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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4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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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전국 교구 교구장 사목교서
하느님은 선교이십니다.
교구의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하느님의 축복이 교구의 모든 형제들과 자매들께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2021년 10월 10일 시노드 개막 미사를 집전하심으로써 ‘2021-2023 제16차 시노드’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주제는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선교’(For a synodal Church: communion, participation and mission’)이고, 그 회기를 1년 연장하여 2024년 10월 말에 폐막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시노드 관련 법규를 수정하셔서, 지금까지 이루어진 대의원 주교들의 회의체(‘주교대의원회’)로서의 시노드와는 달리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참여하는 시노드’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우리는 2022년 상반기에 진행되었던 ‘교구 차원의 시노드’를 통해 ‘시노드’에 대해, 또 이번 ‘제16차 시노드’의 지향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교구 차원을 넘어, 나라 전체의 주교회의 차원과 그 너머 대륙별 차원까지 진행된 터라, 어쩌면 ‘이제 시노드는 우리 손을 떠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교황님께서 시노드 관련 규정을 수정하시면서까지, 그리고 회기를 2024년 10월까지 연장하시면서까지 이 시노드가 일회성 체험에 그치지 않고 교회가 앞으로 내내 걸어가야 할 모습이고 구현해야 할 지향점임을 강조하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서울대교구의 2024년 사목교서를 통해 ‘시노드 교회란 선교하는 교회’임을 강조하면서 “시노드 교회를 향해서 계속 걸어갑시다.”라고 호소하고자 합니다. 교구 차원의 시노드 경험 안에서, 본당 차원의 시노드나 각 공동체 차원의 시노드에 이르기까지, 교황님께서 강조하시는 시노드는 단순히 ‘지금 우리 공동체의 현황이 무엇이고, 문제점이 무엇이니 앞으로 이렇게 개선해 보자’는 정도의 결의를 하는 나눔이 아닙니다.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선교’(For a synodal Church: communion, participation and mission’)라는 이번 제16차 시노드의 주제는 ‘우리 교회가 어떤 모습의 교회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교회론적인 방향성의 제시이고, 우리 모두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주제가 드러내는 바가, “시노드 교회란 바로 ‘친교, 참여, 선교’의 교회”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시노드 교회는 결국 ‘선교하는 교회’ 곧 교회의 본질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선교’란 단순히 세례 받은 신자 수를 늘리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교는 “종교적 산물의 마케팅”이 아니며,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삶 자체가 선포가 된다.”라고 이번 시노드 의안집(52항)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지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계명을 지키며 착하게 살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해방시키는 한 인격과의 만남, 곧 구원자 하느님, 살아계신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여정이요, 그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나고, 그 사랑에 감화되어 우리도 사랑의 여정에 동참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선교는 좋으신 하느님을 만난 그 기쁨을 몸소 살고 증언하는 일입니다. 선교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선교의 토대는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드님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요한3,16) 이렇게 예수님의 생애가 성부로부터 파견되어 행하신 선교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과 행동과 인격은 하느님께서 피조물 안에 현존하시는 방식을 드러내고 성사화(聖事化)하셨습니다.’2) 스티븐 B. 베반스 & 로저 P. 슈뢰더, 「선포하는 기쁨 – 대화와 예언」,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2023, 57-58쪽 참조. 그러므로 ‘선교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 3) 같은 책, 85쪽. 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바로 선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입니다.”(복음의 기쁨 120항) 이번 시노드의 주제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친교, 선교, 참여’ 속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친교’(Communio)란 그저 사회적, 사교적 만남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결합’이라는 수직적 차원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라는 수평적 차원이 있다고 시노드 의안집(46항)은 설명합니다. 시노드 교회가 지향하는 ‘친교’란 무엇보다도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인격적 만남을 포함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성사와 말씀, 그리고 기도 등이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의 친교를 바탕으로 ‘우리 모두의 일치’라는 친교의 수평적 차원이 비로소 가능합니다. 더 나아가 ‘친교’ 안에는 하느님 앞에서 ‘본연의 나’ 자신과 맺는 친교(Communio)도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물질적 풍요로움과 감각적 화려함이나 안락함에 참행복이 있는 것처럼 매달릴 때, ‘나’는 ‘껍데기 나’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본연의 나’를 만나고 그 ‘참된 나’를 하느님 안에서 받아들이고 내 존재를 감사하게 되는 것도 ‘친교’의 한 차원입니다. ‘선교’(Missio)는 ‘친교’(Communio)를 지향하고 ‘친교는 선교적입니다.’ 4)요한 바오로 2세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 32항 참조; 제16차 의안집‘, 44항 재인용 참조. 선교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논리 대신에 하느님의 논리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모든 차원이 변화하여야 합니다. 교회로 볼 때 이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더욱 넓은 지역이나 더욱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변화시키고 바로잡는 것이기도 합니다.”(「현대의 복음 선교」, 19항) 그러기 위해서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인격적 만남, 곧 친교는 선교의 필수적 전제이고 지향입니다. ‘참여’(Participation)는 ‘함께 가는 길’(syn-odos)이라는 시노드의 어원적 뜻을 잘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인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이요 하느님의 사랑받는 피조물로서, 영원한 생명이요 사랑이신 하느님께 나아오도록 함께 부르심 받은 주인공들입니다. 사회적인 지위나 물질적 조건에 무관하게,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하느님 앞에서 세상의 주인공입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들이 다 함께 세상의 주인공임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애써야 합니다. ‘복지주의 함정에서 벗어나, 우리가 향하고 있는 새 하늘, 새 땅의 논리를 앞당기면서... 그분들을 동등한 품위를 지닌 존재로 인정하는’ 5) 제16차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 54항.사회 분위기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여러분, 2024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강조하시는 그 ‘시노드 교회’를 향해서 힘차게 계속 걸어가는 한 해가 됩시다. 하느님과 깊은 인격적 만남 안에서 형제자매들을 새로운 존재로 만나 나를 넘어 ‘하느님 안에서 우리’를 만들어 가고, 그 누구도 소외됨 없이 모두가 세상의 주인공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가면서, 복음의 빛과 기쁨이 사회 안에 매력적으로 풍겨 나가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특별히 2027년에 한국 교회 모두가 참여하고, 서울대교구에서 주최하게 될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함께 준비해 가면서, 청소년·청년들의 준비 여정이 교회와 사회의 청년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기도하며 함께 참여하도록 합시다. 교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이 땅에 복음의 빛을 전하신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3년 대림절에
1) 그동안 진행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과정을 통해 참여가 친교와 선교의 관계 안에서 온전히 이해될 수
있음을 인식하여 교황님께서는 그 순서를 변경하셨습니다. 이에 본 사목교서에서도 친교, 선교, 참여의 순
서를 따릅니다.(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의안집 44항 참조)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 정순택 베드로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교구장에 착좌하여 교구 사목을 맡아온 지 어느새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교구의 일꾼으로서 교구의 비전과 사목방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은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받기도 하고 제가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교구의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사제들에게 앞으로의 교구 전망과 제 생각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교구장이 되기 전부터 ‘하느님 백성의 대화’ 모임을 통해 네 개의 큰 기둥을 세웠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 청소년들이 찾아올 수 있는 교회, 생태환경을 살리는 교회, 그리고 모든 계층과 소통하는 교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1.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대와 나눔 교회는 세상 안에 있기에 인간 삶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특히 광주대교구는 5·18 민중항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유산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는 세상 안에서 좀 더 투신해야 합니다. 최근 코로나 이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고 더 이상 교회를 찾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에 교회가 개인적 기대나 공동체적 바람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본연의 역할과 복음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연대와 나눔입니다. 그동안 교회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왔습니다. 교회 행정을 위해선 자본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선교와 생활을 위해서도 분명 물질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물질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과 달리, 어느덧 교회도 자본주의 속성에 젖어 살아왔습니다. 부끄럽지만 이를 인정하고, 좀 더 말씀 중심적인 삶으로 살아가야 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소유냐 존재냐”라는 질문이 우리에게 알려주듯이, 교회는 좀 더 가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모두 내어놓은 소년의 마음처럼, 나의 것을 기꺼이 내어놓을 수 있는 사제의 첫 마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2.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요즘 언론상에 보도되고 있는 교육현장의 인권침해 사례와 청소년 문제들을 바라보면서 걱정이 많습니다. 수많은 학교 밖 청소년들의 현실과 그들이 당면한 문제는 심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미풍양속은 사라지고 어른으로서의 역할도 축소되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성적과 성공만이 마치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삶의 방향성을 하나로 정해놓고 이를 강요해 온,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은 꿈을 갖기보다는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에서조차 경쟁만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참된 우정과 선의의 경쟁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고 소득의 불균형 속에서 이미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 청소년들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단지 교육제도와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고 묵인하거나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청소년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3. 공동의 집인 지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로 온 국민의 우려가 큽니다. 국가가 좀 더 적극적인 대응으로 앞장서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 상황에서도 우리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지금도 자연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많지 않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나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생태환경위원회에서 인식의 변화를 위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공동의 집’인 지구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전 교구민들이 관심을 갖고 생태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일을 찾겠습니다. 4.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과 이제 막 소통을 시작한 느낌입니다. 신자분들은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통해 예전보다 더 능동적인 참여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수도자들도 새로운 교회에 대한 기대를 갖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사제들 또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사목활동에 열정을 갖고 있음을 저는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민과 소통해나가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더 다가서겠습니다. 5. 가난과 복음으로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의 사목은 예년의 큰 네 기둥을 중심으로 하되, 가난과 복음에 더 우선을 두려고 합니다. 전남 인구는 2080년까지 꾸준히 줄어들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래서 교구 조직을 확대한다거나 성당 건축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교회를 확장하지 않겠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듯이 신자들의 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힘을 쏟고, 가난의 영성을 체험할 수 있는 실제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가난한 형제들을 옆에 두고 나만 홀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실 때 가난한 이들과 아픈 이들, 소외된 이들과 죄인들을 먼저 챙기셨습니다. 교구에서도 힘겹게 홀로 살아가는 어르신과 이주민, 난민과 장애인, 그리고 노숙인을 위한 사목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갈 공동체는 그저 친목 단체가 아니라 주님의 뜻과 하나되는 친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대림절로 시작되는 새해에는 주님이 원하셨던 공동체를 생각하며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2023년 12월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옥 현 진 시몬 대주교
2023-2024 친교의 해 교구장 사목교서
우리 교구는 2030년까지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노력으로 지난 두 해 동안 ‘하느님 말씀을 따라’ 라는 주제로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고, 말씀으로부터 힘과 희망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 기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사태로 신앙생활의 형태와 방법에 큰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알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말씀을 비롯해서 친교, 전례, 이웃사랑, 선교라는 우리 여정의 핵심 가치들은 교회의 시작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중단없이 추구해야 할 과제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을 가까이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던 지난 두 해를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 두 해 동안에는 ‘친교’의 가치를 더욱 깊이 깨닫고 활성화하는 데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 교구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교회는 제16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이하 시노드)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구호로 축약되는 시노드 정신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고 그분의 신비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서로를 향해,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고, 교회는 그러한 하느님의 친교를 본받아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시작부터 온 세상의 일치를 증거하고 촉구하는 가운데 삼위일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삶과 사명은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가운데 더욱 절실하고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고 또 요청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끝 간 데 없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열광적 소비주의에 휩쓸리면서,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향해,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해 사는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관계는 점점 더 약화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속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감염병 사태는 이런 문제들이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이면서 동시에 앞으로도 각자가 쌓아 올린 성채 안에 고립된 삶을 살도록 부추기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교회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친교를 살고 증거하는 사명을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하며 친교의 영성을 익히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친교의 영성은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양보하며, “서로 남의 짐을 져 주고”(갈라 6,2),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붙어 다니면서 경쟁심과 출세욕, 불신과 시기를 불러일으키는 이기심이라는 유혹을 물리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친교의 영성은 다른 사람과 공동의 집인 지구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향해,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해 살 때 비로소 우리 삶의 의미와 보람을 얻게 된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따라서 우리 교구는 앞으로 두 해 동안 성령을 통한 대화와 경청이라는 시노달리타스의 원리를 통해 친교로 나아가는 모습을 더욱 명확하게 실현함으로써 교회가 세상에 친교를 살아가는 성사임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저는 특별히 복음적 친교를 살아가고 있는 수도공동체들의 가치에 주목하고 많은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복음 삼덕을 살아가는 수도공동체들은 친교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수많은 영성적 보화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친교를 살아가는 모범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함께 기도하고 경청하며 대화를 나누는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수도공동체와 본당, 그리고 교구 내 기관들과 단체들이 서로 배우고 익히며 실천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선 교구장인 저부터 시노달리타스를 통해서 친교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교구 내 모든 공동체는 시노달리타스의 삶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극복하면서 친교의 영성을 드러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데 노력합시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과 복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천주교대구대교구장 |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 교구장 사목교서는 2023년에 이어 2024년까지 적용됩니다.
