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교의신학ㅣ교부학

[교회] 어떤, 교회: 교회 공간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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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5-16 ㅣ No.822

[어떤, 교회] 교회 공간에 대한 고민 1

 

 

주일이면 1300명 가까이 오는 본당이 비어 있습니다. 보통 평일 9시쯤 집무실에 나와 오후 5시 30분쯤 사제관에 들어갈 때까지 성당은 조용합니다. 평일 오전, 저녁 미사 전과 후를 제외하고는 이 큰 건물에서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죠. 지금 저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성당 안에서 책을 읽다가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읽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오네요.

 

한국의 대형 종교 건물은 마치 대학교 건물 같다.

한적한 시간이나 계절에는 그 넓은 공간이

전부 버려진 채 존재한다는 것이 닮았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오후 6시 이후의 대학교 건물은

아주 쓸모없다.

대형 교회나 현대식 사찰은

일요일이 아니면 거의 텅텅 비어 있다.

그래도 종교 건물이 대학 건물보다 나은 건,

종교 건물은 텅텅 비어 있는 시간에도

뭔가 신비로운 아우라를 풍긴다는 거다.

김승일, 『지옥보다 더 아래』

 

교회는 하느님이 머무시는 곳이기에 작가의 말처럼 비어 있어도 ‘신비로운 아우라’를 풍깁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죠. 하지만 교회론에서는 좀 더 본질적인 의미로 교회를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라 말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고, 교회 건물도 어떻게든 하느님 백성이 모여야 그 의미가 살아납니다.

 

어떤 공간이 다목적이든 단일목적이든

그러한 목적을 가진 공간은

그것이 주어진 시간 내에 성취되는 것이라면,

그 시간이 지난 후 그 공간은 블랙박스에 갇혀 있게 되며,

갇혀 있는 동안 우리의 삶과는 전혀 관계하지 않을 수 있다.

승효상, 『빈자의 미학』

 

교회라는 공간의 목적이 미사 전례 거행과 교리교육(또는 레지오 회합)에만 있다면, 이 공간은 그 목적을 위한 시간 외에는 비어 있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도 집 안에 머물며 가르치기보다 갈릴래아 호수나 들판에서, 산이나 거리에서 말씀을 많이 하셨죠. 삶의 현장에서 소외된 이들을 품고 마음 깊이 사랑한 예수, 지난한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낸 예수,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따라 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부름받은(ecclesia)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교회인 것이죠. 세상에서 부름 받은 사람들이 모였기에 교회는 세상과 구분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성전이라는 공간은 그래야 합니다. 어떠한 장식이나 화려함 없이, 가장 단순한 공간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우리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성전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편으로 교회 공간은 사목적인 측면과 하느님 백성의 친교라는 관점에서 고민하고 배려할 부분도 많습니다. 단순히 부름받은 사람들이 잠시 모여 마음의 평안을 얻고 기도하고 가는 곳이 교회라면, 성전 외에 다른 부분은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가고 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꼭 공간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교회가 부름받은 사람들이 모여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곳인가, 비신자나 지역주민들, 미래세대인 유아들과 청소년들이 친숙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인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통해 죽음을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인가(도시에 있는 무덤-교구청 내 성직자 묘지 같은)에 대해서 우리 교회가 고민하고 배려하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어느 날 다윗이 주님의 집을 짓겠다고 나탄에게 말하자 꿈에 주님이 나와 다윗에게 전하라 합니다. '나는 어디에 속한 적도 없고,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는다고 너희에게 불평한 적도 없다. 그런데 다윗, 네가 내 집을 짓겠다는 말이냐?’ 주님은 성전 건물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닙니다. 어디에나 함께 계시죠. 그래서 교회는 주님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진흙탕 같은 이 세상 안에서 주님만을 위해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공간이 단순함 안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성찰하는 곳, 세상의 묵은 때를 씻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곳, 한편으로 미래세대와 지역주민들, 그리고 지금의 시대를 고민하며 녹여낼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월간 빛, 2024년 5월호, 박태훈 마르티노 신부(성김대건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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