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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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삼종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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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열 [khoyeoul] 쪽지 캡슐

2012-09-11 ㅣ No.301

연중 제22주일 (2012년 9월 2일)

교황님의 여름 집무실이 있는 카스델 간돌포에 함께한 신자들 그리고 순례객들과 삼종기도를 하시기 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 하신 훈화 말씀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전례에서는 하느님의 계명이 부각됩니다: 그 충만한 완성을 사랑 안에서 찾을 수 있는(참조. 로마서 13,10) 유다교의 기본적인 요소이며 또한 그리스도교의 기본 요소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생명의 여정 안에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사람들을 이기심의 속박으로부터 나오게 하고, 진정한 자유와 생명의 “땅”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계명은 무겁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가장 귀한 선물로 여겨졌으며 아버지로서의 주님 사랑과 당신 백성과 가까이 계시고자 하시는 주님 의지의 증거였으며 백성들의 지원군으로서 사랑의 역사를 쓰시고자 하는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당신 규범으로 제가 기꺼워하고 당신 말씀을 잊지 않으오리다. (...)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제가 이것을 좋아합니다” (시편 119, 16.35).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계명을 전하는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거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신명기 4,1).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정착했을 때, 그들이 하느님 계명의 수호자 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기쁨과 안정을 주님 말씀이 아닌 다른 것- 재물, 권력, 존재하지 않는 다른 ‘신들’ 즉 우상- 안에 두고자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남아있었으나 더 중요한 것이 아니였으며 삶의 규범도 아니였습니다; 반면, 다른 길과 규범을 따르고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이기심에 관심 가지는 삶에 대한 하나의 가림이였으며 덮음 이였습니다.

이처럼 종교는 우리 존재의 진리인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분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으며, 진정한 자유 안에서 잘 사는 그 본래의 의미 또한 잃어버렸습니다. 그럼으로서 종교는 하느님과의 좋은 느낌을 가지고자 하는 인간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부차적인 관습들을 실천하는데 그쳤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당시 마주쳤으며, 또한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모든 종교에 있어서 커다란 위험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 안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향해서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마르코 7, 6-7; 참조. 이사야 19, 13).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마르코 7, 8).

야고보 사도 또한 자신의 서간 안에서 가짜 종교에 대한 위험에 대해서 조심하라고 주의시키십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씁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보서 1, 22).

이제, 우리가 기도 안에서 간청하는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가 진솔하고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청하며, 매일 매일 우리의 생각들과 선택들과 행동들을 이끌어 주시길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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