2024년 사목 교서
사랑하는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여러분!
교회의 생명은 성사 은총과 복음 선포입니다. 주님께서 세워주신 성사는 교회의 첫째가는 생명이며 복음 선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며 사도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마태 28,18-20).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교회 안에서 가장 큰 주제로 떠오른 것이 시노드 정신입니다. 세례받은 신자들이 단순히 성사 은총의 수혜자가 아니라, 사제와 함께 교회 운영과 복음 선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제 성소는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한 봉사는 초대 교회 때부터 교회의 당연한 활동이었으며, 생태환경 위기 극복은 오늘날 모든 국가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당면한 과제입니다. 이 가운데에 사제 성소의 계발과 양성 그리고 성사 특별히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의 충만한 은총은 더 이상 사목 교서의 한 항목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신부님들과 형제자매 여러분의 기도와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드립니다. 2023년 사목 교서는 이러한 주제들을 담았습니다. 사목 교서의 내용과 사목 현장에서 필요한 과제들을 담아 주님 교회의 성장을 위해 애써주신 신부님들과 형제자매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024년 역시 우리 교구는 큰 틀에서 2023년과 같은 주제들로 교회 내적 운영과 세상을 향한 복음적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2024년 사목 교서를 위한 사제단과 사목 평의회 등에서도 2023년의 대부분의 주제들을 지속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노인 사목과 청소년 사목 그리고 평신도 양성과 교육을 위해 힘써줄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우선 2024년 사목교서는 2023년의 주제들을 그대로 지속해 갈 것을 말씀드리면서, 2023년의 활동들을 검토하여 더 깊은 관심과 활동을 필요로 하는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제단과 형제자매 여러분께서 제안해 주신 여러 주제들은 2028년 교구 설정 80주년을 준비하는 장기적인 사목 계획을 세우면서 포함시키고자 합니다. 1. 쉬는 교우 만남 코로나 사태 이후 신부님들의 사목활동과 신자 여러분의 활동으로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본당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코로나 사태 이전과 비교하여 평균적으로 70%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에서 회복되었기에, 아직 우리가 더 힘써야 할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신부님들과 교우 여러분들께서 쉬는 교우들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신앙을 격려하시는 데에 지속적인 힘을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예비자 교리 후 지속적인 관심 여러 가지 동기로 교회의 문을 두드린 형제자매들이 예비자 교리를 마치고 세례를 받을 때, 교리 내용을 아직 충분히 익히지 못하고 신앙생활이 내면화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목자와 형제자매들이 새 영세자를 세례 이후에도 신앙적으로 돌보아 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사목자들이 사목위원들과 대부 대모의 협력을 받아 새 영세자들이 견진성사를 받을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고해성사와 미사 참례는 물론 기도 생활과 성경 공부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3. 하느님 백성이 함께하는 시노드 교회 올해 10월 4일부터 29일까지 세계 주교 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가 진행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황직을 수행하는 초기부터 시노드 교회를 강조하셨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선교 상황과 더불어 물질주의적인 경향이 점점 짙어지는 환경에서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하여 모든 신자들이 복음의 주체로서 양성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의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구에서도 몇 년 전 3년 반 정도의 긴 교구 시노드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목 현장에서 신부님들도 신자들과 함께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 운영을 위해 고심하고 실천해 오셨습니다. 가야 할 길임을 알면서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시노드 교회의 정착과 성숙을 위해 더 고민하고 함께 길을 찾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이를 돕기 위해 지난 1년여 시간 본당 사목평의회 회칙 제정을 위해 많은 토의 시간을 가졌고 이제 시안이 작성되어 사목 현장에 보내드릴 것입니다. 사목평의회 회칙은 시노드 교회 정착을 위한 답이 아닙니다. 시노드 정신에 따른 공동체 운영을 위한 조직과 회의체 운영 등 영감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 뜻을 잘 이해하고 사목 현장에 적용하시면서 사목자와 신자들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4. 생태환경의 회복을 위하여 2022년 9월 26일 대전교구 2040 탄소중립 선언 이후 교구의 여러 본당과 시설에서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셨습니다. 2023년 8월 말 현재 1,285명의 조합원 등록과 11억여 원의 출자금이 있었습니다. 본당 및 기관 30개소에서 에너지 진단이 있었고, 이는 2024년 80개소, 2025년 200개소로 완료할 계획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소는 2023년 8월 말 현재 13호기가 건설되었고, 연말까지 12호기 증설, 2024년에는 신규 30기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통계에서 보듯이, 많은 본당과 시설에서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고 있습니다. 신부님들과 신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많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아직 실행된 비율이 아주 높지는 않습니다. 이 사업의 초기 비용 문제로 어려워하는 본당들이 있기에, 이 운동의 담당 사제들은 신자 여러분의 출자를 통해 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부님들과 형제자매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5. 지구회합의 사목적 협의 착한 목자로 양성되어 사목에 열정을 다하고 있는 신부님들이 마련하신 좋은 사목 계획들이 좋은 열매를 맺는 데에 사제 지구회합을 중심으로 하는 사제단의 사목 협의가 중요한 역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통상 사목구 주임사제는 교구장의 사목 교서를 바탕으로 담당 사목구에 적합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힘써 실현해 왔습니다. 각 사제는 훌륭한 사목자이지만 사제 개인의 역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교구에서 계획하고 실행하는 여러 프로그램들 역시 모든 사목구에 필요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많은 신자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양한 달란트를 지닌 사제들이 함께 사목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한다면, 사목에 새로운 시각이 열리는 것은 물론 고해성사, 신자 재교육 등에서 협력 사목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지구 사제단은 이에 아주 적합한 규모입니다. 지역적인 공통성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지구 사제단의 사목적 협력은 사제 개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직무 수행의 협력이기 때문에 사제단의 형제애 증진을 위해서도 매우 유익합니다. 저는 지구 사제단이 이러한 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구장 주교의 사목 교서가 발표되고 이를 바탕으로 사목구의 구체적인 사목 계획이 수립된 적당한 시기에 지구 사제단의 모임에서 각 사목구에서 마련한 사목 계획을 함께 공유하고 필요한 논의를 하는 시간을 매년 가져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지구 단위의 사목분야 모임과 회합에 평신도 봉사자들의 참여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우리 교구에서는, 교구 사목평의회뿐만 아니라 평단협, 여성연합회, 사회복지, 사회복음화, 청소년 분과 차원의 지구 협의회를 통해 다양한 사목 주제에 대한 지구 단위의 만남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대전교구 시노드 이후 조금씩 이루어온 성과입니다. 지구 단위의 평신도 모임과 논의 구조를 더 격려해 주시고, 사목구와 지구 차원의 구체적인 사목 계획 수립에 평신도 봉사자들의 신앙 소명의 성찰과 사목 동참의 활성화가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2024년 사목 교서는 2023년의 사목 교서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이어가면서 그 실천을 더 심화시켜가자는 취지입니다. 이에 신부님들께서는 신자들과 더불어 2023년의 사목 계획을 함께 검토하시면서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성사의 은총이 충만하고 사제 성소가 풍성한 교회 그리고 물질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스스로 가난한 복음 정신으로 가난한 형제들을 돌보는 영적인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되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2023년 12월 3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대전교구 교구장 주교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2024년 사목교서
2023년 우리는 자비의 하느님과 함께했습니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힘겨웠던 시기를 뛰어넘고 다시 시작하는 은총을 체험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며 2024년 시작해야겠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저희 곁에 계시며 깨달음을 주십니다. 금년에도 이끄심 따라 살 것을 다짐합시다.
