데 회의의 초점이 있으면 좋겠다.

 

조규만: 공동사목이 통합사목의 모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이란 존재가 전인적이고 통합적이듯 사목도 이제는 좀 더 통합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어린이가 많은 곳에서 어린이 중심으로 사목을 한다면, 노인사목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바로 이럴 때 ‘공동’과 ‘통합’을 적용해서 전체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앞서 소공동체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소공동체는 ‘사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회 문헌에서도 사목은 분명히 사제가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소공동체는 사제가 할 수 없는 지역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친교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형화된 교회에서 지역별로 신부가 없어도 할 수 있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인 것이다. 개신교에서 하는 말씀 중심의 모임과 우리의 공소예절이 이와 유사한 성격이라고 본다. 

 

소공동체가 우리 교회를 살리는 데 중요한 메시지는 성서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 신앙체험을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기도를 중심으로 해결한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격화 문제이다. 비인간화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소공동체 운동의 핵심이다. 따라서 소공동체의 정신은 중요하다. 대형화되는 교회 안에서 이것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요즘같이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접하게 되는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작은 공동체 안에서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서 중심으로 연계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소공동체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과 연대까지 포함해서 함께하는,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사목을 통합사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목의 모델을 하나로 제시할 수 없다면 여러 개의 모델로 제시할 수도 있겠다.

 

박문수: ‘통합’이라는 말 안에는 방향과 과정과 수단이 모두 들어있다고 본다. 최근에 강남에 사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욕구조사를 한 적이 있다. 전형적인 중간층 본당이었다. 신자들의 특징을 살펴보니, 주일미사 안에서 모든 것을 얻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공동체에 관여하고 싶지 않고, 친교를 나누고 싶어하지도 않고 다른 시간도 내기 싫어했다. 개신교의 한 조사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는 60% 이상이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조사 본당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강했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얻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강론이었다. 

 

이렇듯 자신의 목적에만 매달려 있는 신자들이 많은데, 이것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교회의 과제이다. 유럽교회에서는 이러한 면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들이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면 노력을 했는데도 실패한 데는 중요한 요인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종교사회학적 조사에 따르면 국민총생산(GNP)의 증가와 종교성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우리가 전체를 통합하는 거시적인 표를 짜는 시점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가 과연 낙관적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면,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어떤 교구에서는 소공동체가 필요해서 해야겠지만, 서울대교구보다 10-20년 정도 뒤처지는 교구도 있다. 따라서 조화를 이루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대두되며, 통합사목의 모델을 하나로 제시하고 일괄적으로 따르자는 것은 무리이다.

 

나기정: 객관적으로는 필수적인 사항이라도 주관적으로 필수적이지 않으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통합은 결국 공동체 문제이다. 공동체가 잘되려면 구성원이 잘되어야 하는데, 결국 각 개인이 필수적이라고 느끼지 못하면 통합이 될 수 없다. 우리 본당은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상당히 유동적이고, 주일미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신앙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주관적으로 못 느끼는 것이다. 통합이 잘되려면 내면적인 것, 인격적인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

 

김영숙: 공감한다. 개인의 신앙 체험 없이 조직으로는 힘을 받지 못한다. 한국교회의 약점은 뿌리 체험이 부족한 것이다. 신자들이 유사영성을 쫓아다니고 냉담자들도 생기는데 우리는 영성 체험도 머리로만 했다. 머리와 몸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앙 체험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고병수: 소공동체가 하나의 모델이라고 전제한다면 왜 한국교회가 지금 소공동체를 추구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왜 주교님들이나 교구 사목국에서 이렇게 소공동체를 강조하는가? 다양한 여러 가지 사목활동을 열심히 하였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이 다양한 사목을 담아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대안적으로 나온 것이 소공동체 운동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공동체라는 말을 빌렸을 뿐 결국 필요한 것은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목의 이유가 아닌가?

 

이유남: 교회 내 훌륭한 사목자들의 사목 경험을 통합사목이라는 맥락 안에서 새롭게 발굴하여 연구해야 할 것이다. 소공동체 운동의 사례 역시 강점이나 장점을 연구하여 발표하면 좋겠다. 다양한 사목 안에서 소공동체 운동이 지니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 곧 하느님 말씀, 복음화, 일상화, 친교와 나눔의 요소를 다른 사목활동이나 단체 모임을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낼 수 있고 그것들을 함께 아우르면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최정철: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한국 천주교회는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유럽교회들은 위기를 길게 겪었지만, 우리는 압축해서 겪게 될 것이다. 이를 타개하려면 교회 자원이 총체적으로 동원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천주교회가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도 네트워크 연결을 통해 다양한 아이템을 생각할 수 있다. 홈스테이, 주말 농장, 여행, 본당 간의 연결, 도시와 시골의 연결 등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총체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에 고유한 네트워크의 활용 없이는 소공동체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고병수: 제주교구가 소공동체를 한 지는 2년밖에 안 된다. 처음에는 복음 나누기가 소공동체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신자들이 성서를 들고 다니며 성서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이전에는 복음을 읽기만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나누지 못했지만 지금은 할 줄 안다. 그리고 이전에는 기도할 줄을 몰랐지만, 지금은 어느 공동체를 가도 기도를 할 줄 알게 되었다. 소공동체가 겉으로 보기에는 친교를 이루는 방법으로만 보일지 모르나, 소공동체를 통해서 기도를 할 줄 알게 되고, 말씀을 알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이웃과 친교를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소공동체가 통합사목의 전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소공동체를 통해서 복음을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사회자: 오늘 ‘통합사목’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워크숍에서, 통합사목이란 무엇인지 또 소공동체 사목이 통합사목의 모델인지 등에 관하여 열띤 토론이 있었다. 

 

요컨대, ‘통합사목’이란 초대교회의 이상적 모습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친교와 참여의 교회 공동체를 구현하고자, 사목의 다양한 차원과 분야를 따로따로 나누어 보지 않고 사목의 다양성 가운데 일관성과 조화를 추구하는 통합적 사목 정신과 방법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통합사목에서는 세계/전국/지구/본당/소공동체/가정 차원의 사목을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전체적 안목에서 사목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할 뿐 아니라, 성직자/수도자/평신도의 사목적 협력과 소공동체 활성화를 중요하게 여기며, 교회생활과 사회생활, 성과 속, 믿음과 행동의 일치와 통합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본다. 여기에서는 친교와 선교와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을 통합하여 전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객관적 조직적 사목에 그치지 않고 개개인의 주관과 체험도 배려하여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이처럼 광범위한 통합사목 영역 가운데, 이미 여러 교구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공동체’ 운동 또는 사목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통합사목의 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오늘 수렴된 통합사목 개념을 바탕으로 향후 약 2년 동안 조사 연구 분석을 거쳐 통합사목의 내용과 방법, 특히 구체적 프로그램과 사목자용 매뉴얼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열심히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목, 200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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