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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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41.*]

2016-02-22 ㅣ No.11086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보시기에 자매님 공로로 마침내 성가정이 되었습니다. 더우기 신랑께서 천주교의 중요한 성사생활을 이루셨으니 영혼의 주유에 있어 이 경우 3개월이냐 2개월이냐 1개월이냐 보다 범위를 넓게 바라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고해성사의 목적은 영혼의 병원에서 환자가 의사를 얼마나 믿고 그것을 맡기고 치유받느냐가 문제지 병원 가는것을 두려워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다만 과정일 뿐입니다. 암투병중이신 이해인 수녀님 경우는 고해성사를 더욱 재미있게 봐야겠다고 사순시기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공동체 신발도 다음 사람들 신기 좋게 가지런히 정돈해봐야지~♬ 하셨답니다. 일단 자매님도 신랑과 자녀들 성사생활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발을 정리해보세요. 가족들에게 이러한 부분들 강요는 마시고 사순시기 다짐으로 우리도 한번 해볼까?로 권면 해보시고요. 때때로 이러한 것들도 잘 안될 때 하느님이 어떻게 해주셨나?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기도가 될 것입니다. 이후에 일어날 일을 더욱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성모님 닮은 내 가슴...,등이 묵상될 것이고 같은 모태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칠성판, 무지개, 머리와 가슴 잇는 십자가의 사다리 무지개 이목구비 그리고 일곱가지 성사등을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와 불교 친하지요. 하지만 불교는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자기 평화를 추구합니다. 편한 종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세 사람 이상이 싸우면서 건설하는 종교입니다. 인간의 깨달음으로 구하는 자연종교와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계시종교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닮아있기도 합니다. 꼭 그렇다는 이야기도 아니겠지요. 그리고 얼마나 다시 인격적 관계 회복을 위해 성찰하고 더 멋지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우리는 자주 내 십자가 튼튼 싸움을 망각하고 상대 십자가 타령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영혼의 기복성 때문일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 회복 과정에서 정돈된 것들을 사람이 아닌 하느님을 바라보며 영혼의 치유를 받는 것이 고해성사입니다. 남중 내편과 안의 해 일치를 위해 성찰, 참회, 정개, 고해, 보속 순서로 임하는데 필자의 경우 참회가 어렵지요. 일을 할 때 몸으로 때우는 유형입니다. 이 아침은 허리가 아파 출근전 잠시 묵상겸 교정을 보는 입장에서 지금 성향이 좀 뻔스럽기 때문인데 차근차근 최선을 즐기며 고쳐나갈 일이고 그보다 중요한 일은 마음의 창 눈과 가슴 동행과 해후 허락하시는 하느님께 더욱 의탁, 정진하는 것입니다. 필자도 성찰에서 보속까지 해도 같은 죄를 답습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더 해야 하는것이 고해성사입니다. 고해성사는 영혼의 바이러스를 즉시 치유받고 또 자유롭게 주님과 뛰어놀다 또 치유받고 그러는것이지 격식에 얽메이다 보면 쉽게 포기하거나 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머리와 가슴 우수한 한국 민족의 이 시대 왜 자살율 치솟는지 탄식하며 성부와 성모 그리고 예수님께 더욱 의탁해 나갑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움 싸움이 먼저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임하는 것이 좋을것입니다.

 

일단 다시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신랑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해보세요. 사람의 눈을 보면 100가지 표정도 읽힐것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큰 아들로 다가오는 신랑을 위해 즐겨 사랑해보세요. 세속적으로 일하면 힘들고 성령 안에서 일하면 더욱 행복할 것입니다. 힌트 하나 드릴까요? 어느 공동체에 발달 장애아 둘이 있습니다. 한 아이는 일반 특수학교에서도 포기한 왕 개구장이인데 발달장애인 올림픽도 출전했지만 깨뜨리는 쾌감을 얻고 자기 권위를 위해 손찌검도 날아오고 그것들을 방지하니 학교의 주님의 기도고 뭐고 다 찢어버리는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도 하느님 눈으로 예수님 입으로 성령 의지로 너와 나 사랑으로 대처하면 결국 순화되기 마련이지요. 과정에서 선생님들 머리, 가슴 지진날것입니다. 하지만 용맹스런 그리스도 전사는 패배치 않으려는 기도(곰곰히 생각)로서 이 아이와의 흥미진진한 다음편을 기대하게 됩니다. 때때로 아이가 기다려지기도 할테지요.

 

두번째 아이는 매우 온화한 아이입니다. 발달장애만 아니면 영화배우로도 손색없는 외모에 빠져들 것 같은 눈동자, 장애아들 눈동자는 왜그리 해맑은지요? 너와 나 한없는 사랑으로 바라보기 때문일것입다. 그런데 이 아이는 조용하다가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스트레스 해소를 다량의 물을 마시는걸로 풉니다. 자연히 오줌을 자주 쌉니다. 담당 선생님은 아직 전문가도 아닌 순수 봉사자로서 스트레스 전이가 되겠지요. 말 못하는 아이는 더욱 물을 찾게 되고 그것을 막는 여선생님 경우 힘에 밀려 부상을 입습니다. 하지만 알고 짓는 것은 대죄지만 모르고 짓는 것은 소죄이기에 스승으로 다가오는 아이 눈을 바라보며 눈싸움 혼용으로 피하기보다 혼낸뒤 즉시 사랑스런 눈의 대화를 혼용하면 좋겠지요.

 

하느님 눈으로 예수님 입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대처하면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영원으로부터 나의 더 큰 선을 위해 마련하신 하느님 일을 내가 자주 주사위 숫자 미리 정해놓고 기도하는 습성있고 그것을 훼방하는 악이 기어들어와 죽도 밥도 안되는 경우일 것입니다. 이럴수록 발달장애아가 더 큰 나의 스승으로 다가오고 또한 내 모습으로 다가옴을 보는것입니다.

 

고해성사는 영혼의 빨래를 위한 물같은 사랑이고 또한 피같은 사랑입니다. 일방적 고백성사가 아닌 하느님께 고함으로서 풀어주시는 치유의 성사 고해성사를 권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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