지난해를 돌아보면 저희 교구에 많은 은총을 주셨습니다. 새 교구청에 무난히 입주했으며 교우님들 많이 방문하시어 기쁨을 나눴습니다. 새해에도 교구 공동체가 일치하도록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밝은 기운의 2024년을 기대합니다. 2023년에도 일들은 많았습니다. 사무처와 사목국 그리고 복지국, 청소년국, 관리국에선 지속적인 교육과 행사를 준비하고 잘 마무리했습니다. 특히 교구 내 공소방문 행사에 많은 교우들이 참여해 화제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공소와 성지를 순례하며 체험의 시간 갖기를 바랍니다. 순례의 감동은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입니다. 방문자들을 편안하게 맞아주신 공소 교우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복음 선포는 신앙인의 소명입니다. 단순하고 기쁘게 믿음의 길을 걸으면 깨달음을 만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즐겁고 소박하면 자연스레 이웃에게 전하고 싶어집니다. 생각이 마음을 바꾼다고 했습니다. 믿음에 대한 기쁨과 단순함은 언제라도 묵상하며 실천해야 할 과제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성당가기를 머뭇거리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냉담교우 숫자도 예전보다 늘어났습니다. 어떻게 이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을는지요? 공동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해법을 찾아봅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모이고 이집 저집에서 빵을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사도 2,46) 초대교회는 일치와 나눔을 먼저 생각했으며 단순함과 기쁨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생활마저 함께하려는 순수한 공동체였습니다. 초대교회처럼 즐겁고 소박한 공동체를 추구해야 합니다. 신앙에서 멀어진 이들이 교회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초대교회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신앙인 각자는 깊은 믿음과 감사의 신앙으로 이러한 시도에 응해야 합니다. 재교육을 통한 실천으로 나아간다면 많은 분들이 주님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기초공동체는 가정입니다. 가장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할 곳이며 다음 세대로 신앙이 이어지는 공간입니다. 함께 기도하며 함께 성경말씀도 읽는 가정이 되어 주십시오. 기초기도인 아침저녁 기도와 묵주기도를 늘 바치면 가정성화에 큰 선물이 됩니다. 함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면 무엇이든 들어주실 것입니다. 주말엔 가끔씩 가족이 함께 순례하며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우리 주위에 여러 형태의 아픔과 고통 속에 있는 가정도 생각해야 합니다. 이들을 위한 기도와 다양한 봉헌에도 동참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우리 교구엔 이주민 노동자와 그들의 가정도 참 많습니다. 그들에게도 관심 갖는 한 해가 되기를 당부드립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현존을 몸으로 느끼려면 그분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 했습니다. 올해는 성경말씀을 가까이하면서 지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성경을 읽고 쓰면서 영적 기쁨도 체험하시길 기원합니다. 성경필사는 참 좋은 방법입니다. 2024년도에는 성경을 통해 주님 말씀을 새롭게 만나는 계기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기도는 힘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천상의 에너지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밝은 쪽으로 나아가려면 도움의 은총은 꼭 필요합니다. 기도와 성사생활 그리고 성경쓰기는 그 은총의 에너지에 가까이 가는 행동입니다. 모든 가정에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실천 사항> 1. 기초기도인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매일 바칩시다. 2. 매주 1회 평일미사에 참례하며 영성체를 합시다. 3. 매주 1회 가족이 모여 함께 묵주기도 5단을 바칩시다. 4. 매월 첫 주일을 가정주일로 정하고 가족이 함께 주일미사에 참여합시다. 5. 성지순례와 공소방문을 자주 합시다. 6. 본당 사도직 단체에 가입하여 함께 기도하며 활동합시다. 7. 청소년시설과 복지시설에 도움을 줍시다.
2024년을 준비하는 대림 첫 주일에
교구장 서리 신은근 바오로 신부
2024년 부산교구 사목지침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3년간 ‘신앙과 말씀의 해’, ‘성체와 말씀의 해’, ‘친교와 말씀의 해’를 지냈고, 〈코로나19〉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왔습니다. 그동안 하느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며 어려움을 극복한 모든 분에게 격려와 깊은 감사를 드리고, 주님 은총이 언제나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2023년 ‘친교와 말씀의 해’에는 ‘청소년·청년의 해를 준비하며’라는 부제를 제시하였고, 올해부터 2026년까지 3년간은 ‘청소년·청년의 해’를 본격적으로 지내면서 그들을 위한 우리의 역량을 모으고자 합니다. 청소년과 청년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의 희망이며 교회의 현재’로서 보석같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 물질 중심주의, 세상 성공을 우선시하는 경향, 입시 위주로 편향된 교육, 사회의 여러 유해한 환경 등은 청소년과 청년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하고 삶의 방향을 잃게 합니다. 지금까지 각 교구는 청소년 사목에 대해 다방면으로 고민하고 연구하며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였고, 청소년 사목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서로 기도하면서 머리를 맞대어 논의하고, 청소년과 청년에게 귀를 기울이면서, 그들과 함께하기 위한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 이러한 우리의 정성과 노력의 가장 큰 목표는 청소년과 청년이 ‘하느님 안에서 복음화의 주인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청소년·청년의 해’의 기본 주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루카 24,13-35 참조)을 바탕으로 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삶의 방향을 잃은 두 제자에게 주님은 가까이 다가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시면서 이야기를 들으셨고, 당신에 관한 성경 말씀을 풀이하신 후 빵을 떼어 나누어주시면서 당신이 부활하여 살아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 삶의 방향을 되찾은 두 제자는 즉시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합니다. 여기에서 세 가지 주제를 발견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가시어 함께 걸으시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신 것이고, 둘째는 말씀과 성찬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신 것이며, 셋째는 제자들의 복음 선포입니다. 이 세 가지 주제를 ‘청소년·청년의 해’에 맞춰, 2024년에는 ‘환대와 경청의 해’, 2025년에는 ‘배움과 체험의 해’, 2026년에는 ‘선포와 나눔의 해’를 지내고자 합니다. ‘환대와 경청의 해’에는 본당 차원에서 먼저 청소년과 청년을 반갑게 맞이합시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그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경청하며, 지원하는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배움과 체험의 해’에는 지구 차원에서 청소년과 청년이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주님을 알고 깨닫도록 돕고, 주변 본당과도 협력하여 하느님을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힘써주십시오. 이를 바탕으로 ‘선포와 나눔의 해’에는 교구 차원에서 그동안 청소년과 청년이 만났던 주님을 서로 나누는 장을 마련하여, 그들이 하느님 안에서 복음화의 주인공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2024년 올해는 ‘환대와 경청의 해’로 선포하며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1. 환대하고 경청하는 본당 공동체를 만듭시다. 교회는 서로 모여 기도하고 나누며 귀를 기울이고 환대하는 공동체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었다.’(사도 2,46 참조)고 성경은 전합니다. 교회는 하느님께 기도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동체요, 주님께 우리 삶을 맡기고 불안과 두려움이 아닌 기쁨과 행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먼저 기존 교우들끼리 서로 보듬고 사랑하면서,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이끌어줍시다. 그리고 신앙에서 멀어져 삶의 방향을 잃은 청소년과 청년을 다시 교회로 초대하고, 젊은이를 반갑게 맞이하며 우리의 따뜻함을 전합시다. 서로의 삶을 나누고 경청하면서 하느님 사랑과 위로를 전하면 아름다운 본당 공동체로 거듭 성장할 것입니다. 2. 청소년 사목에 서로 협력합시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1코린 12,12) 본당내 많은 분과와 단체도 한 몸이라 생각하면서 협력하고 서로를 돌보아야 합니다. 올해는 각 분과나 단체가 청소년과 청년을 먼저 돌보면서, 그들이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봅시다. 몸의 지체 가운데 아프거나 약한 부분이 있으면 더 감싸고 돌보듯이, 청소년과 청년이 그런 상황에 있음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힘을 모읍시다. 3.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읍시다. 우리 삶과 활동의 근원은 임마누엘 하느님이시고, 실의와 절망에 빠져있던 두 제자에게 다가가신 예수님은 당신에 관한 성경 말씀을 풀이하시면서 그들에게 믿음과 확신과 희망을 전하셨습니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 여러분! 삶이 힘들고 나 혼자라 생각이 드는 그때, 내 옆에 예수님이 동반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주님은 매 순간 여러분과 함께하시면서 여러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삶의 여러 가지를 예수님과 나누고 이야기하십시오. 주님이 나와 동행하심을 믿으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고, 하느님의 사랑 받는 사람, 세상에 필요한 사람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직자, 수도자, 교형 자매 여러분! 2024년 ‘환대와 경청의 해’를 시작으로 우리 교회에 기쁨이 끊이지 않고 서로 환대하고 경청하며 우리와 동반하시는 주님을 닮아 활기찬 본당, 사랑과 위로가 가득한 본당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더불어 본당, 지구, 교구가 긴밀히 연결되어 많은 청소년과 청년이 하느님 안에서 행복을 찾고, 복음화의 주역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이 동력이 마침내 2027년 서울세계청년대회로 연결되어 큰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교구민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중점사항 1. 환대하고 경청하는 공동체 만들기 2. 청소년·청년을 위한 공간과 시간 만들기 3. 청소년·청년에게 믿음 전수하기 4. 지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천주교 부산교구장 손 삼 석 요셉 주교
2024년 ~ 2026년 교구장 사목교서
Ⅰ.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우리는 수년간에 걸친 코로나 감염병 위기를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점 위에 서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뿐 아니라 교회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자 지난 사목교서에서는 ‘일상중심의 신앙실천’과 ‘자기주도적 신앙실천’을 제안하였고, 교구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로 우리 교구는 길었던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예전의 상태를 회복하려면 아직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교구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 시련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난 2023년은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이 뜻깊은 해를 맞아 우리 교구는 오늘의 복음화 현실을 새롭게 진단하고, 이에 부합하여 교구의 선교 사명을 새롭게 하려는 의도로 지난 2018년 개편된 대리구 제도를 다각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새로운 대리구 제도와 교구 편제가 시행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비대해진 교구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친교와 소통을 바탕으로 전 교구민이 능동적으로 교회의 선교 복음화 사명에 참여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제도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새로운 대리구 제도에 담긴 ‘통합사목’이 현재 보편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교회 쇄신의 노력과 일맥상통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통합사목은 교회 내 모든 구성원의 ‘유기적 협력’을 그 원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통합사목을 기반으로 지구 중심 사목과 연합 사목이 상호 연속성을 가지고 교구 사목정책의 큰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구성원 모두가 역량을 모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는 향후 3년간 우리 수원교구의 모든 구성원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룬 지체로서 교회의 선교 사명에 각별한 관심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시노드 정신에서 영감을 얻는 통합사목을 향해 중점적으로 노력해야 할 사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Ⅱ. 통합사목을 위한 기본원리 -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 보편교회는 2021년 10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여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번 세계주교시노드를 시작하면서, 특별히 미래를 향한 우리의 비전이 시노드적인 교회에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시노드적 교회란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으며 구성원 전체(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친교로 드러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친교, 참여, 사명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추구하는 중심 가치입니다. 시노달리타스의 기초는 세례받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1코린 12,27 참조)부여받은 공통된 품위와 사명과 은사를 인정하고 동행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 한국 교회 종합 의견서”에서 시노드의 여정 중에 함께 걸어가야 하는 동반자로서 동반자적 인식과 믿음의 부족이 경청의 부족으로 이어진다고 진단하였습니다. 이러한 진단은 우리가 서로를 동반자로 인식하며 서로에게 경청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있는지를 묻게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동등한 품위를 지니며, 형제적 친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선포하는 사명을 함께 수행합니다. 이는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가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진리에 봉사하는 데에서 모두가 능동적이며 책임 있는 주체임을 의미합니다. 물론 교회의 모든 활동에서 ‘주인’은 교회를 살게 하시고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게 하시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성령’이시며, 우리는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주체로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령의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여정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서 서로 신뢰하고 경청하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혐오와 배제의 유혹을 넘어, 우리 안에 존재하는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 안에서 일치할 수 있도록 인내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부족한 것이 있을 때, 많은 것을 가진 쪽에서 부족한 쪽을 채운다면 함께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통합사목의 기본 취지가 시노달리타스에 담긴 교회 쇄신의 의지와 같은 원의(願意)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울러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정신이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로운 대리구 제도와 교구 편제 개정에 담겨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신에서 교구 내 모든 구성원은 공통된 품위와 사명 안에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동반하며 식별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 보완하고, 함께 교회 사명에 참여하며 살아가려는 상보상생(相補相生)의 길을 가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의 도움으로 우리는 통합사목의 구체적 실천 원리인 지구 중심 사목과 연합 사목이 공간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야 함을, ‘우리 반에서는’ ‘우리 구역끼리’ ‘우리 본당에서만’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여정을 위해 우선 수원교구 내 모든 공동체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기에 앞서 성령의 뜻을 청하고 듣는 기도 시간을 가지고 회의에 임해야 합니다. 교회공동체의 결정이 곧 성령의 뜻을 따르는 결정이 되기 위해서는 사안에 맞는 기도를 선정하고, 교회 구성원들이 같은 지향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미사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공동체가 ‘인식하기-해석하기-선택하기’라는 성령의 활동을 식별하기 위한 과정(「복음의 기쁨」 제51항)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인식하기’란, 구체적인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공동체의 성장지표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해석하기’란, 영적 체질개선을 위해 공동체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선택하기’란, 성령의 활동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통합사목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성장지표는 말씀의 증거생활(μαρτυρία), 축제적인 전례거행(λειτουργία), 이웃섬김(διακονία), 친교생활(κοινωνία)입니다. 