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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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칭의 (Justification) 에 대한 천주교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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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115.94.171.*]

2019-03-23 ㅣ No.12121

 

고해성사와 이신칭의


이신칭의란, 개신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신학적 용어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진실로 세례 이후 원죄와 본죄를 사함받고 난 이후 믿음의 사람이 되어 오로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며"(마태 6,32 참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또는 예수님의 고백처럼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고백하며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이분들은 따로이 추가 선행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없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의로움을 살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았던 삶 자체를 선행(?)이라고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을 마태오 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에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듯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마태 25,37-39 참조)


그러니까 예수님 앞에서 이러한 고백을 하시는 분들은 오직 믿음으로 믿음의 삶을 사실 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선행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당연히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앞에서 고백할 수 있을 때에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 솔직하게 죽을 때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마태 25,37-39절의 고백을 최후의 심판 때에 할 수 있는 분이 몇 분이나 되시겠는지요? 우리 곁에는 주님의 기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늘 유혹이 있고, 악에 빠질 수 있는 욕망이 자신도 모르게 솟아나는 인간적인 기질이 있는데요. 그러기 때문에 그걸 너무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고해성사를 제정해 주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바입니다. 언제든지 악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나약함을 아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어 늘 새롭게 해 주시려고요.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늘 새롭게 해 주시는 분이시라고 저는 알고 있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성장하는 나라이며 우리가 예수님만큼 성장해야 하는 나라, 아니 우리도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하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의 삶을 살아내시는 분들이시라면야 고해성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오직 믿음으로, 믿음의 완성된 삶을 누가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가톨릭의 고해성사는 화해의 성사이고 은총의 성사라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믿음의 사람이 믿음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은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믿기는 하나 행실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참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렇게 말로만 고백한다고 해서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믿는 이라면 당연히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이지요. 이 부분을 야고보 사도께서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 참조) 라고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이렇게 외쳤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8 참조)


제 생각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결국 성령의 열매를 우리 삶 안에서 맺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참조) 자신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오직 믿음으로 은총을 받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이신칭의를 이해하시는 데에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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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칭의, 고해성사, 성령의 열매, 은총,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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