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9일 (수)
(녹)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강론자료

연중 17 주간 목요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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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7-30 ㅣ No.463

연중 17 주간 목요일 - 홀수 해

 

        출애굽기 40,16-21.34-38        마태오 13,47-52

    2003. 7. 31.

 

주제 : 내 삶의 참된 선택을 위하여

 

우리가 삶에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일입니다.  내가 한 일의 효과를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었다는 좋은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만큼 밖에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가능할 것입니다.  세상을 일부러 비틀어볼 생각은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선택을 받으려고 할 때 마음자세도 잘 살펴볼 일입니다.

 

‘제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스승 만큼밖에는 되지 못한다(루가 6,40)’는 말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평가받는 일에 그다지 목숨 걸 일은 아닙니다.  아니 그렇게 사는 일은 것이야 각자의 자유이니까 이렇게 저렇게 시비를 거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뭔가 생각해볼 필요는 있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 13장의 하느님 나라 비유의 마지막에 나오는 그물의 비유와 말씀의 결론을 전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선택하고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것은 그 생명을 다하고 마는 것이 인간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칙입니다.  내가 그 선택의 대상이 되었을 때, 선택하는 대상의 판단에 어느 정도 부합하기에 좋은 길로 가면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그 때 가서 항의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도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왜 선택받지 못하는 물고기의 신세가 되는 것일까?’하며 큰 소리로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소리입니다.  복음서의 다른 곳에 나오는 것처럼 영광스러운 곳으로 들어가는 선택의 문은 이미 잠긴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이 되고 나서 누구에게 이야기한다고 문이 다시 열리겠습니까?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을 읽는 오늘 독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인도하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담긴 법을 시나이산에서 받은 다음 그 명판을 보관하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광야라는 조건을 생각한다면, 호화롭고 아름답게 꾸미는 모습에 의아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가에 따라 훗날 내가 하느님의 뜻에 일치한 것이 있어 선택받을지 여부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무섭고 두려운 분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하느님을 두려운 분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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