친교생활은 앞선 세 가지 지표가 어느 한쪽으로 편중됨 없이 서로 고르게 연동하여 상보상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저는 앞으로 3년간 1년 단위로 교구 구성원 모두가 친교생활을 위해 노력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1. 2024년에는 친교를 위해 일상 속 말씀의 증거생활에(말씀 중심의 일상생활) 2. 2025년에는 친교를 위해 축제적인 전례거행에(전례 중심의 일상생활) 3. 2026년에는 친교를 위해 이웃섬김에(애덕 실천 중심의 일상생활) 집중하기 Ⅲ. 통합사목의 실천 원리 - 영적 체질개선 통합사목은 영적 체질개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통합사목의 실천 원리인 영적 체질개선을 위해 지금 우리 공동체에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가장 필요한 일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고른 성장을 목표로 삼는 통합사목은 그 실행과정에서 유기적 협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성장 조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내부에 여전히 결핍되고 막힌 부분이 있거나 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균형 잡힌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기존의 편중된, 곧 지금 잘되고 있는 사목에만 집중하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전체적으로 ‘발육 부진’의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적 돌봄의 대상이 누구이고 결핍된 요소는 무엇인지(최소치 사목), 나아가 공동체의 고유한 영적 자산을 발굴하고, 유능한 부분을 살릴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지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최대치 사목). 이어서 구성원의 합의와 상호 협력으로 이끄는 실행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구가 결연한 의지로 실천에 옮기려는 통합사목은 한마디로 교회 쇄신 차원에서 신앙의 수많은 유기적 지체들, 예를 들어 소공동체, 본당, 지구, 대리구, 교구로 이루어진 공동체 자신이 결핍된 요소를 스스로 돌보고 성장시킴으로써 공동체가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영적 체질개선입니다.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토양을 우리는 복음의 기쁨에서 찾아야 합니다. 복음과 신앙의 핵심은 언제나 기쁨입니다. 말 그대로 복음은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하며 맛본 기쁨의 체험은 신앙인 자신을 내적으로 성장하게 하고, 다른 이들과 그 기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복음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다그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2코린 5,14 참조). 진정한 기쁨은 다른 이들과 세상으로 확장되면서 더 깊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기쁨을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화라는 사명의 수행은 강요나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초대하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 14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 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개종 강요가 아니라 ‘매력’ 때문입니다.” 저는 수원교구를 이루고 있는 교회의 모든 지체가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앞으로 3년간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실천할 것을 제안합니다. 1. 2024년에는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최소치 사목 진단하기 2. 2025년에는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계획 수립하기 3. 2026년에는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계획 실천하기 IV. 통합사목의 주요 대상 - 생태적 회개 통합사목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생태’입니다. 통합사목 차원에서 우리는 모두 생태적 회개로 초대되고 있습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함으로써 인류에게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나아가 교황님께서는 현재의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부정적인 영향들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종말이라는 말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함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성장 중심의 가치관을 버리고 생명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 사회의 성장 담론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태초부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온갖 것을 다스리도록 부여해 주신 창조질서 보전에 관한 바른 의미를(창세 1,25-26 참조)되새기는 가운데 생태적 회개를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이들과, 가난한 이들같이 공동체에서 외면당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십니다. 기후와 환경의 위기로 가장 먼저 피해를 받고 고통을 당하게 될 사람들은 바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우리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후 위기에 맞서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시려는 마음에 동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교구는 지난 2021년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시작하며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탄소중립 선포 미사’를 거행했습니다. 이 여정에 발맞춰, 생태적 회개를 위해 앞으로 3년간 우리 교구 구성원들이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기도하며, 본당과 각 기관 그리고 가정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실천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1. 2024년에는 우리 가정, 교회공동체, 사회의 생태 의식의 현주소 진단하기 2. 2025년에는 생태적 회개를 위한 계획 수립하기 3. 2026년에는 생태적 회개를 통한 구체적 실천에 임하기 Ⅴ. 통합사목의 주요 대상 - 청소년 우리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여정에 참여하는 한국 교회가 대륙별 회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제출한 ‘종합 의견서’에서 이 시대의 청소년들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여정의 동반자들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 교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목정책의 기본틀이 되는 통합사목의 대상에서 청소년들이 그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신앙생활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감소하는 현상을 겪으며 교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요구되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사목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청소년들의 고민을 경청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로써 그들에게 필요한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교회가 지난 제15차 세계주교시노드 여정과 그 결실인 교황님의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교회는 청소년들이 단순히 사목 대상이 아니라 복음선포의 주역임을 알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그들의 방법으로 복음을 살고 선포하는 주역이 되도록 교회는 그들을 응원하고 동반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3년 8월 6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37차 세계청년대회 파견 미사에서, 4년 뒤인 2027년 세계청년대회는 아시아, 곧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다고 발표하셨습니다.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톨릭 신앙이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럽의 서쪽 끝에서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보편된 신앙임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나 홀로 이 신앙을 지키고 살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동행하는 이들이 전 세계에 있음을 체험하는 일은 청소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이번 제38차 세계청년대회는 분명 통합사목을 기조로 청소년들을 향한 사목에 정진하려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입니다.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시간 안에서 청소년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에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청소년 사목의 실천적인 방향을 제안합니다. 1. 2024년 믿음의 순례자인 청소년들의 의견을 경청하기 2. 2025년 희망의 순례자인 청소년들의 걸음에 동행하기 3. 2026년 사랑의 순례자인 청소년들 각자의 성소 식별을 통한 사랑의 여정에 함께하기 Ⅵ. 나오는 말 우리 앞에는 교회 내의 많은 문제와 예상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겨 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시노달리타스를 기본원리로 하는 통합사목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동반자로 인식하고 인내로써 경청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식별하는 일에서 통합사목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 사는 기쁨과 매력을 전하려는 노력은 통합사목의 실천 원리인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의 모든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기쁨을 깊이 체험하기를 바라며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요한 14,26 참조). 저는 사목교서를 마치며 교구민 모두에게 우리 교구의 복음화를 위하여 자비로우신 주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기를, 그리고 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시길 당부드립니다. 교구 복음화를 위한 기도 ○ 만민의 임금이신 주님, 죽음으로 진리를 증언한 선조들을 통하여 이 땅에 구원의 빛을 밝혀주셨으니 감사하나이다. ● 교구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오니 저희가 서로를 존중하고 인내로써 경청하고,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식별하면서 동행하게 하소서. 또한 통합사목을 통해서 청소년 신앙과 생태적 회심을 실현하는 교구가 되게 하소서. ◎ 이제 저희도 선조들의 믿음을 본받아 힘차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어 온 민족의 복음화를 이루게 하소서. 또한,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인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아멘. ○ 수원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3년 11월 3일
대림 제1주일에 수원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자비의 해]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원주교구 교우들과 수도자와 사제 여러 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저는 올해를 '자비의 해'로 선언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25년을 '희망의 순례자들' 희년으로 선 포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2000 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한지 25년이 지난 까닭입니다. 우리는 ‘2025년 희년'을 준비하고자 2024년을 하느 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묵상하는 한 해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실상 하느님의 자비로 태어났고, 또 살아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만 탈렌트의 비유 는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무한한 자비를 암시 해줍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마태 18,24) 만 탈렌트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비교적 세밀 하게 계산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당시 은화 1세켈은 4일치 품삯이었고, 금화 1세켈은 60일치 품 삯에 해당하였다... 로마화폐로 환산하면 한 탈렌트 는 노동자 6000일의 품삯이 된다. 대략 17년 임금이 다." 그러면 만 탈레트는 만 명에게 17년간 봉급을 줄수 있는 액수의 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너무 지나 치게 과장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그 이상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우주가 생겨나고, 그 가운데 지구에 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기적의 신비입니다. 우주 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이 이런 지구 환 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계속적인 기적 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과학적 용어로 '미세 조정 기본 상수'라고 말합니다. 예컨대 빅뱅으로 우주 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아주 정밀한 질량이 아니면 성 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물리학 교수는 그 질 량이 447,225,917,218,507,401,284,016g/cm2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1g만 넘어도 열린 우주가 되 어 형성되지 않고, 또 1g이 모자라도 질량 부족으로 닫힌 우주가 되어 오늘날의 우주가 형성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적처럼 놀랍게 형성된 이 우주에서 지구에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미세하게 조율되어있는 기본 상수 30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 다. 가령 빛은 1초에 30만 Km(정확하게 299,792,458m/초) 속도를 유지해야 하고, 중력 상수, 블츠만 상수 등이 30가지가 정확하게 그 조건을 유지해야만 우리 인간 이 살 수 있는 지구가 된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인정 하지 않는 과학자들은 이런 기적을 두고 “확률적으로 우연히"라고 말합니다. 물컵 하나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우리에게 물컵보다 어마어마 하게 정교하고 세밀하게 이루어진 이 우주가 "우연히" 되었다는 그들의 설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기적 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습 니다. 태양풍, 적외선을 비롯한 우주선, 혜성을 비롯 한 수많은 소행성들의 침범, 초신성에서 나오는 해로 운 이물질들은 이 지구에 결정적인 타격을 줍니다. 그 럼에도 지구가 45억년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구에서도 인류는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에 생존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도 화산과 지진과 폭풍과 해 일 등의 자연적인 재해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욕심에 서 비롯된 전쟁과 테러와 전염병을 비롯한 질병 등의 위협이 있고, 그 와중에 인류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생존은 그야말로 엄청난 기적을 요구합니다. 그밖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는 놀라운 기적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을 "운"이라고 합니 다.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 합니다. 곧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그런 까닭에 구약의 백성들은 시편을 통하여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낮과 Pax hominibus 밤을 다스리도록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하느님의 자 비를 노래합니다.(시편 135편 참조) 우리 자신들의 삶을 헤아려보아도 그렇습니다. 출생부터 성찰한다면 현재의 나의 존재는 기적의 결 실, 곧 하느님의 자비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 많은 아버지의 정자 가운데 그 하나가 어떻게 내가 될 수 있었을까? 불교에서는 인간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 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는 공적을 세워야 한다고 말합 니다. 그만큼 어렵고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의 일상 삶도 하느님 자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 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 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 하지 않으냐?"(마태 6,26)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 호하며, 촉진하고 새롭게 만들며 재건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발터 카스퍼, '자비' 107쪽 참조) 제 자신 의 삶을 돌이켜 보아도, 부족함에도 사제가 되고, 주 교로 임명되어 여러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모든 행 운은 철저하게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때로 아프기도 하고, 상처도 입고, 위기도 있었지만 치유되고, 회복 되고, 고비를 넘겼습니다. 같은 죄를 수없이 반복해서 고백했지만 그럴 때마다 용서도 받았습니다. 날마다 은총이요 자비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우리들은 당연히 이 웃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그 것을 강조합니다. “이 악한 좋아!....내가 너에게 자비 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이는 만 탈렌트를 임금으로부 터 탕감받은 사람이 500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독 촉하여 감옥에 넣고 빚을 갚으라고 한 사실에 분노하 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에게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시편 136편에서처럼 하느님의 영원한 자비를 노래 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풉시다. 주님의 은총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와 기쁨과 건강을 기도합니다.
