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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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하느님(견진성사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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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림노스 클라라 [115.94.171.*]

2017-02-03 ㅣ No.11391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를 

묵상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울부짖으셨습니다. 

 

"오후 세 시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하고 부르짖으셨다.

이는 번역하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마르 15,34)

 

예수님도 침묵하시는 하느님을 향해 절규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는 왜 이처럼 당신의 외아드님이 당하시는 고통에 침묵하셨을까요? 과연 침묵하셨을까요? 

저는 삼위일체 하느님이시라는 삼위일체론을 기반으로 묵상해 보니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

다.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은 사랑으로 늘 한 몸을 이루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해 볼 때 성

자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성부 하느님께서는 성자이신 당신의 아드님과 사랑으로 한 몸

을 이루셨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예수님 안에서 성부 하

느님도 똑같이 고통을 당하셨고 죽음을 맛보셨다고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부르짖는 이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신다고 성경을 말씀하
십니다. 여기서 우리네 부모님의 마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 자식이 힘들

고 아프다고 부모님께 부르짖을 때 그 자식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부모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못 본체, 못 들은 체 그렇게 하실까요?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은 우리 부모님의 마음

보다 더 아프실 것입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은 늘 내 앞에 서 있다."(이사 49,15-16) 

 

그리고 다음은 우리 사람에게 주신 자유의지 안에서 묵상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주신 선물 중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 저는 자유의지라고 생각합

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자유의지 때문에 당신의 외아드님

마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하셨다는 점을 저는 묵상해 보았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 침 밷고 조롱하고 때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

이였던 그 사람들을 향해 하느님은 왜 침묵하셨을까요? 얼마든지 그 못된 자들을 다 물리치

실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말씀하셨지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

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요한 18,36)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당신의 신하들을 보내시어 유다인들에게 그런 수난과 죽으심을 당

하지 않으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

께서 우리 사람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자유의지를 거두어 가실 수 없으셨기 때문이라

고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사랑하는 선물을 주었는데 그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값진 선물을 빼앗을 수 있겠는지요? 


그리고 만약에 우리 사람에게서 하느님께서 자유의지를 회수하셨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

까요?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고 그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하찮은 종에 불과한 신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시어 당신의 숨

을 불어넣어 주신 당신과 비슷한 존재인 우리 사람을 하찮은 종처럼 부리시길 원치 않으셨
다는 점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잘못 살아도 당신과 비슷한 인격체로 인정해 주시고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결

국 우리가 회심하여 당신의 마음을 알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점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때려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도 그걸 고스란

히 받아들이신 그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셨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분명 회심할 것이라는 희망을 끝까지 붙잡고 돌아가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향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는 존재 방식이 전혀 다릅니

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는 사람이 하느님을 직접 보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래

서 로마서에서 알려주시는 내용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통하여 당

신을 계시하셨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웃으로부터 희망의 어떤 말들을 듣는다거나, 또는 내 안에서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어떤 음성이 들리는 것 또한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라고 저

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하느님

께서는 말씀을 건네고 계신데, 우리 사람이 그걸 하느님의 메시지라고 인정하지 않고 늘 하

느님께서는 침묵으로 방관하시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존재 방식이 다르기에 우리가 직접 하느님의 현존 체험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요. 그러나

성인 성녀님들의 자서전이나 또는 순교하신 성인들의 삶의 모습들을 통해서 묵상해 본다면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우리 사람이 하느님의 현존을 직접 체험하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 발현을 직접 목격한 성인들을 볼 때도 그렇고요. 


그러므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의 메시지를 전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그걸 읽어내려 애쓰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하늘의 징조를 보면

서 우리는 비가 올지, 눈이 올지 아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피조물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들을 통해 말씀을 건네시는 분의 음성에 귀 기울여 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 4,9)


주님, 저에게 들을 귀를 열어 주십시오. 아멘.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아기가 걸음마를 배울 때를 생각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아기가 첫 걸음마를 배울 때 처음부터 잘 걷지는 못하지요. 많이 넘어지고 그러면서 다치고

하지만 엄마는 그래도 잘 한다고 박수치고 스스로 일어나 걷기를 응원하듯이 아마도 하느님

께서도 우리가 아픔과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우리 엄마들처럼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점입

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존재 방식이 우리와 달라서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

이지, 그분이 안 계시거나 침묵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우리는 절대적이지 않고 한계가 있는 피조물임을 인정할 때 하느님의 침묵도 이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몫은 욥처럼  끝내 주님을 뵙고야 말겠

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습니다. 아멘. 


그리고 하느님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저는 견진성사를 통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성령칠은이라고 생각합니다.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 칠은을 주셨으니 그 

은사를 가지고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일궈나가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법, 곧 성령 칠은을 주시고 우리 스스로 그것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아 생활하라시는 것

같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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