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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빵>_송영진 모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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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4-15 ㅣ No.17154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0-35)”

 

 

 

1) 여기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한 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믿기 싫어서 표징을

 

요구한 일과(마르 8,11) 비슷하게 보이지만, 뜻이 다릅니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싫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 기대하는 것이 있어서’ 표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라는 말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날마다’ 배불리 먹는 것이었습니다.

 

또, 바로 그 말이, 그들이 왜 예수님의 ‘빵의 기적’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탈출기에 기록되어 있는 ‘만나’는 ‘사십 년 동안’ 안식일을

 

제외하고 ‘날마다’ 내렸습니다(탈출 16,35; 여호 5,12).

 

반면에 예수님의 ‘빵의 기적’은 사람들을 한 번 배불리 먹인

 

일회성 기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쩌다가 한 끼를 배불리 먹는 일회성 기적 말고,

 

평생 날마다 배불리 먹는 기적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표징도 바로 그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2) 이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과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서로 어긋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몸의 배부름을 위한 빵’을 말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신앙’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대화처럼 보여도 대화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은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들의 희망사항만 계속 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만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라는 말씀은, “구약시대 백성들이 먹은 ‘만나’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빵이 아니었다.” 라는 뜻이 됩니다.

 

<‘만나’는 백성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양식입니다.

 

‘몸의 배부름’이 ‘만나’의 일차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라는 말씀은, ‘참된 빵’이 무엇인지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3) 예수님께서 ‘만나’를 부정하신 것도 아니고,

 

모세의 업적을 깎아내리신 것도 아닙니다.

 

‘만나’도 분명히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기적의 양식’이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만나’의 목적이 달랐다는 것과,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의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만나’를 받아먹었음을

 

생각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의 군중을

 

먹이신 일도, 사람에 따라서 그 의미가 크게 다르게 됩니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 받아먹은 사람들에게는 그 ‘기적의 빵’은

 

그저 한 끼 식사였을 뿐이고, 그 빵을 주신 예수님의 권능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4) “내가 생명의 빵이다.” 라는 말씀은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라는 뜻입니다(요한 6,40).

 

‘나에게 오는 사람’이라는 말씀과 ‘나를 믿는 사람’이라는

 

말씀은 ‘같은 뜻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결코’ 라는 말은 ‘영원함’을 뜻합니다.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5) 예수님의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굶주림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는 않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말만 하는 것은

 

사실상 ‘폭력’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어느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었을 때, 바리사이들이 먹을 것을 주기는커녕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한 일이(마태 12,1-2) 바로 그런 폭력입니다.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날마다 힘들게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썩어 없어질 양식’만 찾고 있다고

 

비난하는 일은 정말로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공관복음에 있는 ‘빵의 기적 이야기’를 보면,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주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마태 14,16; 마르 6,37; 루카 9,13).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 주는 일은,

 

예수님께서 교회에(신앙 공동체에) 맡기신 과제입니다.

 

만일에, 그 ‘사랑의 과제’를 실천하지 않으면서

 

기도만 열심히 한다면?

 

그것은 ‘거짓 기도’이고, ‘빈말’이고,

 

주님의 뜻을(사랑을) 거스르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부활 제3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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