2023년 12월 대림 첫 주에
천주교 원주교구장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
희망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었던 지난 시간을 뒤로 하고 지난해, 우리 교구 모든 신자들은 다시금 하느님 안에서 기쁨을 찾는 신앙생활로 본당 공동체의 회복과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참여하는 미사전례와 본당 모임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활력을 얻을 수 있었고, 코로나19 이전의 생기 있던 본당 공동체의 회복을 지향하며 지난 1년을 지내왔습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내온 혼란과 침체를 한 순간에 회복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려 해도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신앙 안에서 새롭고 신선한 무엇인가를 찾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또한 아직도 신앙생활로 돌아오지 못한 신자들의 빈자리를 보면서, 어떻게 신앙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고 전해주어야 할지에 대한 답답함 또한 직면하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코로나19 시기와는 조금 다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이고, 신앙생활도 그러합니다. 과거의 모습과 관습들을 반복하는 현재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본당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모든 것을 코로나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생각은 무리일 것입니다. 이 시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무엇인가 새로움을 요구하고 있고, 교회도 변화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무 조건적인 신앙 권고와 더불어 관습대로 이어져오던 신앙 모임의 형태가 이제는 변화와 새로움을 찾아야 합니다. 신앙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에게는 새로운 방향과 신선한 형태가 필요합니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신앙은 꾸준한 하느님과의 만남이 필요하기에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기쁘고 활력 있게 하시는 신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지난 2021년 10월 10일부터 시작된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위한 여정에 따른 본당 시노드의 경청 과정에 참여했던 신자들입니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본당 시노드 모임 초기에는 ‘시노드’라는 단어나 ‘시노달리타스’라는 말 자체가 어렵고, 우리 신앙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느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모임을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의 나눔을 경청하면서, 신앙의 기쁨이 무엇이고, 신앙 공동체의 활력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제까지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원했지만, 실상 그 누구와도 나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하소연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이것은 세상과 다르지 않은 교회의 모습이었고, 그로 인해 신앙은 더욱더 메말라 갔었습니다. 하지만 시노드 경청 모임을 통해 마치 ‘신앙의 속풀이’를 하듯, 하느님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이웃의 이야기와 하소연을 들으면서, 그 안에 싹트게 되는 신앙의 기쁨과 매력, 그리고 믿음 안에서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은 그저 배우고 의무감을 채우는 것만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서로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말을 경청하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나누는 것임을 느끼며, 보다 더 큰 신앙의 폭을 가질 수 있었다는 증언들을 해 주었습니다. 특별히 이를 통해 미사성제의 중요성과 성체성사의 소중함을 뜨겁게 체험한 신자들의 신앙고백을 듣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시노드라는 것이 어려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서로의 신앙을 경청하다 보니,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도 느끼고 체험했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이것이 함께 걷는 길에 필요한 마음인 시노달리타스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시노드의 정신을 말하는 ‘시노달리타스’는 모두가 함께 걸어가면서, 모두가 함께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앞으로의 교회가 시노달리타스에 기초한 모습의 교회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단지 교황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가톨릭교회 곧, 전 세계 모든 본당에서 노력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교구 몇몇 본당에서 함께 걸어간다는 것을 체험하는 신자들은 비록 첫걸음이었지만, 경청 모임을 통해 신앙의 기쁨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용기를 느끼게 되었으며, 사랑의 덕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교구는 2024년을 살아가면서 모든 본당과 기관에서 함께 걸어가는 여정인 시노드를 더욱 구체적으로 실천하면서 새롭고 신선한 신앙의 활력을 느끼며 2025년의 ‘희망의 순례자’ 희년을 준비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기억합시다. 1. 희망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은 기도 안에서 시작됩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성체 앞에서 기도하는 그 자체가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시작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노력하였던, 모든 모임 전 15분 성체조배 운동에 더욱 매진하도록 합시다. 2. 희망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은 경청 모임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당에서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경청 모임을 실시하다 보면, 친교와 사랑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게 됩니다. 3. 희망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개인 기도를 통해 성령께 귀 기울이고 공동체 안에서 경청하는 이 성령의 역동성은 교회 울타리를 넘어 모든 이들 안에 계신 성령을 체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전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세례자 주교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5,12)
1. 우리 교구의 사목 방향은 ‘새로운 가정 복음화’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1코린 1,3). 우리 교구는 교구설정 80주년을 맞이한 2017년을 기점으로,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를 교구의 중장기 목표로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교회 생활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순차적으로 묵상해왔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말씀’(2019년)과 ‘교회의 가르침’(2020년), ‘성찬례’(2021년)와 ‘기도 생활’(2022년)을 묵상하였고, 마지막으로 작년 한 해 동안은 ‘사랑의 실천’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동안 교구의 사목교서에 따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신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사제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기회에 저는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우리의 신앙 쇄신에 꼭 필요한 요소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중대하게 여기고 실천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그동안 우리가 주력해왔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바탕으로, 이제 저는 교구의 사목 방향을 ‘새로운 가정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사실 인간이 걷는 “수많은 길 가운데, 가정은 첫째가는 길이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가정교서」, 2항). 그런데 이 가정이 오늘날 위기에 놓여 있어 심각한 사회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혼인과 가정의 온전한 가치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정을 교회의 중요 사목 분야로 삼아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강화하고 개발하는데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 가정은 최우선 순위의 문제로 다루어져야”(「가정 공동체」, 65항)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정의 행복은 세상과 교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사랑의 기쁨」, 31항)을 한다고 지적하시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 가정이… 가정 사목의 으뜸 주체가 되어”(「사랑의 기쁨」, 200항)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저는 새로운 가정 복음화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앞으로 3년 동안 가정 복음화에 지혜와 역량을 모아 혼인과 가정의 세 가지 근본 사명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올해 2024년에는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에, 2025년에는 ‘생명에 봉사하는 가정’에, 2026년에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정’에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2. 하느님께서는 한처음부터 혼인과 가정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삼위일체 하느님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 영원한 사랑을 나누시고, 그 위격적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는 “한처음에”(창세 1,1)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모습’이란 삼위일체 하느님의 위격적인 친교에서 보듯이, “자유로이 자신을 내어 주고 다른 인격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357항) 능력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한처음부터 인간을, 서로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어 일치를 이루도록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 하고 말씀하시고 남자의 갈빗대를 빼내시어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그때 남자는 사랑과 일치의 탄성을 이렇게 질렀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 따라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한 존재”(『가톨릭교회 교리서』, 372항)로서, 서로 인격적으로 일치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일이 혼인이며, 이 혼인을 통해 사랑 안에서 일치된 인격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영원히 나누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그 사랑이 가정의 “영원한 원형”(「가정교서」, 6항)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가정의 “내적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 없이는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해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生)은 무의미합니다”(「가정 공동체」, 18항). 3.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계획을 되살리시고 완성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혼인을 통하여 이루시려던 사랑의 계획은 죄의 상처로 인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곧 부부가 서로를 비난함으로써 그 관계는 왜곡되었고, 상호 간의 매력은 지배와 탐욕의 관계로 변하고, 출산의 고통과 생계유지라는 고생이 부과되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7항 참조).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죄지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고 거듭하여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마침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처음의 질서를 회복시키시고 완성하십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강생을 통해 인간의 가정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나자렛 가정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강생으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어느 모로 결합시키셨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일하시고 인간의 정신으로 생각하시고 인간의 의지로 행동하시고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사목헌장 22항).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시어, 아담의 죄로 잃었던 하느님과 닮은 모습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태어나 자라신 그 가정에서부터 그렇게 시작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생애의 대부분을 나자렛 가정에서 드러나지 않게 사셨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에게 하신 예수님의 “순종”(루카 1,51)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낮춤과 기꺼이 내어줌은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계획하신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곧 사랑을 실현하는 근본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기 낮춤과 내어줌은 마리아와 요셉에게서도 늘 발견되고, 그 결과 나자렛 가정은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순종은 마리아와 요셉에게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순종은 하느님 “아버지께 아들로서 하시는 순종의 현세적 표현”(『가톨릭교회 교리서』, 532항)입니다. 그러니까 이 순종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신 순종을 예고하고 미리 이루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셨지만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필리 2,7)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아담의 불순종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복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지러졌던 가정과 혼인을 그 본디의 형태로 되돌리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한결같은 성실한 희생적 사랑은 부부 사이에 있어야 할 성실한 사랑의 본보기로 제시된 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주시면서 보여주셨던 그 사랑을 부부가 실천하고 참여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본디 계획이 완성 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성령은 새로운 마음을 가져다 주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가정 공동체」, 13항).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혼인과 가정에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친교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힘을 주시고, 그들의 삶 전체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스며들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부부는 거룩해지고 고유한 은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며 가정교회를 이룹니다”(「사랑의 기쁨」, 67항). 4.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직’과 ‘사제직’과 ‘왕직’에 참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혼인과 가정을 그 본디의 형태로 되돌리셨을지라도, 부부관계는 인간적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해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물질만능주의와 극심한 개인주의와 상대주의 등이 만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도 우리의 가치관을 크게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부의 사랑이 제대로 성숙해지고 풍요롭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함께 노력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함께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혼인과 가정을 처음부터 계획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며, 이 “삼위일체 하느님은 모든 참된 사랑이 흘러나오는 신비”(「사랑의 기쁨」, 71항)이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 둘만의 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하느님이 계셔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축제의 분위기를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느님의 개입으로 기쁨의 잔치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요한 2,1-11 참조). 