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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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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4-15 ㅣ No.171531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요한 6,22-29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신 다음부터, 많은 군중들이 그분을 따라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분의 가르침에서 구원의 진리를 발견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분을 따라다니면 먹고 살 걱정은 안해도 될거 같아서, 그분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들이 원하는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거 같아서 어떻게든 그분 옆에 붙어있으려고 한 것이지요. 그런 그들의 마음가짐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에서부터 드러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릅니다. 이는 당시 유다 사회에서 아직 그 정체를 잘 모르는 상대방을 높여 부를 때 쓰는 사회적 존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높여 부를 때 쓰는 ‘선생님’과 비슷한 호칭이지요. 즉 그들은 예수님을 그럴듯한 호칭으로 높여 불러주어 기분을 맞춰드리면 그분으로부터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겁니다. 자기들 눈 앞에 구세주께서 계시는데도, 그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구원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눈 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광야를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만나를 먹고도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들은 그분께서 일으키신 빵의 기적을 통해 육신의 배를 채웠음에도 여전히 배가 고팠습니다. 빵을 더 먹기 위해 욕심을 부릴 뿐 자기들에게 참된 빵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만 애를 쓸 뿐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구원의 진리가 무슨 뜻인지는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매일 미사를 빠짐없이 참례하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열심히 봉사한다고 해도, 그 노력과 봉사를 통해 육신의 편안함과 안전, 물질적인 이익과 성공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러면서 정작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귀기울여 듣지 않고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열심한 신앙생활이라도 ‘헛수고’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쫓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참된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부류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좋아하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면 됩니다. 단지 좋아하는 것은 언젠가 싫증나기 마련입니다. 그저 감정에만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의지와 노력이 곁들여지기에 그렇습니다. 주님 말씀이 당장 듣기에 거슬리고 받아들이기 버겁더라도 그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면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싹이 트고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날이 꼭 옵니다. 그 열매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해 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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