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주님 부활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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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1-04-14 ㅣ No.318

부활 대축일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았고, 그 동안 많은 부활절을 지냈습니다. 어릴 때는 성당에서 주는 부활계란을 받았고, 중, 고등학교에 가서는 부활절을 준비한다고 계란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매년 부활절은 전례 준비로 분주하게 지냈습니다.

 

 8년간의 보좌 신부 시절에는 부활찬송을 부르고, 본당신부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전례를 준비하면서 지냈습니다. 작년에는 처음 본당 신부가 되어서 부활전례를 준비하고 또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매년 부활절은 가고 왔는데, 늘 마음 한구석은 개운하지 않고 먼가에 쫓기듯이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째서 수도 없이 많은 부활절을 지내면서 나는 늘 개운하지 않고, 먼가 허전한 부활절을 지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 동안 나의 모습을 보면, 그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의 죽음"없이 그분의 부활만을 준비하고 머물지 못하고 허둥대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 저의 껍질 속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이. 늘 살아왔던 것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불편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게으름이.  그래서 주님의 부활과 함께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공포가. 죽음을 통해서만 살수 있다는 주님의 가르침에 귀 막음하고 있는 불구가, 죽음 뒤에 결코 부활하지 못할까봐 죽기를 거부하는 비겁함이 내 안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영광을 위한 치부를 하고 있는 위선을 보았습니다.

 

 부활은 나의 죄 때문에 수난 하시고 죽으시고 묻히신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나는 그 수난과 죽음에 떨어져 나와 있었고, 그 죽음을 지나쳐 부활만을 지향하며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 예절을 마치고 그분과 함께 나의 죄로 만들어 놓은 돌무덤에 묻혀 지내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가 성삼일 전례 때 가졌던 마음처럼 안주와 공포, 비겁함이 아닌, 그분의 사랑에 젖어 있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분주함 없이, 내가 그분을 부활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돌무덤에 묻혀 계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비록 육신은 무덤에 갇혀 있지만, 나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계신 그분의 사랑에 머물러야 합니다.

 

 때로, 詩는 많은 글보다 더 설득력이 있고, 더 호소력이 있다고 합니다.

부활절 선물로 제가 사랑하는 신부님의 詩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새벽 이슬에 맨발을 적시며

미명(未明)의 길을 걸어 빈 무덤을 찾았을

막달라 마리아처럼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를 향해 걸어오셨고

내가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전에

나를 위해 목숨을 주셨던

그 사랑의 깊이를 되짚으며

걸어갑니다.

언 땅을 헤집고 여기저기 고개를 쳐든 풀꽃들

목련꽃 송이송이마다

당신의 얼굴이 웃고 있습니다.

만나는 얼굴마다 당신이 되살아와서

나에게 말을 건네옵니다.

매일 지나다니는 지하도에

당신이 엎드려 계십니다.

이미 나비가 되신 당신을

옛 애벌레의 모습에서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처럼

함께 길을 가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애벌레처럼 징그러운 몸뚱이 부며대며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들 안에

당신과 같은 눈부신 모습이 있다는 것이

눈물겹습니다.

부활절 아침,

이 세상 어디에도 안 계신 분을

살아 있는 모든 것에서 만납니다.

쥐똥나무 숲 속에서 지저귀는 종달새에게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제는 네 몸을 나에게 다오

나는 네 몸 속에 들어가

너를 통해

거듭거듭 부활하고 싶다.

주님,

내 안에 온갖 어둠을 가둬 뒀던

이 캄캄한 돌무덤을 열어 주소서

매일매일이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걸어가는

부활의 아침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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