이렇게 혼인과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 가정은 어떠한 모습을 보일까요? 그 가정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의 ‘예언자직’과 ‘사제직’과 ‘왕직’에 참여하고 또 실현하는 모습을 띨 것입니다. 가. 믿고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예언자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충실한 가정은,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존경스럽게 듣고 또 선포함으로써 자신의 예언적 역할을 완수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가정은 교회처럼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요 거기서 복음이 빛나는 곳이기도 합니다”(「현대의 복음선교」, 71항). 사실 가정은 우선적으로 복음화되어야 하는 곳이며 동시에 복음 선포를 위한 가장 작은 공동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현대 가정의 위기를 지적하면서 “복음의 메시지가 가정 안에서, 그리고 가정들 사이에서 언제나 울려 퍼져야”(「사랑의 기쁨」, 58항)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따라서 부부는 서로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들과 다른 가정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가정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신앙을 이어주는 자리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쳐 주는 첫 스승”(「사랑의 기쁨」, 16항)입니다. 그렇게 신앙을 전하기 위해서 “부모는 자신이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필요성을 느껴야”(「사랑의 기쁨」, 287항) 합니다. 부모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먼저 체험할 때 그 놀라운 사랑을 비로소 자녀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가정교회’’야말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본격적인 교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현대의 교리 교육」, 68항)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은 또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가정들에게 “그리스도의 현존과 그의 사랑에 빛나는 징표”(「가정 공동체」, 54항)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고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 가정은 자기 자녀들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교육함으로써 사제나 수도자의 성소를 심어줄 수 있습니다. 나. 하느님과 대화하는 가정(사제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충실한 가정은, 둘째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도 참여합니다. 혼인성사를 받음으로써 탄생한 그리스도인 가정은 성사와 생활의 봉헌을 통해서, 그리고 기도 생활을 통해서 하느님과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가정은 스스로 성화될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세계를 성화”(「가정 공동체」, 55항)합니다. 부부는 혼인성사의 힘으로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여 날로 더욱 자기완성과 상호성화를 위하여 나아가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선물인 성체성사를 통하여 부부는 그리스도 친히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그렇게 서로 자신을 내어주며 영원한 신의로 서로 사랑하는 힘을 끊임없이 길어 올립니다. 아울러 가정의 구성원들이 성체를 나누어 모심으로써 한 몸이 되고, 교회의 더욱 넓은 일치에 참여합니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부부는 하느님의 풍성한 자비를 만나고, 그리하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여 다시 가정의 일치를 이룹니다. 이 자리에서 특히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공동으로 바치는 가정기도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기도는 가정의 모든 일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며 그분의 사랑 어린 개입을 간절하게 청하는 기도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책임과, 자녀들이 하느님의 신비를 점차로 발견하며 그분과 개별적 대화를 하도록 인도할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가정 공동체」, 60항).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데에는 부모의 구체적인 모범과 생생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곧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기도함으로써만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자녀들의 마음의 심층에 파고들 수 있고 그들에게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아울러 “모든 가족들이 특히 주일과 축일의 미사성제에 함께 참여하는 것”(「가정 공동체」, 61항)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열매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전례와 자기 봉헌과 기도로써 보장된 삶에서만 나오는 것”(「가정 공동체」, 62항)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 인간에게 봉사하는 가정(왕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충실한 가정은, 마지막으로 인간에 대한 봉사의 정신과 실천을 나누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왕직에도 참여합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는 새 계명을 주셨고, 이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인 성령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가정은 모든 인간을 환영하고 존경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가정이야말로 사랑을 배우고 키우는 학교입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가정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키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랑의 학교입니다. 특히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그런 사랑이 촉진되고 성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정을 넘어, 이런 사랑은 같은 신앙을 나누는 형제와 자매에게로 나가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가난한 이, 병약자, 고통을 당하거나 불의하게 취급당하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을 줄 알고, 사랑받고 봉사 받을 동료 인간을 발견”(「가정 공동체」, 64항)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인 가정은 사랑안에서 교회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인간과 세계에 봉사하게 됩니다. 5. 우리 신앙 선조들은 가정교회를 실현하였습니다. 새로운 가정 복음화를 강조하는 이 기회에 우리 신앙 선조들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순교복자 가정을 위시하여 우리 신앙 선조들은 당시 혹독한 박해 중에서도 ‘가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신앙 선조들은 ‘온 가족’이 구원되기를 바랐고, 가정을 신앙의 요람으로 여겼습니다. 말하자면 가정에서 신앙 선조들은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초의 신앙 선포자”(교회헌장 11항)가 되었고,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며 거룩한 삶을 증언하고 극기와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집 밖에서 자비를 베풀고 교리를 가르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가정 안에서부터 본인이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여 가족 모두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 자녀들은 가정 안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궁핍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재물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사랑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신앙 선조들의 가정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가정 안에서 가족들이 스스럼없는 친교를 이루었고, 성령 안에서 성부와 성자께서 이루시는 친교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훌륭한 모범에 많은 사람이 감화를 받아 입교하는 바람에 박해의 상황 속에서도 신자들이 늘어났던 것입니다. 신앙 선조들의 이러한 훌륭한 모범을 본받아 우리도 가정교회를 이루도록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6. 몇 가지 구체적인 사항을 제안합니다. 이제 우리 교구가 올해부터 앞으로 계속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을 제안합니다. 첫째, 매월 마지막 주일에는 모든 본당에서 가정 성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시다. 이때 가족 구성원들이 되도록 같은 미사에 함께 참여하여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둘째, 지구나 본당 차원에서 가정과 생명, 성(性)과 사랑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함께 배우는 자리를 마련합시다. 특히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사랑을 빼어나게 설명하고 있는 ‘제4장 혼인의 사랑’을 꼭 읽고 묵상합시다. 셋째, 각 가정은 ‘가정교회’를 이루기 위해 가정기도를 바칩시다.옛 전통을 되살려 아침 저녁으로, 아니면 적어도 저녁에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정하여 기도를 함께 바칩시다. 그리고 가정기도 후에는 부부가 서로, 또 부모가 자녀에게 안수기도를 합시다. 이때뿐만 아니라 삶의 중요한 계기마다 서로에게 축복해 주는 안수 기도는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를 한층 깊게 할 것입니다. 넷째, 첫영성체 교리 때 되도록 부모와 함께하는 ‘가정교리’를 활용합시다. 가정교리는 “가정은 교회처럼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요 거기서 복음이 빛나는 곳”(교황 바오로 6세)이라는 교회의 이상을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가족이 함께 교구의 성지들을 순례하여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그 훌륭한 신앙을 본받읍시다. 특히 물질만능주의와 극심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순교자들이 보여주신 모범처럼 하느님을 우리 삶의 첫째로 모십시다. 여섯째, 가정사목국이 가정의 성화를 위해 연례적으로 주관하는 각종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이 프로그램과 행사는 특히 생애 주기별로 계획된 것으로서 가정교회를 이루는 데 아주 유익합니다. 아울러 이 사목교서의 ‘부록’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여러 실천 사항을 꼭 살펴보시고 각자의 상황에 알맞게 자발적으로 활용합시다. 일곱째, 그동안 실천했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운동을 앞으로도 지속합시다. 이 기도 운동은 한국천주교의 모든 교구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밤 9시 기도에 가정의 성화를 위해서도 지향을 두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공동의 집”(「찬미받으소서」, 1항)인 ‘지구’를 살리고 피조물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영성을 실천합시다. 지구온난화를 막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교구의 ‘생태환경위원회’와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되, 가정에서부터 실천하며 함께 노력합시다. 2024년 한 해 동안,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혼인과 가정의 온전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증진함으로써 새로운 가정 복음화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계획하신 일이 실현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23년 12월 3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사도 요한) 주교
2024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드디어 제16차 주교시노드가 시작되었습니다. (제1회기, 2023년 10/4 -10/29, 제2회기 2024년도 10월 예정) 이번 주교시노드를 시작하면서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개막미사를 통해 시노드가 '정치 모임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모임'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노드가 '양극화된 의회'가 아니라 '은혜와 친교의 장소'이며, '시노드의 주인공은 성령"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이지만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물질적인 발전을 위해 모인 이익 집단도 아니고, 정치적인 이유로 모인 정당도 아니며, 어떤 이념이나 사상 때문에 모인 사회단체도 아닙니다. 교회의 생명은 하느님입니다. 곧, 성령의 힘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얼인 성령이 교회의 영이요, 혼이며 생명입니다.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재화는 풍요하나,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우리 시대의 현재 상황을 성령의 활동에 바람직한 교회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소명이 우리에게 촉구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 17)" 교종 프란치스코께서는 그동안 친교와 참여, 사명을 주제로 하는 시노드 과정을 통한 시노달리타스 체험 속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구성하는 요소로 인식될 수 있는 몇 가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1.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세례성사로 받은 공통된 품위를 인식하며 함께 가는 교회입니다. 세례성사는 모든 신자를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 가족이 되게 하며, 따라서 그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입니다. 그래서 친교는 교회 내 구성원의 어우러짐에 그치지 않고, 인간 실존의 모든 차원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육화하게 하는 사명을 띠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모든 본당 공동체는 먼저 하느님 말씀을 첫 자리에 두고 스스로 복음화 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우상에 맞서 주님을 충실히 경배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각성을 지니고 실천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2.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경청하고 선교하는 교회 입니다. 이는 곧 말씀의 경청, 사람들 사이의 상호 경청 그리고 교회 공동체 간의 상호 경청을 통하여 성령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는 단지 실용적인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 입니다. 서 당신과 만났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경청의 방식을 따르 기 때문에, 신앙적이며 교회적인 깊이를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형태의 경청은 특히 그 목소리가 무시되는 사람들과 의 관계를 변화시키도록 초대합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귀 기울여야 하는 대상으로 우선 미래 세 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과 청년으로 이어지는 신앙의 유대가 클수록 교회 공동체의 미래가 밝습니다. 다음으로 교회는 어릴 적부터 신앙의 가치를 공동체 안에서 경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성 화를 위해 다양한 젊은이들의 신앙 체험 공간을 확대하고, 활 기찬 공동체의 역량을 통해 '신앙이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아 가는 기회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이유로든 교회 에서 멀어진 쉬는 교우들을 다시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으로 불러 모아 새롭게 신앙생활의 활력을 되찾아 주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신자들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신앙을 북돋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3.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겸손하기를 원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아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저지른 잘못들 속에 선교 역사의 문화 우월적 태도 와 정체성을 벗어난 윤리적 병폐와 같은 것을 교회가 저지른 잘못으로 성찰하고, 환경파괴에 따른 사회경제적 공동책임, 권력과 양심의 남용 등의 교회와 결부될 수 있는 위기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참회와 회심의 길로 부르는 초대입니다. 이런 회심의 과정 속에 겸손과 배움을 토대로 한 성령 안에서의 활동은 이제 교회의 선교 활동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구체 적으로 드러냅니다. 신앙 공동체의 살아있는 표지들로써 교회 의 성숙한 생명력을 자연스럽게 외부로 확장시켜 나아갑시다. 