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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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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신앙의 섬, 일본 고토를 가다 (중) 그토록 힘겨운 시간 어떻게 견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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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2-22 ㅣ No.775

신앙의 섬, 고토를 가다 (중) 그토록 힘겨운 시간 어떻게 견뎠을까


1869년 피 비린내나는 박해 피해 신자들 숨어 지낸 ‘키리시탄 동굴’, 아직도 가파른 동굴 벽 어딘가에 성모 형상 장식했었던 흔적 남아

 

 

1869년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다고 전해지는 ‘키리시탄의 동굴’. 동굴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그리스도상은 당시 신앙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1968년 설치된 것이다.

 

 

“주님의 평화, 그리스도의 영광.”

 

소설 ‘침묵’에서 세바스티안 로드리고 신부가 쓴 편지의 말머리 그대로 일본에서의 하루를 시작한다. 주님의 평화, 그리스도의 영광.

 

오늘은 가시라가시마성당 앞 그리스도인 묘지를 찾았다. 가시라가시마성당은 1887년 설립,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석조 성당이다. 돌로 지은 성당이다 보니 이곳 주민들은 하루에 1~2개의 돌을 운반할 수밖에 없어 낮에는 성당을 짓고, 밤에는 오징어잡이를 해 성당을 건축할 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박해 당시 신자를 고문하던 돌을 볼 수 있는데, 삼각형으로 자른 나무막대기 위에 신자를 앉게 한 다음, 그 위에 돌을 계속해서 얹는 형태로 고문을 했다. 신자들이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배교를 거부하자, ‘박해자들은 그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해 했으며, 그 힘이 하느님의 힘이라 판단하고 그 힘을 빼앗기 위해 신사에서 길어온 물을 억지로 마시게 했다’는 전승이 있다.

 

 

고토 성당의 독특한 점

 

고토에 피어있는 동백꽃.

 

 

고토의 성당을 순례하다 보니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새롭게 다가온다. 성당 안에 만발한 동백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동백꽃은 천장에 조각돼 있거나, 마리아상과 함께 꾸며져 있거나,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돼 있다. 흔히 보던 장미가 아닌, 동백꽃이다.

 

잠복 키리시탄과 불교 신자,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이 공존한다는 기리성당 지역과 도이노우라성당 등 여러 성당을 둘러본 끝에, 나는 배를 타고 ‘키리시탄의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와카마쓰항에서 나룻배를 타고 10여 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이 동굴에는 사연이 있다. 1869년, 피 냄새나는 박해가 닥쳤을 때 세 식구가 박해를 피해 동굴로 숨어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도 잠시, 밥을 해먹기 위해 몰래 피운 모닥불 연기를 지나가던 배가 발견해 지방관에게 통보한 것이다.

 

그 눈물겨운 과정을 생각하며 조심조심 가파른 동굴 안으로 발을 디뎌본다. 이곳에서 그 힘겨운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동굴 내부는 상상한 것보다 넓고, 텅 비어있다. 벽에는 성모의 형상을 장식했었던 듯 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가파른 바위를 밟고 밟아 비좁은 통로를 지났더니 어느새 출구가 펼쳐져 있다. 동굴 입구에 거대한 그리스도상이 세워져 있는데, 신앙선조들을 기리기 위해 1968년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한 신자가 위령성월 때마다 이 동굴에서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한다고 귀띔해줬다. 검게 입을 벌린 동굴 속 가득 차 있는 신앙의 열기가 차갑게 폐부를 찔렀다. 배를 태운 높은 파도가 흠칫 놀라 술렁였다.

 

고토의 성당에 성모·순교신심의 상징으로 다양하게 표현된 동백꽃 모양 장식.

 

 

고토 - 동백 · 우동 · 소의 섬 - 순교자들의 꽃, 동백

 

 

도이노우라성당에서 바라본 고토 전경.

 

 

제주도가 ‘돌, 바람, 여자’의 섬이라면, 고토는 ‘동백, 우동, 소’의 섬이다.

 

우선 고토 주민들이 자부심을 내세우는 ‘동백꽃’을 보자. 일본에 장미꽃이 수입된 것은 1800년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가톨릭이 일본에 들어온 것은 1500년경인데, 장미꽃 수입과는 300여 년의 격차가 있다.

 

따라서 성모신심이 깊은 일본 신자들은 그동안 장미꽃이 없어 고토에서 가장 흔한 동백꽃을 꺾어 바쳤다는 것이다. 고토 성당에는 목조, 석조, 콘크리트 등을 막론하고 다양한 동백꽃 모양을 볼 수 있다. 현재까지도 고토 주민들은 순교자들에게 동백꽃을 바치거나, 동백꽃을 ‘마리아님의 꽃’ ‘순교자들의 꽃’ 등으로 부르고 있다.

 

또 하나의 자랑은 고토 우동이다. 일본의 3대 우동으로 전해지는 고토 우동은 섬에서 생산된 자연소금과 동백유를 사용해 가늘지만 찰기 있는 면발로 만들어진다. 먹는 방법으로는 생계란과 간장에 넣어 먹는 것과 날치를 다린 물에 말아 먹는 방법이 있다.

 

이 밖에도 고토의 자연에서 자란 소고기와 키즈시라고 불리는 생선초밥 등이 이 지방의 특산물이다.

 

직접 돌을 나르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성당을 짓기 위해 노력했던 1800년대 당시 고토의 부녀자들.

 

 

박해 당시 신자들을 고문하던 모습을 재연한 장면. 삼각형으로 자른 나무 막대기 위에 신자들을 앉게 하고, 그 위에 돌을 계속 얹었다고 전해진다.

 

[가톨릭신문, 2010년 2월 7일, 고토(일본) 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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