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8일 (화)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강론자료

연중 6 주일-나해-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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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3-02 ㅣ No.391

연중 제 6 주일 (나해)

 

        레위기 13,1-2.44-46       1고린 10,31-11,1     마르코 1,40-46

 

    2003. 2. 16.

 

주제 : 삶의 공동체

 

안녕하십니까?

사람은 혼자 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혼인하고 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는 이야기이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때 사람은 음식으로 먹는 동물과 다른 특징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일도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태어난 다음 자라는 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 이 세상의 삶을 다 마치고 떠나야 할 때도 혼자 일을 해야 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만 그것만큼 서글프고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개인의 힘보다는 공동체의 힘을 생각하는 연중 6 주일입니다.

공동체가 개인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오늘의 주제로 정했습니다. 이렇게 주제를 정했다고 해서 개인과 공동체를 비교하여 개인은 무시돼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서 우리가 받아들이고 알거나 혹은 모르게 마취되어 사는 사회는 흑백논리(黑白論理)가 판을 치는 세상이고, 좌익과 우익이 대립하는 세상입니다.  세상을 이렇게 생각할수록 중용(中庸)의 길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 중용의 길만큼은 이상하게도 현실 삶과 평행선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있는 듯한 세상입니다.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 본당의 모습을 봐도 그것은 여러분들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오늘 우리는 마당의 한쪽 편에 세운 건물의 축성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당의 상황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그럴 듯해지도록 많은 사람들이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물심양면으로 애쓴 결과가 오늘 여러분들이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지금 보이는 모습으로 모든 것이 완결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은 있는 법이고, 해결해야 할 일은 더 많이 남은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실에 집착한 나머지 그 현실을 구성하는 바탕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 나와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 삶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것이 오늘 하느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가 돼야 합니다.

 

2003년 우리가 사는 세상과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때의 세상은 서로 다릅니다.  아니 세상은 같다고 말할 수 있어도 그 세상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의 삶의 자세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오늘 복음 말씀의 배경이 되는 상황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형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병이었습니다. 요즘에는 그 표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한센병’['나병'을 달리 이르는 말. 나(병)균을 발견한 한센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이라고도 부릅니다만, 그 병을 앓게 된 사람들은 하늘에 잘못한 일이 많아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멀쩡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멀쩡한 사람들의 무리로부터 떨어져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하나가 용감하게 예수님께 다가왔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병을 고쳐 주십사고, 그래서 내가 알고 친분관계를 맺었던 공동체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 오늘 복음의 상황입니다.

 

이런 부탁을 욕심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병이 치유된 사람이 잘못 드러낸 욕심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우리가 삶에서도 충분히 반복할 수 있는 일들이 이것입니다. 시작이 괜찮다고 해서 그 일의 과정과 결론까지도 괜찮은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쉽사리 착각하는 것이 그 일입니다.  나병이 나은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을 깨닫고 실천할 사람이었다면, 그는 예수님이 명하신 삶의 방법을 따랐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지시하신 일은 공동체로 그 사람이 돌아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고린토서간에 나온 것처럼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사실은 그 일이 힘든 것이 아니고, 사람이 모든 삶의 정성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싶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마치도 ‘모든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 치 오차도 없이 행동한 사람인 것처럼, 이 일도 힘들고 저 일도 힘드니, 그런 상황을 당연히 아실 하느님은 무조건 나를 이해해 주실 거라고 기대하며 삽니다.  우리가 그런 기대를 갖는 것이야 탓할 수 없는 마음이라고 할지라도 그 마음자세가 옳은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고 사랑의 신이지만, 우리가 내 맘대로 엉터리 삶을 살아도 변하지 않고 똑같이 대해주는 분은 아닙니다.  아니 하느님은 똑같이 대하시겠지만 인간 스스로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어 그 눈길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사람들과 맺으신 계약입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과 맺은 계약을 ‘쌍방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쌍방계약에는 양쪽 모두에게 의무가 부과됩니다.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고생하거나 손해를 보는 일은 없습니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들이 가끔씩은 이상한 소리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욕심을 담은 사람들의 행동이고 말일뿐입니다.  오늘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새기며, 내가 삶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잘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내는 연중시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듣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올바로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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