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주님의 수난 성지주일(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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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999-04-01 ㅣ No.54

주의 수난 성지주일(가해)

1999년 3월 28일

 

제 1 독서 : 이사 50,4-7

제 2 독서 : 필립 2,6-11

복     음 : 마태 26,14-27,66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주님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전례적으로 주님의 수난 성지주일은 구세사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신 역사적인 빠스카의 신비를 기념하는 성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날입니다. 특별히 성지주일은 빠스카 사건의 주무대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으로 예수님께서 입성하시는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를 시작하면서 간략하게나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렬과 성지 축성 예식을 가졌습니다. 2천년 전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호하며 나무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잠시전에 들으신 것처럼 그들의 환호성은 이내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는 저주의 고함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이 성지를 가정에 가져가 십자가 위에 걸게 됩니다. 바로 우리 가정을 찾아오시는 주님을 열렬히 환호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동시에 다시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늘 기쁘게 영접할 것을 다짐하는 표징으로써 성지를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전례중에 주님의 수난복음을 들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수난복음은 평소와는 달리 다소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낭독했습니다. 평소에는 사제 혼자 복음을 낭독하지만, 수난복음만큼은 여러 명이 각자 배역을 정해 낭독하거나 아니면 노래를 통해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바하의 마태 수난곡이라고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아마 천주교 신자가 번역했다면 바하의 마태오 복음에 의한 수난곡이라 했을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 복음의 수난복음에 곡을 붙여 만든 오라토리오입니다. 종교적인 내용의 오페라 형식이라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물론 가장 중요한 빠스카 사건을 보다 효과적으로 신자들에게 전함으로써 구세사의 신비에 보다 깊이 동참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습니다. 또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고대나 중세 교회만해도 대부분의 신자들이 글을 읽거나 쓸줄 몰랐기 때문에 그림이나 연극 형식을 통해 교리교육적인 효과도 보고자 했죠.

 

수난복음 낭독에 연극적인 요소를 적용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수난복음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연극 대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각각 배역의 대사와 역할, 그리고 갈등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용의 전개에 따라 구분하면 대략 4막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각 막에는 몇 개의 장이 있고 그 장마다 독특한 조연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그 조연들의 모습을 한 번 눈여겨 살펴 보십시오.

 

1막은 대략 26장 14절부터 56절까지로 볼 수 있습니다. 주된 내용은 과월절 만찬과 베드로의 장담 그리고 겟세마니에서의 기도와 유다의 배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막의 조연으로는 12제자를 들 수 있고, 특별히 뽑는다면 유다와 베드로를 들 수 있습니다.

 

2막은 56절부터 27장 26절까지로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의 배반으로 체포된 예수님께서 대사제 가야파와 총독 빌라도의 심문을 받고 사형선고를 언도받습니다. 그 중간에는 베드로의 배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막의 주된 조역이라면 가야파와 베드로 그리고 빌라도를 들 수 있습니다.

 

3막은 27장 27절부터 56절까지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상의 죽음이 중심 내용입니다. 3막에는 상당히 많은 조연들이 등장합니다. 병사들, 키레네 사람 시몬, 대사제, 율법학자, 원로들, 예수와 함께 달린 두 명의 강도, 백인대장, 예수의 어머니와 여인들, 그리고 수많은 구경꾼들까지 모두다 저마다 한 두 가지 역할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4막은 일종의 종결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의 도움으로 예수님께서 돌무덤에 안장되시고, 혹시 예수의 부활을 두려워하는 유대인들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수난극을 간단하게 4막으로 나누어 보면 내용전개가 상당히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고, 또 상당히 많은 조연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 많은 조연들 중에서 한 명에게 조연상을 준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뽑으시겠습니까? 제 나름대로 후보 다섯 명을 뽑는다면 유다, 베드로, 가야파, 빌라도, 백인대장을 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중에서 누구에게 조연상을 주시겠습니까?

 

저는 백인대장에서 최우수 조연상을 주겠습니다. 사실 백인대장의 역할은 전체 수난극 중에서 상당히 미미합니다. 대사라야 단 한 마디,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뿐입니다.  하지만 백인대장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이 한 마디 대사를 통해 조연중의 조연, 조연상을 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조연들이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소화했지만, 백인대장처럼 주인공과 가장 가까이 일치하여 구세사의 전체 흐름을 깨달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분명하게 신앙의 단계로 넘어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가장 잘 안다고 하던 제자들마저도 두려움에 모두 도망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백인대장에게 조연상을 주는 제 나름대로의 이유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세사의 조연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조연의 위치에만 만족한다면 절대 주인공역을 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인공의 뜻을 올바로 깨닫고 주인공과 온전히 일치될 때만이 조연으로서 더욱 빛이 나고 나중에 주인공역도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주의 수난주일을 기념하면서 우리 또한 백인대장과 같은 신앙을 고백하도록 합시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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