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 신부의 사목이야기 11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 출발이며 새로 태어남의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의 인생 전체가 대림절이기에 매년 전례력을 통해서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의 마음가짐과 삶의 자세를 새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대림절의 주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의 기다림입니다.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는 아기로 오셨으며, 마지막 날에는 영광과 구원의 왕으로 오실 것이며, 또한 주님을 알아 모시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오시는 그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때인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대림 제1주일의 전례와 말씀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그러나 확실히 오시는 주님의 마지막 오심에로 우리의 마음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제 1독서인 이사 2,1~5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여 하느님의 도우심보다는 군사동맹에 의지함으로써 기원전 734~732년에 있었던 시로-에프라임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을 때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즉 하느님만이 그들을 하나로 모으시고 평화를 이루어주실 수 있는 분이기에 백성들은 오직 그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오 복음 24,37~44 역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매순간 깨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했던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했던 일 등은 하느님의 현존과 역사하심에 관하여 생각함이 없이, 그리고 다가오는 하느님을 맞을 아무런 준비 없이 살아간 그들의 터무니없는 무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깨어 기다림’은 주님께서 우리 생활 가운데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이루시는 그 모든 오심을 하나도 놓치지 않음으로써 그분의 마지막 오심을 잘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2천 년 전 예수님의 탄생으로 시작된 우리들의 새로운 삶의 여정(매일의 일상적인 삶)은 역사의 마지막 날 우리들의 삶의 완성으로 오실 그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깨어 기다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24, 44)
언젠가 대림절을 맞으면서 호젓한 곳에서 개인 피정을 하던 어느 날 밤 불현듯 이런 상념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밤이 깊어간다. 잠들기에는 너무 아쉽고 아름다운 밤이다. 이 고요하고 혼자인 고즈넉한 시간을 즐기면서도 나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게 누구인지도,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다만 그 어떤 누구도, 세상의 그 무엇도 나의 이 그리움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만은 알고 있기에 이 그리움조차 음악과 함께 벗 삼고 있다.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하고,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사람은 모두가 외로운 모양이다. 그리고 외로워도 그 외로움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서 채울 수 없는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겠다.”고 그 외로움과 그리움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청마 유치환은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고 노래하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고,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고 끝을 맺었다. 그래, 외로울수록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자. 그런 외로움은 그리움이 되어 끊임없는 사랑의 창조적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사랑한다는 것은 외로움을 안고 사는 것이며, 그리움을 머금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더욱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념 속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 성무일도 대림 1주간 금요일의 독서 말씀이 인간의 외로움과 그리움의 존재론적 실체를 보게 해주었습니다. “하찮은 사람아, 자, 네 바쁜 일을 잠깐 떠나고 네 생각의 소란에서 잠시 멈추어라. 이제 무거운 걱정들을 멀리하고 네 수고로운 번잡을 뒤로 미루어라. 하느님께 잠시 몰두하며 그분 안에서 쉬어라. 네 영혼의 내실에 들어가 하느님과 또 하느님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배제시키고, 문을 걸어 잠근 채 그분을 찾아라. 내 마음아, 이제 열성을 다하여 하느님께 이렇게 아뢰어라. ‘주여, 내 당신 얼굴을 찾사오며 당신 얼굴을 뵙고 싶나이다.… 주여, 우리를 바라보소서. 우리 말을 들으시고, 우리에게 빛을 주시며,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 주소서. 우리 일이 잘 되도록 우리에게 되돌아오소서. 당신 없이 잘 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께 향하려 하는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 없이 우리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주여, 당신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어 찾는 이에게 당신을 보여 주소서. 당신이 가르쳐 주지 않으시면 당신을 찾을 수 없고, 당신이 당신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신다면 내가 당신을 찾아 낼 수 없습니다.’”(성 안셀모 주교)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인 팡세의 저자 파스칼(1623~1662년)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가슴에 구멍 하나씩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역사 이래 사람들은 그 비어있는 구멍을 세상 것으로 메꾸어 보려고 지식, 재물, 권력, 명예, 온갖 흥미로운 일들과 미신적인 행위들에 탐닉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생 종말에 가서는 그 모두가 허망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으로 메꾸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하느님으로만 그 고독과 허무의 구멍을 메꿀 수 있다고 파스칼은 말합니다. 오늘 제2독서인 로마 13,11~14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 왔다고 촉구합니다. 밤이 거의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권고합니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말고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시 한번 새롭게 주어지는 은혜로운 대림절을 매일매일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을 간절히 깨어 기다리는 축복의 시간들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홍인식 마티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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