그동안 사회복지와 환경운동,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활동 등으로 간접선교에 치중하기도 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직접 선교를 통해서도 자주 주변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으로 인도하고, 복음의 진리에 맛들이도록 하는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새로운 열정',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 으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새복음화'의 기쁨과 진리를 나누고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교를 독선적으로 강요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겸손과 사랑으로 세상을 복음화하고자 하는 자세로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 역시 자신이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로써, '불안'을 가진 교회라 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은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나 위기가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하고 거룩한 신비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가는 동안 하느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섭리로 받아들이는 개방된 마음과 그 뜻을 헤아리는 성실함을 지녀야 합니다. 4.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다양한 영적 전통들을 통해 풍요로운 의미에서의 식별이 가능한 교회입니다. 식별하는 교회가 된다는 것은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 성령의 활동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표징들을 알아보는 힘을 기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무엇보다 다양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다양함을 획일성 안에 밀어 넣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치를 인정하는 만남과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시노드 과정을 겪으면서 '나'에서 '우리'로의 이동을 촉진하고 증진하는 관계의 인간학을 증진할 뿐만 아니라 다른 그리스도 교파와 타 종교, 그리고 교회가 속하여 있는 문화와 사회 와의 만남과 대화도 강조합니다. 현재 제주도 인구 중 절반이 제주 토착민이고 나머지 50%가 외지인이라는 조사가 나옵니다. 점차 지역사회와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갈등과 충돌의 상황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제주 적응 및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는 노력이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5.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고 환대하며 사랑하고 용서하는 가운데 봉사하는 교회입니다. 성령은 경계 없이 역동적이며 모든 이를 이끌기 위하여 밖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긴장에 짓눌리지 않으며, 그 긴장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특히 사랑과 진리 사이의 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라는 부르심을 정직하게 두려움 없이 마주합니다. 시노달리타스는 회심의 탁월한 길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일치 안에 회복시키기 때문입니다. 곧 교회가 자신의 상처를 돌보고, 자신의 기억과 화해하며, 다양한 다름을 확대하고, 경직된 분열로부터 구해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처럼"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 이며 도구"(교회 헌장 1항)가 되라는 자신의 소명을 더욱 충만하게 구현할 수 있게 합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절대로 잊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주변에 천부적 인권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네트워크를 통해 온전한 인권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출산과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의적절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대응은 단순한 돌봄을 넘어 합리적이고 창의적이며, 구체적인 사목 프로그램들로써 체계적인 준비를 해 나가야 합니다. 주님 안에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날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친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은 '육체를 따르는 생활'에서 '성령을 따르는 생활'로 회개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육체와 물질을 섬기는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참된 영이신 성령의 힘으로 이룩된 교회 본연의 모습을 살아가는 것이 교구와 본당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요체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페 4, 3). 이제 제주교구는 2024년을 맞으며 시대의 징표를 찾아 떠 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4일,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생태 회칙 <찬미 받으소서>의 후속 권고로서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를 발표했습니다. 이 서한은 8년 전 <찬미 받으소서>의 메시지를 좀 더 명확하게 보완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기후위기 악화와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또 다른 경고 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서로 협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를 앞에 두고 있는데, 유럽과 중동에서 발발한 전쟁은 우리 미래 세대에게 암울한 그 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현실의 문제가 어둡고 두려울수록 우리 교회가 할 일은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실천할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이 은총의 힘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뜻깊은 한 해를 맞이합시다. 매 순간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러한 마음으로 2024년도는 특별히 「성령께 서 이끌어 주시는 소공동체를 통해 본격적인 제주 복음화의 날개짓을 힘차게 펴가도록 합시다.
2023년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제주교구 감목 문 창 우 비오
신앙선조들의 열정과 사랑을 이어가는 교구공동체의 해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지난 한 해 동안 저희 교구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인자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변함없이 하느님께 삶을 의탁하며 신앙을 지키고 살아오신 모든 신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기쁨을 잃지 않고 늘 기도하며 청빈하게 살면서 형제애를 실천했던 우리 신앙선조들의 신앙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삶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올해에는 우리가 신앙선조들의 삶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분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지켜온 신앙의 유산을 살펴보고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씩 이루어가는 은총을 구하고자 합니다. 1. 신앙선조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여러 세대 긴 시간 동안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지켜온 신앙 증거자들의 후손입니다. 신앙선조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참 생명을 다시 얻을 것’(마태 10,39; 마르 10,29-30 참조)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면서 자신들의 삶으로 복음에 대한 충실성을 증거하였습니다. 신앙선조들은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형관들이 배교를 종용하며 겁박하는 순간에도 ‘내 비록 만 번 죽사와도 천주를 배반치 못하겠나이다’라고 답하며 순교로써 복음 말씀을 지켰습니다(병인치명사적 13권 참조). 우리는 외연적으로는 풍요로운 재화와 경제력, 기술적으로 향상되고 발전된 세상을 살고 있음에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 참다운 행복이 위협받는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강하면서도 동시에 약하고 최선을 이루거나 혹은 최악을 저지를 수 있으며 자유와 예속, 진보와 퇴보, 형제애와 증오의 길을 오가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대립, 부조화와 불균형은 근원적으로 사람의 마음속에 뿌리박힌 불균형에서 옵니다. 외형적인 발전과 번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신앙인인 우리는 복음의 진리에 비추어 스스로 그 답을 물어야 합니다. 물질의 번영과 재화를 좇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이기심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받아들인 결과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4항, 10항; 복음의 기쁨 52-55항 참조). 언젠가 사라질 이 세상(1코린 7,31 참조)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신앙을 지키고 복음의 가르침을 지고의 가치로 삼고 지켰던 신앙선조들의 삶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복음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고 탁월한 교재입니다. 신앙선조들은 어지러운 세상 안에서 참다운 진리를 찾고 갈망하는 가운데 복음을 발견하였고 복음의 가르침을 새로운 삶의 원리로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신앙선조들은 복음의 진리를 찾아 중국을 향해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으며 구원을 바라며 세례를 받은 이후에는 모진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그리스도께 자신들의 인생을 내맡기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 신앙선조들이 간직하고 증거했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본받고 되찾음으로써 언제나 복음 안에서 참된 위로와 희망을 얻고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사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2. 신앙선조들의 선교에 대한 열정 우리는 선교 열정으로 가득했던 신앙선조들의 후손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인생의 참 기쁨과 목적을 깨달은 신앙선조들은 그리스도께서 선사하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박해를 피해 이주해야 했던 혹독한 시련 중에서도 신앙선조들은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이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신앙선조들은 관헌들에게 발각되고 체포되어 생을 마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들을 박해하던 군사와 관헌들에게마저 선교하려는 열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황석두 루카 성인은 당진에서 서울로 압송되는 과정에서도, 주막에서든 길에서든 심지어 형장인 갈매못으로 끌려가는 순간에서도 언제나 그리스도교 교리를 사람들에게 설파하였습니다. 그의 교리는 말씀에 조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감동적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차기진, 황석두 성인의 삶과 신앙;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정리 번호 209번 참조). 우리는 상대주의가 만연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종교의 영역에서도 신흥종교들과 사이비집단들마저 나름의 가치와 덕목이 올바르다고 주장하며 종교간의 우열을 가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종교적 상대주의의 주장을 관철시켜 보려 합니다.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고 저마다 자기 주장, 자기 신념을 합리화하고 선전하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우리가 전해 들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할 수 있는 담대한 용기와 지혜를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본질적으로 사도직을 위한 소명”(평신도 교령, 2항)이고, 모든 신자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불리운 이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준 이들 덕분에(로마 10,5 참조) 구원의 상속자가 된 이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이웃에게 전하고 또 나누고 싶은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닌 복음의 기쁨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키워나갑시다. 우리의 이웃들에게 인간의 죄와 슬픔, 공허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참된 구원을 선포하고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사도들의 후예로 살기 위해 노력합시다. 3. 신앙선조들의 교회에 대한 사랑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지켜낸 신앙선조들의 후손입니다. 신앙선조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시편 69,10; 요한 2,17 참조)라는 성경 말씀처럼,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교우촌(교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신앙선조들은 관헌들을 피해 깊은 산중에 숨어 살았고 어느 순간 다시 떠나야 하는 떠돌이의 삶을 살면서도 교회를 통해 그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머무는 곳마다 사랑이 넘치는 교우공동체를 만들고 성장시켜 나갔습니다. 신앙선조들은 대부분 궁핍하고 가난했지만 그들 가운데에서도 더 불쌍한 처지의 형제들을 찾아 도왔고 고아들을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두어 주었으며(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16쪽 참조), 가난한 교우가 찾아오면 변변찮은 음식이라도 나누어 먹고 그가 교우촌에 정착할 수 있도록 환대해 주었습니다. 또한 고문과 문초를 당할지라도 동료 교우들을 밀고하지 않음으로써 교회와 교회의 사람들을 지켜내려 애썼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순교자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살아남은 가족들을 도왔습니다(양업교회사연구소 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1851년 10월 15일자 서한, 84-117쪽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어떻게 구원을 희망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까? 모든 것이 교회 덕분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세례가 교회로부터 온 것이고,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로부터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과 풍요로운 성사의 은총 덕분에 우리는 함께 영원한 아버지의 집을 향해 이 세상 나그넷길을 순례하고 있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30항 참조). 사도 바오로는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1코린 4,7)라며 신자들에게 교회의 중요성과 교회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점점 더 커져가는 개인주의와 이기적인 욕망 추구의 성향으로 함께 사는 공동체 의식이 와해되고 깨져가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교회공동체와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개별적으로 믿으면 된다는 자기 위주의 편의주의적인 사고방식, 이른바 신앙의 사유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신분, 집, 토지, 생명...)을 버리고 교회공동체를 이루고 지키며 사랑한 신앙선조들의 아름다운 모범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를 구원의 공동체로 불러주시고 예수님의 새 가족(마태 12,49 참조)이 되게 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따뜻하고 화목한 교회공동체,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하고 더 작은 이들을 찾아 돌보는 교회공동체를 이루도록 다 함께 노력합시다. 4.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 끝으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최양업 신부님의 숭고한 삶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혹독한 박해로 수많은 교우들을 잃고 쓰러져가던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흩어진 신자들을 찾아 나섰고 길 위의 사도로 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하느님 사랑과 그분의 선교 열정, 신자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한국천주교회는 오랫동안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간절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를 통해 성덕의 표징인 기적이 이루어지기를 모두 함께 기도하여 주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신앙선조들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복음에 대한 열정과 선교에 대한 열의,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어지고 커져가는 한 해가 되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다잡고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합시다.
