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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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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4-04-15 ㅣ No.171535

전임 신부님이 후원금을 주었고, 교우들이 직접 나서서 창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외벽을 칠하고, 전기를 끌어들이면 창고는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는 것과 같다.” 창고를 만들면서 그 밭에서 많은 봉사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봉사자들이 제게는 보물이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창고에 재화를 쌓지 말고, 하늘나라에 재화를 쌓아야 한다.” 창고를 만들면서 수고해 주신 분들은 모두 하늘나라에 재화를 쌓았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마치고 삼겹살에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은 가뭄 끝에 단비와 같이 정겨운 시간입니다. 저는 그 시간에 교우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본당에 대한 사랑과 본당에 대한 열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새로 온 사제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남은 공간에 어떤 건물을 세워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는 사제관과 수녀원이었습니다. 예전에 사제관과 수녀원을 지으려고 했지만 성당이 너무 외진 곳에 따로 떨어져 있어서 중단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성당 주변에 아파트도 들어서고, 학교도 들어섰으니 사제관과 수녀원을 짓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성당 밖에 있는 사제관과 수녀원을 매각하면 건축비도 마련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성당 내에 사제관과 수녀원이 있으면 교우 분들과 소통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매일 성당까지 출근해야 하는 시간도 아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상 치 못한 일이 발생 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제님은 추모공원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도 만들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교우들이 돌아가시면 모실 수 있는 추모의 공간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추모 공원은 미리 신청을 받아서 재원을 마련할 수 있고, 성당에 그런 공간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고인을 위한 묵상과 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우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그림을 그려야할지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목마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그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모두가 평화롭게 가진 것을 나누었고, 특히 가난한 이와 아픈 이를 돌보았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삶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페스탈로치는 신앙의 원천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인류의 아버지이시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죽음이 없다. 인류의 순수한 마음속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깃들어 있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그리고 감사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 이것이 신앙의 원천이다.” 페스탈로치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인간, 그리스도, 시인, 모든 것을 남에게 바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축복이 있을 지어다. 그의 이름에 축복이 있을 지어다.”

 

삶은 사름의 준말이고, 사름은 사르다의 명사형입니다. 그러니까 삶은 사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 줌의 재로 남은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사라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 스테파노는 죽음의 순간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삶은 고난의 순간에도, 죽음에 이를지라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활의 꽃이 피고,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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