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21 주일-가해-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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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2-08-24 ㅣ No.366

연중 제 21 주일 (가해)

         

          이사야 22,19-23  로마 11,33-36  마태 16,13-20

     2002. 8. 25.

     

주제 :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더위는 아직 물러가지 않은 계절, 어찌 생각하면 계절이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시기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 방법을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는 시기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 삶에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는 때입니다. 내가 갖는 생각에 따라 이 순간 이후에 연결될 삶이 달라진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는 복음의 말씀에도 자연마저도 심술을 부리는 듯한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본보기로 나오는 베드로 사도의 ‘메시아 고백’을 통해 나는 과연 어떤 응답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말씀이기도 합니다.

 

수 천 명을 먹게 했던 놀라운 기적을 이루고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더 큰 중요성을 두고 끊임없이 예수님을 향하여 기적의 징표를 요구하는 유대인들과 벌였던 언쟁을 뒤로하고, 예수님은 당신을 떠나지 않은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제자들은 자신은 과연 어떤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하더냐?’라는 질문을 통해서 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통해서 우리 삶의 정체성을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더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예수님이 정작 묻고 싶은 내용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하는 소리에는 각자 개인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음이 일반적인 모습이고 그렇게 전하는 이야기가 옳든지 그르든지 내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셨던 질문의 초점은 뒤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분위기를 전하는 너희 제자들은 너희의 스승 나, 예수를 과연 누구라고 받아들이고 따르고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정답을 아는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 말을 응답으로 할 수 있습니다만, 그 응답에서 사용하는 말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정 내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생각 이상으로 커다란 영향을 가져오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응답했던 베드로 사도의 대답을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예수님이 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나는 과연 어떤 응답을 할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나름대로의 모습을 우리는 각자가 더 잘 알 것입니다.

 

‘신이 된 남자’라는 제목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설을 쓴 사람 제랄드메사디에. 1988년부터 7년에 걸쳐서 씀. 주변문서와 자신의 생각이 마치도 사실인 것처럼.......

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복음서를 뺀 주변의 많은 기록들을 정확한 사실인 것처럼 가정해서 그의 소설에 써 넣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죽고 싶은 생각도 없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피할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죽었다는 주장,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죽지도 않았으면서 죽은척하다가 무덤에서 사라졌다고 그것이 부활로 잘못 전파되었다는 것, 빵을 많게 하여 4천명이나 5천명을 먹게 한 기적은 예수님이 이루신 기적이 아니라는 주장,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은 에세네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도망친 사람이라는 주장, 예수님이 태어날 때 유대지방에는 로마제국의 인구조사가 없었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가설들을 그의 소설에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으면서 때로는 복음의 말씀보다 더한 진실이 감춰져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이제까지 믿고 따라온 신앙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신앙의 뿌리가 약하다는 반증(反證)입니다. 아주 일반적인 말이기는 합니다만, 자기 정신을 갖고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목적 없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신이 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 생각을 전개했던 ‘제랄드 메사디에’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제자들에게 자신은 어떤 의미를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물었던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가 대답한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드러내어 잘못된 결과를 맺는 것보다는 행동이 준비될 때까지 말을 하는 일에도 신중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서로들 인격체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이 하는 여러 가지 생각도 각자의 자유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면 혼자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이 낫다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혼자 잘못된 길로 간다면 혼자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제대로 앞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파멸로 구덩이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로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거나 어려운 일이라고 단정 지을 일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판단과 사람의 판단은 분명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전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 세상에 혼란스러운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을 되찾는 일이 될 것이고, 그 마음을 내가 가져야 할 모든 것으로 채우는 일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한 주간도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기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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