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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톨릭 신앙의 40가지 보물---스콧 한(Scott Hahn)(전 개신교 목사, 미국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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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6 ㅣ No.11151

 

2012.04.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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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가톨릭 신앙의 40가지 보물

지은이 : 스콧 한

옮긴이 : 오영민

출판사 : 바오로딸

내 용 :

 

P 140 - 147

 

성경공부

 

우리는 가톨릭 신자로서 성경을 글로 쓰인 하느님 말씀이라고 믿는다.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으로”(2티모 3,16) 쓰인 것이며, 죽은 글이 아니라 ‘살아서 활동하는’(히브 4,12) 글이다. 성경은 ‘이루어져야 하고’(루카 22,37) ‘폐기될 수 없으며’(요한 10,35), 나아가 단순히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2베드 1,20) 교회에 의해 식별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쉽게 성경을 ‘곡해하여 스스로 멸망을 불러올 수 있기’(2베드 3,16) 때문이다.

성경은 어떤 쌍날칼보다 더 날카롭다.(히브 4,12)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구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경공부에 참여하기를 권고하고(1티모 4,13)‘날마다 성경을 연구하는’(사도 17,11) 사람들을 칭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전례 없는 성경 공부의 기회를 맞고 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성경에 몰두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역사를 돌아볼 때 대다수의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없었고, 글을 읽을 수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책을 소유할 여유가 없었다. 인쇄기술이 발명되기(15세기) 전까지는 비용을 많이 들여가며 책을 어렵사리 손으로 베껴야 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가난한 신자들도 성경책을 가질 수 있다. 출판사들은 가방이나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은 성경책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 언제든 짬짬이 성경을 읽을 수 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만났을 때도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온라인 성경의 발달로 옛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성경을 탐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교부들이 일생 동안 성취할 수 없었던 연구를 단번에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발전에도 여러 조사에 따르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쇠퇴하고 있으며, 성경을 읽는 면에서도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왜 성경에 대한 지식이 이처럼 전체적으로 쇠퇴하는 것일까? 내 생각엔 그리스도인이 ‘교회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습관을 잃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교회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다’. 표현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특히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대할 때 취해야 할 마음가짐을 암시한다.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어머니인 교회의 신뢰받는 자녀다. 우리는 어떤 지역 성경 공부 그룹보다도 훨씬 더 큰 공동체 안에서 성경을 읽고 있다. 우리의 ‘공부 그룹’은 가톨릭 전통의 대변자이며, 모든 역사의 증인 집단인 성인(聖人)과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이다. 우리 안내자는 주교와 교황을 통해 활동하시는 성령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자연적·초자연적 환경에서 읽어야 하고, 또 전례의 빛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과 전례는 서로를 위해 만들어졌다. 이는 사도들과 교부들에게 당연한 사실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들 시대에는 인쇄소도 없었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필사본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읽지 못하고 주로 미사에서 성경을 접했다. 미사 자체는 성경의 놀라운 요약으로서, 미사에는 길고 상세한 신구약성경의 독서가 담겨 있었다.

초대교회는 성경을 전례서로 여겼다. 사실 정경 곧 공식적인 성경 목록은 미사 독서로 사용할 성경을 제한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성경과 전례가 연관된 시기는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 자체에서 미사의 상황이 추정된다. 사도들과 복음사가들은 마음속에 전례적 선포를 담고 성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이 쓴 대로 성경을 읽는다면 교회의 마음으로 읽게 될 것이다. 그 마음은 성찬례의 마음이며 예수님의 마음이다.

1970년대에 가톨릭교회는 미사독서, 곧 미사를 위한 성경 독서 순서를 개정했다. 독서는 현재 3년 주기로 전래되며 신구약성경 거의 전체를 포함한다. 그 독서 체계는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이 입증되어 많은 개신교 단체도 그 체계를 채택하여 자기들에게 맞게 개조하고 있다.

미사 독서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성경을 제시할 뿐 아니라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독서는 주일마다. 아니 거의 날마다 약속과 성취의 일관된 양상을 보여주는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계시의 움직임을 제시한다.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에서 드러난다.

이것이 내가 가톨릭 성경 공부를 낙관하는 이유다. 미사를 통해 오랜 세원에 걸쳐 유효성이 검증된 방식에 따라 기초부터 튼튼하게 쌓아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가톨릭 신자가 간헐적으로라도 그 프로그램을 접하고 있다. 〔주일〕미사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매우 그들의 삶 전체를 체험하게 하며, 성경은 그들이 미사를 드릴 때마다 듣게 되는 책이다.

