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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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제1독서 (신명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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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6-25 ㅣ No.130600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에 세워진 '참회와 속죄의 성당'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제1독서 (신명30,1-5) 

 

"이 모든 말씀, 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낸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1~3)

 

앞장인 신명기 29장에서는 계약을 위반한 자에게 닥칠 저주를 선포한 이후, 신명기 30장에서는 회복의 국면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절 다시 번역하면 '내가 너희 앞에 둔 그 축복과 그 저주의 바로 이 모든 일들이 너희에게 찾아온다면' 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앞장까지의 내용속에서 주로 다룬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선포였다.

 

따라서 본문의 표현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먼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데까지 이르는 비참한 상황이 이루어지는 미래의 시점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때로는 하느님께 순종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전 국가적으로 하느님을 배반하여 저주를 당한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역사모세의 설교 가운데 이미 등장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로 번역된 '하세보타 엘 레바베카'(hashebotha el lebabeka)에서 '하세보타''돌이키다' 란 뜻을 가진 '슈브'(shub)동사의 사역형 완료  2인칭으로서 '네가 다시 돌이키다' 라는 뜻이다.

원문은 사역형을 사용해서 능동적으로 곰곰이 생각하여 기억해 내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사용된 '슈브' 동사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로부터 돌이켜 배반할 때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지만 여기 언급된 마음의 돌이킴은 이러한 하느님께 대한 배반과 대조되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단어가 다음 절에서도 사용된 것을 볼 때에 본 단락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회개에 따른 불신앙으로부터의 회복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으로 번역된 '힛디하카'(hidihaka)'몰아내다'란  뜻을 가진 '나다흐'(nadah)동사의 사역형에 2인칭 단수 목적격 접미어가 붙은 말로서 '그가 너를 내몰았다'라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몰아낸 것은 '콜 학고임'(kol hagoim) '모든 민족들'이다.

여기에서 '민족들'(나라들)이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장차 이스라엘을 침공함으로서 그들에게 포로됨의 고통과 갖은 핍박을 주게 될 이방 국가가 단 한나라에 그치지 않을 것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북왕국 이스라엘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멸망당하고, 그 땅에 거주하던 백성들이 흩어지게 되었으며(B.C.722년), 남왕국 유다 역시 바빌론의 침략을 받아 3차에 걸쳐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어(B.C.605년/B.C.597년/B.C.586년)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돌아와서'로 번역된 '샤브타'(shabtha) '되돌아가다'뜻을 가진 '슈브'(shub)동사의 완료형 2인칭이다.

 

앞절에서도 설명했듯이 이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불신앙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단어 뒤에서 이 단어를 보완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쓰이는 '들으면'으로 번역된 '샤마타'(shamatha)는 문자적으로 '네가 듣다'(순종하다)이다.

 

이러한 표현은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며, 그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회개와 그에 따른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분의 말씀을' 번역된 '베콜로'(beqollo)에서 일반적으로 '말씀'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명사 '따바르'(dabar) 대신에 말씀의 내용보다는 소리를 발하는 것 자체를 가리키는 '목소리'라는 뜻의 '콜'(qol)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 말씀의 현장감과 생동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서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세대에게 적용되는 살아 있는 말씀임을 알려준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에서 '하는 대로' 번역된 '케콜'(kekol)에서 '콜'(kol) '모든'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케콜''모든 것을 따라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문의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한 모든 것'이다.

 

신명기 29장 28절에 나온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들어야 할 것바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 주신 율법의 모든 말씀 것이다.

또한 포로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들어야 하는 말씀'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으로 나타냄으로써 미래의 세대들이 들어야 할 말씀과 오늘 전하는 말씀을 일치시키셨다.

이것은 비록 많은 세월이 지난 그때라 할지라도 오늘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이러한 말씀의 항구성을 나타내기 위해 '너희에게 명령하는'으로 번역된 '메차웨카'(metsaweka)에는 '명령하다'는 뜻을 가진 '차와'(tsawa)동사의 분사형이 쓰였다.

히브리어에서 분사형은 그 행동이 끊임없이 계속됨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로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우베콜 나프셰카'(bekol lebobka wubekol naphscheka)는 신명기 4장 29절과 6장 5절에도 언급된다.

여기서 '뻬'(be)는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로서 '~을 가지고'란 뜻이다. 

또한 각각의 '뻬'(be)에 붙어 있는 '모든'이란 뜻의 '콜'(kol)수단이 될 수 있는 대상의 최상 혹은 최대의 상태를 암시하는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말 위에는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 '카'(ka)가 붙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수단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의 것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다른 사람에 의해 주입된 생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중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너의 최선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최선의 정신을 가지고'이다.

'마음'에 해당하는 '레바브'(lebab)사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란 뜻이며, '마음을 다하고'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너의 모든 중심을 다하여'라고 하는 것이 원어적 의미를 살린 번역이 된다(with all your heart).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마음'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知,意,情)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서 한마디로 '(한사람의)인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부분이 없이 완전히 드러낸 상태에서 진실하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정신'으로 번역된 '나프셰카'의 원형 '네페쉬'(nepesh)일반적으로 '영혼'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뻬콜 나프셰카' '너의 온 영혼을 다해'(with all your soul)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지녀야 할 가장 귀한 모습이기 때문에, 만일 그가 자기 영혼을 다해 하느님께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요한4,24).

 

참고로 신명기 6장 5절의 '힘'으로 번역된 '메오데카'(meodeka)원형  '메오드'(meod)를 더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메오드' '넘치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이 단어를 '힘'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with all your strength(might)>, '그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 또는 '넘치는 활동력'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관념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의 모습과 행동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삶 속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느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종합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되, '전심, 전영, 전력'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너희의 운명'으로 번역된 '셰부테카'(shebutheka)'포로로 잡히다'는 의미를 가진 '샤바'(shaba) 동사에서 유래한 '셰부트'(shebuth)에 2인칭 단수 소유격 접미어가 붙은 형태로서 '너의 포로됨'(your captivity; your fortunes)이라는 뜻이다.

즉 이 단어는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 포로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방 민족에 포로되어 있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계약(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18,2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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