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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歌曲. 고독/보리밭/나무잎배 作曲家 윤용하 음악과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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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희 [edohyy] 쪽지 캡슐

2020-09-22 ㅣ No.220993

+ 찬미예수,

 

<歌曲. 고독/보리밭/나무잎배/광복절 노래

作曲家 윤용하 음악과 생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구교(舊敎) 가톨릭집안, 특히 가난한 옹기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윤용하,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하다가 중국 신징(新京) 음악학교에서 기초를 닦고 평톈(奉天)에서 음악활동을 했다.

 

일제 말기 징용에서 탈출하여 간도에 피신, 용정과 함흥 영생여자 중학교에서 교사로 있다가 월남했다. 서울의 동북중학교, 한양공고 등에서 음악 선생을 하면서 수많은 노래를 작곡 했다.오페라, 칸타타歌曲, 그리고 진군가, 광복절 노래(흙다시 만져보자....) 등등,


그의 일생은 음악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친구와 가족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섬긴 섬김의 일생이었다.지독한 가난과 병고를 극복하지 못한체 43세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하직한 그에게 음악은 생명이자 삶의 희망이었다.

 

<歌曲. 고독 작가 윤용하 생애>

윤용하(1922~1965).황해도 은율 출생.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다가 만주로 건너가 심양에서 졸업 하였다. 당시 심양관현악단의 日本人 지휘자 가네코로 부터 틈틈이 작곡/화성학 등을 배웠으나, 거의 독학과 음악적 경험으로 합창곡 동요곡 등을 작곡하였다.

 

광복후 만주에서 귀국하여 박태연/이홍렬 등과 함께 국민개창운동과 음악가협회 등을 통하여 음악 운동을 전개 하였다. 채동선 등과 교분이 두터워 죽기까지 먼저간 채동선의 추모사업을 전개 하였다.한국의 작곡가 중에 "윤용하"만큼 인생을 고독하게 보낸 작곡가도 드믈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더욱 그의 쓸쓸한 죽음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황인호의 "고독"의 이면에는 노래만큼이나 고독했던 삶을 살다간 윤용하의 고독했던 생애가 짙게 깔려있어 적막한 그의 심경을 노래하고 있지만,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아이러니하게도 '어둡고 답답하며 무거운 고독의 그림자가 기쁨으로 승화된 찬란한 빛'으로 만날 수 있어 기분이 우울하거나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을 때, 답답한 심경을 시원하고 명쾌하게 풀어주는 '분출하는 힘'이 있어 좋습니다.

 

글옮긴이~이도희(아오스딩)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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