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강론자료

사순 4 주일-다해-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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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신부 [gold] 쪽지 캡슐

2001-03-24 ㅣ No.305

사순 제 4 주일 (다해)

 

        여호수아 5,9ㄱ.10-12     2고린 5,17-21     루가 15,1-3.11-32

    2001. 3. 25.

 

주제 : 기쁨을 가져오는 행동....?

 

교우 여러분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붙잡고 인사드리지는 않아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기쁘고도 반가운 일입니다.

 

오늘은 사순 네 번째 주일입니다. 다른 말로는 장미주일이라고 부르는 때입니다. 제사를 봉헌하는 사제가 입는 제의 색깔도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순시기에 늘 입는 무거운 느낌의 보라색 대신 장미색은 '고통을 잘 이겨내면 희망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주일의 특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즘 나라의 경제가 다시 어려워지고 있고, 새로운 어려움이 우리를 찾아온다고 합니다. 돈 가치는 떨어지고 경제는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집을 구하려고 애써도 전세보다는 월세가 더 많은 것이 돈이 그만큼 가치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업자가 다시 100만 명을 넘었다는 서글픈 소식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힘든 소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게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현실의 모습이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모습은 '사람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기억한다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어려운 때라고 해서 마음도 마찬가지로 한없이 처진다면, 상황을 바꾸는 일은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기쁨의 주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끝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참여할 수 있는 부활을 시작하는 시기이기에 무겁고 힘든 시기를 지내면서도 마음부터 그 자세를 달리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겪기 시작하면 희망도 함께 잃어버립니다. 침착하게 현실을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급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조상의 지혜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늘 맞이하는 현실에서 기쁨은 어떤 방법으로 다가오겠습니까?  한달 동안 열심히 움직인 결과로서 받는 월급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위안을 받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난 다음에 마음 뿌듯함은 얼마나 느끼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서 시작된 기쁨은 얼마나 오래 가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힘으로 하루나 한 달을 또 한 해를 살아가십니까?  이 질문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신명나지 않는 덤덤한 대답을 할 것입니다.  '기쁨이 있어서 사나요?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죽지 못해서 사는 거죠!'라고.  우리가 이렇게 대답한다면, 오늘 우리를 초대하시고 기쁨을 예고하시는 하느님은 서글플 것입니다.

 

삶에서 사랑을 느끼고 기쁨을 갖는 일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평화와 사랑은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잠시 동안만 우리를 기다리다 포기하는 분도 아니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아버지가 가진 마음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풍습도 우리와 비슷하게 어르신이 세상을 떠날 때에 자녀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로 등장하는 녀석이 갖는 마음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못된 둘째 아들놈은 살아 계신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나누어줄 수도 있는 유산을 앞당겨 나누어주십시오" 살아 계신 부모님을 향하여 자식이 유산을 청하는 것은 부모더러 빨리 죽으라고 하는 못된 짓입니다. 그런 녀석을 아버지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분이고, 그렇게 집을 떠난 자식을 문간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보입니다. 그런 분이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들은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잘못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살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삶의 모습을 바꾸기로 결정했다면, 더 이상 하느님을 무섭게 생각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완벽할 수 없기에,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도 인간의 완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한 자세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왔던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하고 40년 간을 방랑하다가 광야와는 차원이 다른 오아시스의 땅, 예리고에 이르러 그들은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처음으로 과월절을 지킵니다. 그 다음날부터 하늘의 만나도 내리지 않았다고 기록합니다. 이제는 그 정도면 사람들이 스스로 설 수 있다고 하느님도 판단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사람으로서 그 마음과 삶을 그대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쁨과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느님의 이런 축복이 우리 안에 올바른 열매를 맺으려면,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보여주셨던 그 사랑과 화해의 마음이 우리를 통하여 이웃에게도 펼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은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일보다 몇 십 배는 더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사는 일이 좋은 일도 아닙니다.

 

오늘은 기쁨의 주일입니다. 하느님이 가장 기쁘게 여기실 선물은 '미사 성제'에 정성껏 참여하는 일도 좋지만, 자신의 삶을 돌이켜 잘못을 반성하고 행동을 돌이키는 작은 아들의 회개하는 마음이야말로 하느님과 우리 모두를 기쁘게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이 미사 중에 내가 봉헌할 선물 가운데 하느님이 반기실 것은 무엇이겠는지 잠시 돌이켜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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