주일과 축일 미사에는 보통 신구약 독서 3개에다 네 번째로 시편이 포함되어 있어 일반 신자들은 일 년에 15시간 정도 성경 공부에 집중하게 된다. 여기에 분명히 성경적인 미사의 다른 부분(‘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하느님의 어린 양’,‘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등)을 포함시킨다면 성경을 공부하는 연중 평균 소비 시간은 두 배에서 세 배가 된다. 날마다 미사에 참여하는 가톨릭 신자라면 그 시간은 학자들이 성경을 읽는 시간과 맞먹을 정도다.

학자들은 성경을 충실히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르쳐 주려고 방대한 책을 썼고, 성인들은 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여기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결정되고「가톨릭교회 교리서」에 요약된 성경 해석에 대한 간단한 지침 세가지를 제시한다.

 

1. ‘성경 전체의 내용과 단일성’에 유의할 것(112항)

2.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에 따라 성경을 읽을 것(113항)

3. ‘신앙의 유비’(로마 12,6 이하 참조)에 유의할 것(114항)

 

첫 번째 기준은 우리가 전후 맥락을 왜곡하는 것을 마음으로써 거룩한 성경 저자들이 의도한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한다. 모든 성경 구절의 참된 배경은 그 구절이 나타나 있는 책뿐 아니라 성경이라는 책 전체다. 어떤 성경 구절의 완전한 문학적 배경은 창세기에서 요한묵시록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을 포함한다. 성경은 단순히 서로 다른 책들의 총서가 아니라 통합된 하나의 책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준은 살아 있는 전승을 소중히 간직하는 공동체 안에 성경의 자리를 확고히 설정한다. 공동체는 성인들의 통공체(通功體)다. 우리는 우리 해석을 우리보다 앞서 간 해석자들의 전승(傳承)과 비교하여 검증한다. 체스터턴은 이 기준을 ‘죽은 이들의 민주주의’라고 했다.

선조들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 그들의 권한은 행사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이제 막 인간적 지식과 식견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여기는 오만함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가톨릭 신자들은 과거를 통해 배우는 겸손을 지녀야 한다. 나아가 전승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인들의 설교 속에, 교회의 가르침 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학문적 유행은 지나가지만 진리는 변함없이 남는다.

세 번째 기준은 성경 본문을 충만한 가톨릭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고찰하도록 한다. 성경을 하느님 영감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면 성경이 가톨릭의 모든 가르침에 내면적으로 부합하고 일치한다는 사실도 믿어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은 성경에 추가된 것이 아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추기경 시절에 “교의는 본질적으로 성경 해석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교의는 성경에 대한 교회의 무류적 해석이다.

신앙에 충실한 가톨릭 신자보다 성경 공부를 위해 더 잘 준비된 사람은 없다. 성경 공부는 박사학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결심하는 충실한 가톨릭 신자를 축복하고 그 무리가 불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몇 세기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성인은 여러분과 내가 오늘날 누리는 것보다 훨씬 부족한 상황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교회 안에서 성경을 이해하고 성인(聖人)의 길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누리고 있다.

 

 

 

✻ 마음에 새기기

 

나는 라트비아의 사제 빅토르를 떠올립니다. 그는 소비에트가 라트비아를 통치할 때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소비에트 기관원들이 볼 때 성경은 반혁명적인 책이었습니다. 기관원들이 성경을 마룻바닥에 내던지고 그에게 그 위에 올라서라고 명령했을 때 그는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무릎을 꿇고 성경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러한 행동 때문에 그는 10년 동안 시베리아 중노동에 처해졌습니다.

형을 마친 후 그는 본당으로 돌아와 미사를 드리고 복음을 읽었습니다. 그때 그는 미사 독서책을 높이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이에 사람들은 큰 소리로 하느님께 감사드렸지만 감히 그에게 박수를 보내진 못했습니다. 또 다른 도발로 해석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소비에트 통치 기간 동안 라트비아에서는 종교 서적이나 성경, 교리서의 인쇄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인쇄된 하느님 말씀이 없으면 종교도 소멸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라트비아 국민은 1세기 그리스도인처럼 성경 구절을 암기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라트니아에는 구두로 전해지는 성전(聖傳)이 있습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의 어깨 위에 서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손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 자신이 신앙의 영웅이 되고자 합니다.

라트비아에서 우리는 살아 있는 하느님 말씀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행령을 하고 순례 여행을 하며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며 말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입니다.”라고. 이를 위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라트비아에서는 미사를 드리는 데 한 시간 밖에 걸리지 않으면, 성찬례와 하느님 말씀 안에서 그분과 참되게 만나기 위한 준비운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안톤 유스트 주교, 2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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