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연중 19 주일-나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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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8-09 ㅣ No.470

연중 제 19 주일 (나해)

 

        1열왕기 19,4-8      에페소 4,30-5,2        요한 6,41-51

    2003. 8. 10.

 

주제 : 목숨과 생명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이 무더운 여름에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제는 휴가기간도 대부분 끝났고, 현실의 삶에 다시 신경 써야 할 때가 왔습니다.  삶의 활력을 위해서라면 여유도 필요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하고 살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만들 수 있는 ‘목숨과 생명’이라는 소리로 알 수도 있는 일입니다.

 

우리말 사전에는 목숨과 생명의 뜻을 특별히 구별하지 않습니다만, 목숨과 생명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글자가 다른 것이 그 첫 번째 원인일 것이고,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목숨에는 연연해하고 귀중하다고 하면서 생명은 소홀히 여깁니다.  음식과 음료를 먹어야 유지되는 것은 목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생명은 그런 차원으로 간단하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열왕기 상권 독서는 정치 권력자와 한판 붙었던 엘리야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피한 길이 생명으로 가는 길로 바뀌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복음에서는 생명을 이야기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목숨이라고 하는 차원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따르지도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반발이 나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목숨과 생명은 분명 다른 것입니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통하여 사람들이 생명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신 예수님의 뜻은 몰라라하고, 당장 배부를 빵을 찾고 있는 사람들과 뜻은 서로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종교생활에만 만족하고 끝낸다면 그것은 생명을 이야기하시는 예수님에게 왜 목숨에 대한 것은 말씀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신자들과 가끔씩 이야기하다보면 제가 신부이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분들이 애써 피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한때는 참 열심히 잘 나왔거든요. 그런데 하느님이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으시데요. 그래서 차츰 멀리하게 됐지요. 그래도 별로 잘못된 일은 생기지 않았는데, 영 제 마음이 찜찜해서 그냥 지내기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는 본인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자녀들을 위한 변호에도 통하는 말입니다.  종교와  생명을 헛갈려하는 사람이고,  목숨과 신앙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지난 연중 17주일부터 들었던 빵에 관한 기적 이야기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그 내용을 목숨에 관한 것으로 낮추어보면 곤란한 일입니다.  하느님이 안타까워하실 일이고, 예수님이 슬퍼하실 일입니다.

 

목숨을 먼저 생각하면 매번 먹을 것을 고민해야 하지만, 생명을 먼저 생각한다면 엘리야예언자처럼 먼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예수님 말씀의 의도를 깨달아 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기를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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