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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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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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9-08-25 ㅣ No.132002

외국에 살면서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시에는 수업료를 냈다고들 하십니다. 때로 서러움에 눈물 흘리기도 했고, 왜 정든 땅을 떠나야 했는지 후회했다고 합니다. 이민이라는 좁은 문을 잘 참고 견디었기에 오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고 합니다. 거주자 등록하는 데 1달 시간이 필요하고, 자동차 면허 따는 데 2달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모든 일이 신속하게 진행되는 곳에서 살았기에 지루하고 답답하지만, 이 또한 뿌리내리는 과정입니다.

 

25년 전의 기억입니다. 주교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교포 사목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교님의 말씀을 듣고 기뻤습니다. 인정받았다고 느꼈습니다. 학원도 다니고, 조용히 준비하면 좋았습니다. 들뜬 마음에 술자리를 자주 했습니다. 젊었고, 가슴은 뜨거웠지만 냉철하지 못했습니다. 주교님께서 다지 저를 부르셨습니다. 저의 지나친 음주를 걱정하셨고, 질책하셨습니다. 미국 가는 결정도 취소하셨습니다. 반성하고 뉘우쳤으면 좋았겠지만, 원망의 마음이 컸습니다. 저의 음주 사실을 주교님께 알린 사람이 미웠습니다. 분명 같이 마신 사람 중에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습니다.

 

성당에 돌아와 성경책을 펼치니 욥기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욥은 성실하게 살았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깊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가족은 행방불명 되었고, 종들은 강도를 만났고, 재산은 거센 파도에 휩쓸려 가버렸고, 몸마저 병이 들었습니다. 욥은 하느님을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분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셨음에 감사한다면, 하느님께서 나에게 나쁜 것을 주셔도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에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몸으로 돌아가는 것도 감사드립니다.’ 욥 성인의 기도를 묵상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가슴에 차오르던 원망도, 분노도 봄에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따뜻한 바람에 기분 좋게 흔들리는 코스모스처럼 제 마음도 따뜻해졌습니다.

 

10시면 사제관에 들어오는 좋은 습관이 생겼고, 술자리에서도 과음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일찍 자니,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새벽 430분에 일어나서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하니 여유가 있었고, 일할 때도 여유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침에는 연락이 오는 경우도 거의 없고, 조용하기에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주교님의 견책이 제게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영적인 죽비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땀을 흘리고, 노력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더 큰 노력과 땀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세상의 문은 상대적입니다. 내가 노력했어도, 상대방이 더 노력하고, 더 능력이 있으면 내가 들어갈 문이 없습니다. 세상의 문은 경쟁 가치를 통해서 열리게 됩니다. 메달의 숫자는 한정되어있고, 메달을 원하는 사람은 많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문은 절대적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나누면 됩니다. 천국에는 머물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문은 비경쟁 가치를 통해서 열리게 됩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사랑, 나눔, 배려와 같은 것들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모든 것을 나누는 희생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님은 세속의 성공과 명예보다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먼저 선택하는 사랑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변을 보면 더러운 일, 힘든 일을 늘 앞장서서 하는 봉사의 열쇠를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의 열쇠를 가진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신앙이라는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신앙의 열쇠는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어둠에 빛을,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주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아들아 너는 주님의 견책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꾸짖으실 때 낙심하지도 말라,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는 자에게 매를 든다.” 그렇습니다. 삶의 어려움을 주님의 견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절망과 좌절 속에서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이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방법과 길을 배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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