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0202-주님봉헌축일-2003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3-02 ㅣ No.389

주님 봉헌 축일  [ 0202 ]

 

            말라기 3,1-4    히브 2,14-18   루가 2,22-32 (또는 22-40)

 

    2003. 2. 2. (주일)

 

주제 : 봉헌의 참된 의미

 

안녕하셨습니까?  

어제는 우리의 마음을 봉헌하면서 우리보다 세상을 먼저 떠나 하느님의 축복을 필요로 하는 선조들을 기억하는 설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탄대축일부터 40일째 되는 날,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우리를 위한 축일입니다. 어머니로서 마리아와 아버지로서 요셉이 모세가 정한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라 ‘첫아들을 하느님께 성전에서 봉헌’하고, 그 어린 생명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를 기도한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과 다른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오늘 전례를 거행하는 우리가 말 그대로 실천됐는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입니다. 거기에 시간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일을 완벽하게 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도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그 사회에서 통용되던 규정을 지켰다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 삶에서 알아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찾는 날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받아들이고 믿고 사는지’ 돌이키라는 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입니다. 말라기 예언서는 ‘세상의 정화, 세상의 심판자로서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며 하느님이 오시는 길을 닦는 하느님의 특사에 대한 것’을 노래합니다. 구약성서의 하느님은 옳고 그른 것을 가려 심판하는 하느님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신약성서의 하느님은 ‘자비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겸손하게 율법 규정을 지키러온 사람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들려주고 작은 예물을 받으며 이제는 깨끗한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선언도 하는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축복을 얻으려고 하는 일에 조건은 있습니다. 우리가 엉터리로 살아도 하느님은 축복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한다면 사람의 욕심을 담은 잘못된 생각일 수 있습니다. 결론으로 이야기한다면, 하느님을 두려운 분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도 책망들을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성당에 가져다 바칩니다. 신앙 공동체를 위하여 내 시간을 사용하기도 하고 돈으로 봉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일이 내가 쓰고 남아서 가져다 바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닙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간과 돈과 정성을 바치지만, 어떤 마음으로 하는 행동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가 성당에서 바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따라했던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2003년에 통하는 규정은 ‘두려움과 억압의 율법’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훗날 유산을 물려주겠다는 일은 내가 늙고 힘없을 때 그 자녀에게 봉양(奉養)을 받자고 하는 일은 아닙니다.  자녀에게서 뭔가를 기대하는 일로 그렇게 한다면 부모는 언제나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 일은 손쓰기가 뒤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사람으로 사는 삶의 한계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을 어떤 모양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드러내는 삶의 모양이나 행동이 달라집니다.  같은 판단이 우리가 성전에 들어와서 하는 봉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봉헌을 기억하는 축일에 우리는 한 해 동안 사용할 초를 축복합니다. 초를 축복하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시대와 상황은 달라지고 요즘 세상에는 초보다 나은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있습니다만, 초는 밝은 빛을 이용하자고 우리가 만든 것이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을 받은 다음에 축성할 초의 역할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드러내야 할 삶의 모습도 생각했으면 합니다.  한번 태워서 없앨 초를 축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붙여 자신을 태우고 있는 초의 모습이 기도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 자세에 우리의 마음도 일치시키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초를 만들고 우리가 불붙인 초를 쓰는 의도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봉헌축일을 기억하며, 우리는 능동적으로 내가 가진 어떤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사는지 그 정성을 돌이켜 봐야 할 일입니다.  제단 위에 불이 붙여져 있는 초의 모습을 생각하며 내 삶도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78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