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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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해하기5: 교회생활과 성경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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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18 ㅣ No.423

[신앙의 해 특집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해하기] (5) 교회생활과 성경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론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듯이 계시의 가장 기본적 바탕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예언자들을 통해서 꾸준히 이어진 이 ‘말씀하심’은 마지막 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더 이상 능가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사랑이 실재(實在)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구나 이 사랑이 우리 인간에게 당신을 내어주시는 데까지 이른다는 하느님의 “자기 전달”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계시는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런 사실은 우리 신앙의 자리인 교회생활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번 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성실한 사람으로, 하느님의 파견을 받아
하느님 앞에서 또 그리스도 안에서 말합니다.”(2코린 2,17)


1. 계시는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는가? - 성전, 성경, 교도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거룩한 전통(성전, 聖傳)과 교회의 책인 성경(聖經)을 통해서 전달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위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에서는 계시의 원천으로 여겨지던 성전과 성경을 분리해서 보려는 경향이 존재했지만 가톨릭 신학에서는 한 번도 이 둘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전과 성경은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흘러나와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에 상호밀접하게 연결되고 상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시헌장 9)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인간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시며 말씀하신 모든 것이 영구히 온전하게 보존되고 모든 세대에 전해지도록 배려하셨고, 당신 구원 계획안에 두셨습니다. 이것을 온전히 보여주시는 분은 하느님의 모든 구원 계시를 자신 안에 이루신 예수님이십니다.(2코린 1,20: 3,16-4,6 참조)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친교를 나누던 제자들을 당신 기억의 증인들로 세상에 파견하셨고 또 거기에 성령이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계시는 성령의 작용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전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도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파견 명령에 따라’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살아계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활동이 예수님을 통해서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증언이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이 살아있는 증언과 증거는 그런 의미에서 교회 전체의 삶에서 체험되는 ‘하느님 말씀’인 ‘성전’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성전은 그들과 직제자들이 성령의 도우심(감도)에 의해 그 체험을 기록한 ‘하느님 말씀’인 ‘성경’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초대 교회에서 성전과 성경은 동일한 삶의 자리인 교회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체험한 ‘증언’이요 ‘증언서’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목적과 근원을 지닌 성전과 성경은 교회 안에서 한분이신 그분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 살아계심을 알게 해 주는 거울과 같기에, 하느님의 참모습 그대로 얼굴을 맞대고 뵈올 수 있을 때까지(1요한 3,2 참조) 지상에서 순례하는 교회는 그 안에서 하느님을 관상하며 그분에게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계시헌장 7) 그러하기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권위있게 해석하는 임무는 초대 교회 공동체들이 그러했듯이 성령의 궁전인 교회의 살아있는 성전 안에서 가능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도직 또는 교도권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교회의 가르치는 권한이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온전히 넘겨 전달된 그것만을 가르치면서 그 말씀에 봉사하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의 파견에 의해 가지게 되는 교회의 권한이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사도들의 보증을 통하여 참된 하느님의 말씀을 수호하고 이것을 세상에 받은 그대로 선포하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알아들을 수 있고 실천할 수 있기에 이릅니다.


2. 성경과 교회 생활

이런 맥락에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은 구원의 신비인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우리에게 선사된 살아있는 계시의 선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역사 안에 있는 교회와 관계없이 주어져 있는 고정된 어떤 신적인 주술이나 경문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세히 눈여겨 들여다보면 성경에는 하느님의 진리와 거룩함이 항상 손상되지 않은 채,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시는 영원한 지혜의 놀라운 ‘자기 낮춤’이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성경은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의 형언할 수 없는 인자하심과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배려하고 보살피면서 얼마나 당신의 말씀을 인간을 위해 알맞게 사용했는지를 배워 익힐 수 있는 자리이며(계시헌장 13), 배워 익혀가는 가운데서 예수님의 강생 신비가 교회를 통해 지속되고 있음을 체험하고 깨닫게 되는 학교입니다. 성경과 함께 하는 교회는 이런 과정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또다시 들을 수 있고, 체험한 것을 선포할 수 있게 되며, 이로써 거룩한 전통(성전)을 지속적으로 이루게 되는 ‘살아있는 공동체’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살아있음 안에서 아버지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단순한 과거 사건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하여금 개인적 부르심을 받아 말씀과 함께 살아있는 관계를 체험하도록 해 주십니다. 교회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는 성경 안에서 보여지는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모두 기억하도록 해 주시며’ 아울러 이를 깨닫도록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계시헌장 8 참조)

예전(성경에 기록된 시대)에도 그렇게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여전히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신부인 교회와 끊임없이 대화하시며, 성령께서는 복음의 생생한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하여 세상 안에 울려 퍼지도록 하시고, 모든 신자들을 온전한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안에 풍성히 머물도록 해 주십니다.(계시헌장 8) 그러므로 교회는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오직 ‘하느님 말씀’으로 살아가며, ‘하느님 말씀’으로부터 언제나 새로이 자신의 여정을 위한 지침을 찾아냅니다.(계시헌장 21 참조) 무엇보다 먼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만이 복음의 선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선포되고 경청된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성사들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한 사람 한사람에게 말씀하시고 양육하고 계십니다.


3. 다함께 성경을

교회 생활을 돌아보면서 교회가 언제나 성경들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다는 사실을 재차 주목하게 됩니다. 역사 안에서 우리 교회가 때로 성경을 경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교회는 처음부터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취하고 그것을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계시헌장 21) 이렇게 전례 안에서 성경을 통해 말씀을 나누어 받는다고 해서 이것이 개인적인 성경공부와 연구의 필요성을 감소시킬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앞에서 봤듯이 교회의 성전과 함께 하는 성경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을 만나시며 당신의 살아계신 말씀을 체험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계시헌장은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에 맛들일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교회 안에서도 자국어 성경 번역은 물론 성경 읽기와 보급, 성경 연구 사도직의 활성화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월간빛, 2013년 3월호, 최석환 요셉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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