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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구내에서의 시위 집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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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철 [johnnam] 쪽지 캡슐

2002-10-26 ㅣ No.41523

서울 주보 10월 27일 연중 30 주일 사목란의 내용 입니다.

 

명동성당 구내에서의 시위 집회에 대하여

 

   1970년대와 80년대에 명동성당 구내에서는 각종 시위와 집회가 끊임없이 열렸습니다. 암울했던 시기에 고통받던 수많은 사람들은 인간성 회복과 인권신장 등을 부르짖으며 마지막 호소처로서 명동성당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시위 집회는 국민 전체가 갈망하는 정의와 진리의 외침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또한 명동성당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극진히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시위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을 끌어안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명동성당은 신자들의 신앙 공간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받는 성역으로 거듭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한 곳이라도 불의하게 짓눌린 사람들이 하느님께 직접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국민 모두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절대 다수의 국민들과 심지어 국가 공권력도 명동성당을 성역으로 존중하여 왔습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은 교회 예식이 거행되는 거룩한 장소이고, 교구 업무 수행 장소일 뿐 아니라 번화한 명동에서 거의 유일한 문화 공간 겸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위 문민 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집단 이기주의 불법시위 집회들이 명동성당 구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위는 명동성당의 종교예식에도 방해를 줄 뿐 아니라 성당 옆 계성 학교의 수업과 주변 상가의 영업까지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11일부터 오늘까지 성모병원의 일부 노조원들은 명동성당 구내와 교구청 마당을 점거하고 장기간 농성 중에 있습니다.

 

   저는 명동성당의 주임신부로서 신자들에 대한 사목뿐 아니라 성당 건물과 구내에 대한 관리 책임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시위문화 때문에 명동성당은 정상적인 종교 기능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명동성당의 정상화를 위하여 시위 집회에 대한 최소한 요건을 마련하였습니다.

 

첫째: 원리와 원칙에 입각하여 선의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아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라야 합니다. 성역은 공익을 해치는 명백한 범법자가 공권력의 합법적 제재를 도피하기 위한 장소가 될 수는 없습니다.

 

둘째: 그러한 시위 집회를 통하여 하느님께 호소하는 행위에 대하여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동감하고 호응하는 경우라야 합니다.

 

셋째: 어떠한 시위 집회라도 공중 질서를 지키고 신자나 일반인에게 피해와 불쾌감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집회 요건이 갖추어진 것에 대해서는 명동성당에서 최대한 협조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성모병원의 불법파업 시위는 명동성당의 성역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자리마저 빼앗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들에 대한 폭력일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성역의 정화를 요구하며 물리력을 동원한 조치라도 취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명동성당의 관리자로서 이런 조치를 취하도록 다각도로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모두의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의의 모든 사람들은 명동성당이 성역으로 보존되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성역은 모든 사람이 그 자리에서 마음과 옷깃을 가다듬고 아낄 때 비로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집단 이기주의 불법 파업 시위 때문에 성역으로서의 기능이 마비되고 훼손된다면 앞으로 명동성당이 성역으로 보존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한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시위 집회 당사자들, 그리고 모든 국민이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2년 10월27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 주임신부 백 남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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