2023년 12월 3일
대림 제1주일 청주교구장 김종강 시몬 주교
사목교서
성체와 가난
1. 함께 걷는 여정의 지속 지난 2년, 말씀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시작과 함께 사목 교서를 발표하고 이어진 후속 권고를 통해, 주님의 부당한 종인 저는 춘천교구 하느님 백성들과 영적으로 하나 되어 평화를 이루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 여정에 함께한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걷는 시노드 여정은 신앙인의 역할과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는 무엇보다도 서로 경청과 참여 그리고 친교를 이루는 우리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 13,1)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던 ‘말씀’ 의 삶은 끝없는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삶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인 성찬례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구원 여정은 성체성사 안에서 완성되며, 교회는 이를 미사성제의 거행으로 공동체 안에서 지속하고 있습니다. 2. 말씀살기 - 성체성사를 사는 삶 우리가 거행하는 미사성제는 ‘말씀의 전례’ 와 ‘성찬의 전례’ 로 구분됩니다. 하지만 말씀이시며 동시에 성체이신 예수님을 동일하게 기념하기에, 이 두 전례의 본질은 긴밀히 이어져 있습니다. 말씀살기의 여정은 곧 성체성사를 사는 이들이 얻어 누리는 은총입니다. 또한 말씀살기의 여정은 성체에 대한 공경과 일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념이나 느낌이 아니라 살아계시는 인격이십니다. 따라서 본당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미사 거행과 신심 활동, 성체 강복과 현시 그리고 성체 조배 등은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이어야 할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 5,3) 3. 찬미받으소서 여정 - 소박한 삶으로 가난의 영성 회복 말씀과 성체를 사는 삶은 주변 이웃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과 함께 걷는 구체적인 여정이어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은 물질적인 가난만이 아니라 마음[영]으로 가난한 이들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에서의 마음은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불어 넣으신 생명의 숨결(창세 2,7)이며, 우리의 가장 내밀한 영적인 차원을 가리킵니다. 곧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왔음을 고백하며, 자신의 작음과 나약함을 온 존재로 받아들입니다. 이들은 생명을 주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모든 피조물과 함께 찬미하며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고도화된 기술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며, 기술력과 경제력에 모든 희망이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 자연의 주인도 될 수 있다는 교만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자연을 착취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우리 자신이 자연의 일부분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공동의 집’ 인 지구는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인류가 이렇게 죽음을 향해 내달리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으니,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회개와 반성으로 생명의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깊은 곳으로부터 가난한 존재임을 깨달아 겸손한 자세로 생태적 영성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힘조차도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는 절망과 무력감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구원으로 이끄는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희망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삶에는 세상의 시선으로는 초라해 보일지라도 하느님의 고귀한 숨결이 함께 합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기꺼이 소박함을 선택하고 불편함을 감수합시다. 우리 삶의 회심을 통한 이웃과 병든 자연을 위해 당당히 이 시대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찬미받으소서’ 여정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걷는 가난의 삶이 말씀과 성체로 힘을 얻고 풍요로워지기를 희망합니다. 춘천교구의 주보인 예수 성심이여! 저희 마음이 당신을 닮게 하소서.
2023년 12월 3일 대림 첫 주일
춘천주교 김주영 시몬
2024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군종 교구민 모두에게 새해 인사를 전합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상처를 남긴 채 다행히 종식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기간 700만여 명의 생명이 격리병상에서 외로이 선종하였습니다. 아울러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남은 자들의 슬픔은 치유되지 못한 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인 시노드 정신으로 ‘위드 코로나’ 시대에 고통받는 이들의 영육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며 서로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서로에게 귀 기울여 경청하고, 대화함으로써 치유와 행복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세상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이 먼저 성찰하고 뉘우치며, ‘내 탓이오’를 외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2024년은 ‘화해와 치유를 위한 고해성사의 해’ 군종교구는 7성사(七聖事)로 쇄신되는 7년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제가 교구장에 착좌하여 맞이한 첫해인 2022년도 표어는 ‘성체성사로 거듭나는 삶’이었습니다. 2023년도의 주제는 ‘선교의 열매, 세례성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2024년도 사목 목표는 ‘화해와 치유를 위한 고해성사의 해’로 정하였습니다. 고해성사는 죄로 인하여 단절된 ‘나/이웃/하느님’과의 화해입니다. 서로 간의 주고받은 상처가 치유되고, 빼앗겼던 평화를 되찾아 줍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9) 우리는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선하게 살기를 바라고 주님의 은총으로 도움을 받아 죄로부터 승리를 얻고자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신앙인들은 ‘죄/벌/악마’라는 단어를 멀리하려는 경향에 빠져들었습니다. 성령께서 분명히 계시듯이, 악령인 악마도 존재합니다. ‘선’을 가로막는 ‘악’도 산재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죄와 벌’을 강조하여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를 극복하는 ‘자비와 은총’입니다.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작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면 상호 간에 거리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보다 커다란 잘못을 범하게 되면 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결국 서로의 관계에 단절이 발생합니다. 분열의 크기에 따라 진정한 참회와 속죄 없이는 돌이킬 수 없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죄로 인해 단절이 발생하고 그래서 하느님 앞에 자유로이 나서지 못하게 된 인간에게는 필연적으로 죄의 해소가 우선적으로 요구됩니다(가톨릭 교리서 1426항 참조). 참회와 죄의 고백을 통하여 ‘죄’는 용서받고, ‘벌’은 자발적 보속을 통한 사랑의 멍에가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죄로 몰아넣어 고통을 가중시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자애와 사랑이 가득한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 (요한 20,23)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직접 제자들에게 죄를 사해 주는 권한(赦罪權)을 부여하십니다. 예비자 교리교육 때에 어떤 분들은 ‘어떻게 인간인 사제가 같은 인간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맞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여 구원을 줄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오직 그 권한은 하느님만이 지니고 계시며, 사죄권을 교회에 위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 교회에 맡겨주신 죄 사함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제가 그 고유한 직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상담가를 방문하여 인간적 고뇌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후련해지고 문제의 절반이 해결된다면, 거룩한 직무를 위임받은 사제의 입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잃었던 평화와 상처의 치유를 얻는 고해성사야말로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3) 우리는 고해성사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직접 마주하고, 그 사랑을 체험합니다. 참회자의 올바른 준비에 따라 고해성사의 내적 평화와 기쁨은 그 크기가 달라집니다. 교리교육 시간에 배웠던 고해성사를 위한 5단계를 잠시 되짚어 보고 싶습니다. 1) 성찰 지난날을 되돌아봅니다. 은혜스러웠던 일은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 부족하였던 것이나 이웃에게 아픔, 피해를 주었던 것이 있는지도 알아냅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서로에게 탓을 돌리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데서부터 분쟁과 불신이 생겨납니다. 상대방 안에 더 좋은 보화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내가 그것을 지나치고 묵살하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통회 이는 ‘뉘우침이요, 아파함’입니다. ‘네 탓’ 공방에서 탈피하여 먼저 내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면 상호 간의 불신과 논쟁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간음한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아무 단서를 붙이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푸십니다.(요한 8,1-11) 분열된 자아의 통합, 불신으로 깨어진 이웃과의 화해, 분쟁으로 얼룩진 세상의 아픔은, 바로 작은 자의 통회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3) 결심 새로운 삶으로 나가겠다는 다짐입니다. 결심이 지속되지 못하고 허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고, 하느님은 인간의 부족함 위에 당신의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4) 고해 고해소에 들어와서 사제에게 고합니다. 어려서 교리 시간에 수녀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고해할 때는 인간인 사제 앞에서가 아닌, 마치 ‘큰 돌’ 앞에서 큰 소리로 외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큰 돌’은 바로 하느님이시지요. 고해 후, 마음까지 후련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5) 보속 보속은 죄의 용서에 대한 징벌적 대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것을 하느님께 발원하는 인격적 약속입니다. 보속으로 받은 기도 혹은 희생 행위는 다시 같은 죄에 떨어지지 않게 우리를 보호해 주는 참회의 행위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자비는 모든 것을 이겨내는 힘으로 드러나며, 마음속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고 용서를 통하여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먼저 고해성사 안에서 자비를 입었다면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자비로운 사랑의 명확한 표현이자, 그리스도인의 자발적인 의무입니다. 사랑하는 군종 교구민 여러분! 올 한해 고해성사 안에서 먼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자비의 봉사자가 되도록 합시다. 해악한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사랑과 용서, 관용의 착한 바이러스입니다. 나 스스로가 먼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가정과 부대가 성화 될 때 우리 사회, 세상도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지상 낙원이 될 것입니다. 희망을 가집시다. 실천 사항 1. 잠들기 전, 자신의 하루의 삶을 성찰하기(영적 노트). 2. 먼저 화해의 손길 내밀기(SNS, 전화, 대면). 3. 매월 첫 목요일 ‘성시간’ 통하여 한 달을 성찰하기. 4. 군종교구민 판공성사 연중 3회 권고(부활 / 성탄 판공 + 성모승천대축일).
2023년 대림 제1주일에
천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티토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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