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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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신앙의 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전례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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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19 ㅣ No.424

[신앙의 해 특집]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12) “여러분의 몸을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제껏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과 계시헌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살펴볼 내용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Sacrosanctum Concilium), 또는 짧게 <전례헌장>이라 부르는 문헌입니다. 전례헌장은 공의회의 주요 문헌들 중 가장 먼저 반포되었는데,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전례에 대한 관심이 컸고, 시급하게 전례의 개혁이 필요했었던 것입니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가운데 교우들의 일상 신앙생활에 가장 크고 실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킨 것이 바로 전례에 대한 개혁이었습니다.


전례는 예수님의 활동

중세로부터 공의회 이전까지 전례는 이른바 ‘홍주’(전례서에 빨갛게 표기된 지시문)에 따라 거창하게 거행되는 퍼포먼스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제단은 신자들과 동떨어진 특별한 공간이었고, 전례 언어인 라틴어는 신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신비스런 언어였으며, 전례 성가도 전문 성가대원과 성직자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신자들은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없거니와 그것을 이해할 수조차 없었고, 생활과도 별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공의회의 교부들은 전례의 이러한 문제점들을 두고 도대체 전례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부터 궁리하였습니다. 공의회의 가르침은 요컨대 전례가 의식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사제 예수님

공의회에 따르면, 전례는 근본적으로 복잡한 규정이나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이요 행위입니다(전례헌장 7). 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사업을 교회의 전례 행위를 통하여 계속하고 계십니다(전례헌장 6).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것이 추상적인 사건이 아니듯이, 우리가 전례를 통해 그것을 기억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예식이 아닌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례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측면에서는 인간의 행위라 할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 거룩함으로 부르시는 분인 하느님의 활동입니다.


우리와 함께 기도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므로 전례를 통해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지만,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당신의 지체들인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의 맏형으로서 우리와 함께 아버지 하느님께 제물을 드리십니다. 예수님께서 바치시는 제물은 당신의 몸, 곧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면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예수님의 손에 맡겨 드리면,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상 제사에 합쳐져 거룩한 주님의 몸과 피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2013년 3월 17일 사순 제5주일 대구주보 3면, 최석환 요셉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앙의 해 특집]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13)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지난 회에서 전례가 무엇인가에 대한 공의회의 가르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요강은 전례가 단순한 의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지금 이 자리에 재현한다는 것입니다.


전례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신비롭게 예수님께 결합되어 있는 모든 신자들은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 바치시는 제사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례는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모두를 포함하는 교회 전체의 공적인 행위입니다(전례헌장 26). 신자들은 구경만 해서는 안 되고, 스스로 제물이 되고 제관이 되어 예수님의 지체임을 드러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능동적으로 완전히 참여하는 전례

전례헌장은 신자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무려 열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능동적인 참여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사제직에 합당한 내적인 준비입니다. 내가 제물을 드리러 하느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속죄하고 기도하며 하느님께 은총을 청한다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은총 지위에 있지 않다면 통회와 고해를 통해 하느님 대전에 나아갈 차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전례의 요소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공부하고 알아들어야 합니다. 환호, 찬송, 침묵과 같은 동작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전례헌장 30). 또한 알아들은 의미에 걸맞게 전례의 다양한 표현에 마음을 싣고, 육신의 여러 기능을 동원하여 참가해야 합니다.

공의회는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위해 신부님들이 하셔야 할 일도 따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목자들은 “전례의 정신과 힘에 완전히 젖어들고 전례의 스승이 되어야”(전례헌장 14) 합니다. 신부님들은 직무적인 사제 직분을 받으셨기 때문에 전례 가운데서 머리이신 예수님의 인성을 대리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만, 또한 신자들이 자기들의 사제직을 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교육해야 할 책임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3년 4월 14일 부활 제3주일 대구주보 3면, 최석환 요셉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앙의 해 특집]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14) 우리말로 기도하시는 예수님


지금껏 전례헌장의 가르침을 살펴보면서 전례가 사람의 의식이기 이전에 예수님의 행위이며, 우리는 예수님의 지체로서 마음과 몸을 다해 거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가르침들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보다 피부에 와 닿는 변화도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토착화’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다

공의회 이전의 미사는 모두 라틴말 경문을 사용했습니다. 독서나 복음 말씀을 제 나라 말로 읽기는 하였지만, 성찬기도를 포함한 전례 기도문은 모두 라틴어였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말뿐 아니라 전례의 여러 가지 표현들도 지방마다 다른 문화적 특색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라틴말 경문과 예식의 전통을 여전히 존중하면서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기네 말과 풍습을 전례에 도입하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아버지께 미사성제를 드리신다면, 우리말로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예수님의 지체인 우리가 함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례의 쇄신과 토착화

전례헌장은 21장부터 40장에 이르는 부분에서 ‘전례 개혁’이라는 세부적인 전례 쇄신에 대한 문제를 언급합니다. 이 부분에서 전례헌장은 미사나 전례력의 쇄신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지만, 그 이면에는 ‘전례의 토착화’라는 과제를 깔고 있습니다. 전례가 인간의 의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님의 활동이고 예수님의 지체인 우리가 함께 하는 행위라면,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시는 그 일을 우리의 삶과 역사와 문화 안에서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체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토착화입니다.


원천으로 돌아가서 바른 표현을 배우기

토착화는 전례를 우리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식으로 한다고 예수님께서 성찬례의 재료로 사용하신 밀떡과 포도주 대신 백설기와 막걸리를 쓸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토착화의 과제는 우리 가운데서 사제직을 수행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전례 가운데서 어떻게 알아뵙느냐, 또 어떻게 그분이 행하시는 사제직에 우리가 동참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착화의 제일 원칙은 성경과 성전을 통해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전례는 신기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풍습을 통해 참되고 유일한 신앙의 올바른 표현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2013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대구주보 3면, 최석환 요셉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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