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9일 (수)
(녹)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강론자료

연중 02 주일-가해-19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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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9-01-16 ㅣ No.18

연 중 제 2 주 일  ( 가 해 )

        이사 49,3.5-6 1고린 1,1-3 요한 1,29-34

     1999. 1. 17.

주제 : 신앙인이 해야 할 일

 

새해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

우리는 지난주일 예수님의 세례축일까지, 성탄시기와 공현시기를 지냈습니다.  세례축일까지 끝나고 제대 옆에 마련되었던 구유 성상(聖像)들을 모두 치웠습니다.  이제 연중시기로 접어들면서, 하느님이 우리와 가까이 계신 것은 더 이상 성상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로 우리와 가까이 계심을 증언하고 선포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연중 2 주일에 듣는 성서의 말씀은 복잡하고 혼란한 시대에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그런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생각해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예언서는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들, 신앙인으로서 올바른 일은 하느님의 구원이 사람들에게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자녀로 선택된 거룩함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어떤 역할을 하실 것인지, 우리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생활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듣고 응답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기도를 가리키거나 일주일에 한번씩 성당에 오는 것으로 제대로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 연중 1 주간 금요일, 평일미사에서 신앙과 생활은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앙과 생활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신앙이나 신앙생활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알아들으려면 내가 하루하루의 생활은 어떤 모습으로 해 나가는지를 찾아보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입니다.

 

엊그제, 서울 교구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굿뉴스’의 한 토론방에 게시된 문건에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문제와 교회에 돈을 바치는 문제’를 비교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을 읽었습니다.  게시자는 글을 쓰면서, 자신은 십일조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지만, 과거 역사로부터 이어져온 십일조는 신정(神政)일치 국가에서 행했던 것이니 새로운 위상 정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교회가 돈을 밝히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소리였습니다.  전 그것을 보고 웃었습니다. 어른들의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예로부터 겨가 묻은 강아지는 다른 것이 묻은 강아지에게서 욕을 먹게 되어 있습니다.  완전히 그 격이었습니다. 제대로 참여하지도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막아서는 일치고 제대로 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지도 않고 참여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 비판을 그럴싸하게 하면 누군가 자신을 편들어 줄 거라고 아는가 봅니다.  그것이 또 다른 먹칠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연중 2 주일에, 신앙인으로서 올바로 움직이는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서의 말씀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신앙을 갖고 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 적어도 겉으로야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할 순 있지만, 그 속마음이 꼭 차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힘이 이끄시는 대로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선포했던 세례자 요한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구약성서 레위기 16장에서는 양 대신 염소로 표현되기는 했습니다만, 이 동물은 인간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를 없애주는 힘으로 등장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리스도 예수를 보면서 한눈에 그런 신앙고백을 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단 한번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자주 그 마음을 되새깁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과 같은 믿음이 우리에게 있는지 각자 질문해보고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 분의 뜻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삽니까?   사람의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삶을 이루어갑니다. 자신이 귀중하다고 여기면 그만큼 귀중한 사람으로 행동하게 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첫 번째 독서, 이사야 예언서는 하느님이 인간을 어떻게 보시는지, 그리고 그 하느님은 신앙인인 우리에게 어떤 책무를 맡기셨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빛낼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빛내는 일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선물이 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서울 교구장님이신 (정진석) 대주교님은 신자 비율을 전 인구 대비, 18%로 높여야 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18%는 전세계의 평균치라고 합니다.  우리 고양동 성당 관할의 신자 비율은 6~7%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 각각은 최소한 2-3명씩은 비신자를 성당으로 인도하고, 그들에게 구원의 빛이 가 닿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확률이 나옵니다.  또한 상당수의 냉담자들의 역할까지 더해야 한다면 그 비율은 더 늘어나야 할 것입니다.

 

물론 신자의 비율을 늘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과 말씀이 더 널리 퍼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정한 방법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백한 내용 대로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으로 시작한 우리의 단체가 그대로 머물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얼마나 가까이 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만들었습니다. 주보에 끼워진 <성서를 얼만큼이나 읽었는지 표시할 수 있는 용지 배포. 사용 많이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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