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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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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묵 [khm] 쪽지 캡슐

1998-11-11 ㅣ No.206

김황묵의 글쓰기 양식[FORM]

---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하나---

 

"뉴스에서 퍼온 글입니다.."

 

:   [지금은 라디오시대 방송에 보낸 애청자 투고입니다.

:      한번 읽어보세요.....엄청 재밌습니다..]

 

 

: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이 한몸 불살라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   제 손으로 지켜 나가겠다는 일념하나로 불철주야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   복학 2학년의 영남대 학생입니다.

 

:   제가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제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   기억이지만,  이 한몸 희생하면 이종환, 최유라씨는 물론 전국의 수 많은

:   애청자들이 잠시라도  더위를 잊고 마음껏 웃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   펜을 들었습니다.

 

:   얘기를 시작하자면 이렇습니다. 며칠 전이었죠.

 

:   6월말에 기말고사가 끝남과 동시에 방학을 맞이한 저는 이번 방학은 절대로

:   헛되이 보낼 수 없다는 굳은 결심 하나로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도서관행을

:   결정했습니다.

 

:   남들은 피서다 뭐다 난리겠지만 요즘 대학교는 취업난 때문에 공부를 하느라

:   정신이 없거든요.

 

:   저도 그래서 도서관에서 여름을 나기로 했던 겁니다.

 

:   날씨가 더운지라 저의 옷차림은 헐렁한 반바지에 T셔츠 그리고 공부할 책

:   몇 권을 넣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   만원버스에 시달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출근시간이 지난 느지막한

:   시간에 집을 나선 저는 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   시간이 시간인지라 버스 안에 사람은

:   많지 않았지만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더군요.

 

:   그런데 버스 중간쯤에 웬 낯익은 얼굴 하나가 눈에

:   들어오길래  자세히 보니 우와 아니나 다를까.

 

: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그 아가씨가 앉아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 아가씨는 한 학기 동안 같은 강의를 들었던 같은 학교 여학생인데 얼굴

:   이쁘죠, 성격 명량하죠, 게다가 목소리까지 최유라씨 뺨칠 정도로 간드러지는

:   바로 꿈에 그리던  저의 이상형이었습니다.

 

:   그러나 저의 소심함 때문인지 몇 번이고 고백해야지 하는 마음만 먹었을

:   뿐 한 학기가 지나도록 같이 강의를 들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 붙여 봤습니다.

 

:   그런데 바로 오늘 하늘이 저에게 기회를 준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          저는 결심 했습니다. 오늘이야말로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구요.

 

:   저는 천천히 걸어가 그녀 앞에 섰습니다. 마음씨도 착하지 저의 가방을

:   받아주더라구요.

 

:   '이거 여기서 당장 뭐라고 말을 걸어? 아냐 여긴 너무 시끄러우니까 버스에서

:   내린 다음  얘길 해야지, 근데 무슨 말부터 하지?

:   저 - 커피나 한 잔?  아냐, 이건 너무 촌스럽고

:   좀더 세련되고 근사한 말 없을까?

:  이런 저런 생각에 저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져갈 무렵

:   그녀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내리더군요..

 

:   '그래, 아직 몇 정거장 남았으니까 앉아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

:   하며 그 아가씨의 바로 뒷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순간 저의 눈에 한

:   아주머니가 들어오더군요.

 

:   그때 버스 안에  서 있던 사람은 그 아주머니와 저 둘뿐이었거든요.

 

:   그 아주머니도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습니다.

 

:   아주머니는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벌써 스타트를 한 상태였죠.

 

:   저는 이 아주머니께 자리를 양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대사를 앞두고 있는 제가 이런 사소한 일로 그르쳐서야 되겠습니까?

 

:   그러자 하늘도 무심하시지 사건은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   아주머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마치 맹수가 먹이감을 사냥하듯 맹렬한

: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고

:   때맞춰 급출발을 해버린 버스덕에  더욱더 스피드를 얻은 아주머니는

:   그만 중심을 잃어 버렸습니다.

 

: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아주머니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   잡는다는 식으로  엉겁결에 움켜쥔 것이 하필이면 저의 반바지였습니다.

:   반바지 고무줄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

 

:   고무줄 반바지는 저의 무릎 아래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   그것은 정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지요.

 

:   그러나 저는 침착했습니다.

:  '오늘 아침 나올 때 팬티를 갈아입고 나오길 잘했구나'하는

: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오기 전에 입고 있던 삼각팬티를 벗어버리고

:  사각팬티로 갈아입었거든요.

 

:   하긴 반바지나 사각팬티나 망신스럽기는 거기서 거기지 별차이 있겠습니까?

 

:   그렇게 생각하며 바지를 올리려던 저의 눈에 그제서야 파악이 된 사건현장.

 

: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저는 더 이상 침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   믿고 있던 팬티마저 있어야 할 위치에서 훨씬 벗어나 허벅지에 대롱대롱

: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   그제서야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더군요.

:   버스 안에 있던 수십개의 눈들이 모두 제쪽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느낄수

:   있었습니다.

 

:   그러나 그 많은 시선들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녀의 시선..,

:   저의 바로 앞에 앉아  있던 그녀는      정면에서 그것도 바로 그녀의 코앞에서

:   일어난 사건을 그 누구보다도 더 생생하게

:   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   그 아주머니는 제게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게 어디 제

:   귀에 들어오기나 하겠습니까?

 

:   달리는 버스 안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   제가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이해가 안되시는 분은 버스에서 반바지를

:   한 번 무릎까지 내려 보세요.

:   죽고 싶으실 겁니다.

 

:   마침 버스가 정차하길래 그냥 내려버렸죠.

 

:   그곳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간 저는 그녀와 마주 칠까봐 도서관에도 가지

:   못하고  학교 앞을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   그러던 중 삐삐가 한 통 들어와서 확인해 보니 그녀가 제 가방을 가지고

:   기다리고 있다며  찾으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   그때까지 가방을 그냥 맡겨둔 채 내려버렸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고,

:   잠시 망설임 끝에 가방을 찾으러 갔습니다.

 

:   보여줄 거 못 보여줄 거 다 보여줬는데 더 이상 창피할게 뮈 있겠느냐고

:   생각을 하니

: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며 이것이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그래서 만나기로 결심했습니다.

 

:   도서관 앞 벤치에서 저를 기다리던 그녀에게서 가방을 건네 받고는

:   다짜고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   "책임 지십시오."

 

:   그녀는 놀란 눈을 치켜뜨며 묻더군요.  "예 ? 뭘 책임져요 ?"

 

:   "볼 것 다봤으니까 책임지시라구요."

 

:   "연락처를 몰라서 가방 안에 수첨 본 것밖에 없어요.

: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봤어요."

 

:   "그게 아니라 아까 버스안에서 본 거 말이예요.

:   제가 24년간 고이 간직해온 순결을 아가씨한테

:   송두리째 뺏긴 거라구요. 그러니까 책임져요"

 

:   그제서야 그녀는 무슨 얘기인지 알겠다는 듯 웃으면서.

 

:   그것도 마치 최유라씨처럼 웃으면서 어떻게 책임지면 되냐고 하더군요.

 

:    "그건 중요한 문제니까 지금 결정할 수 없고 앞으로 자주 만나면서

:    서로간의 협의를 거쳐서 결정하도록 하죠."

:   그렇게 되어 저는 그녀와 지금도 매일 만나고 있으며 저의 인생을

 

:    그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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