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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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241.*]

2016-04-01 ㅣ No.1113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형제님께 무한하신 그리스도 은총 더불어 성 라파엘(하느님의 치유) 전구 은총이 또한 무한히 내려지길 기원합니다.

내려진다.의 의미가 무얼까요? 그것은 기도 바램대로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성탄 은사 더불어 주님을 믿고 닮고 따른다는 것이지요.

 

사실 미사는 완전한 기도입니다. 이에 "미사를 보는 것이 아닌 참례하는것입니다."는 권고가 주어지지요. 그렇게 하기 위하여 라파엘 형제님 또한 성당에 미사 입당하실 때 제일 먼저 그리스도 제대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으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필자가 오래전 어느 수녀님께 배운 권고이기도 한데 이를 위하여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생활속의 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 제대를 바라봅니다.

 

즉, 내 이성이 아닌 하느님의 마음으로 그것들을 보고, 보기보다 더욱 참례코자 노력하는것이지요. 이에 하느님 뜻으로 형제님과 잠시 대화 나누는 이 순간 아래의 영적 독서 권고 이전, 먼저 필자 참여중인 공동체내 라파엘 대천사 배역으로 임한 JW(22세 발달장애청년 지능은 3~7세)를 위해 기도해주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필자는 오늘 대부님이 운영하시는 치과를 다녀왔습니다. 의치도 아닌 임시용으로 빠진 앞니를 보완하니 언어 구사가 어렵군요. 그래도 감사하게 임시용이라도 무료로 해주신 대부님께 죄송함과 감사함이 더해집니다. 임시용이라 밥 먹을때도 빼야 한다는군요.

 

인간적 생각으로는 은혜를 원수로 갚은 JW가 괘씸하게도 다가왔지요. 필자는 아래의 어느글중 JW에게 물려 죽는줄 알았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문제는 이 청년+아이가 하루에 물을 100잔가량 마시고 똥, 오줌을 심하게 싸서 신부님께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의사 선생님 말씀이 물을 그렇게 많이 마시고 구토까지 이어지면 몸 안의 전해질 파괴로 매우 위험하며 입원을 권고했다고 합니다.

 

이에 그 부모님 입장이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어머니는 암으로 요양원 생활중에 계시고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가난하고 도움받기 어려운 이웃들이 많치요. 따라서 가브리엘반에 라파엘과 미카엘로 다가온 두 발달장애인 기도 기억을 해주시면 좋을듯 합니다.

 

미카엘(누가 하느님과 같은가?) 배역의 YJ(21세) 대건 안드레아는 외적으로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많기에 지금은 우리 교사진들의 또 다른 스승 배역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부수고, 찢고, 때리던 것이 매우 안정화 되었다는 말씀이지요. 간섭을 매우 싫어하는 JW는 평소 조용한데 그 폭력성이 뭉쳐있는 경우지요. 두 발달장애인을 거론한 것은 우리 모두가 주님 안전에 발달장애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즘 필자가 읽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을 권고드립니다.

- 안셀름 그린 / 마인리드 두프너

- 전현호 옮김

- 분도출판사

- 8,000원

 

- 저자 소개: 안셀름 그린 신부님은 1964년 뷔르츠부르크에서 고교 졸업후 바로 성 베네직도회 뮌스터슈작 수도원에 들어갔다(이하 중략). '칼 라너의 공헌'이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이하 중략). 1991년부터는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영적 지도신부로 봉사하고 있다.

 

- 서문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성의 역사 안에 존재해 온 여러 경향들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위로부터의 영성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이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하느님께서 성서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느낌들, 우리의 육체와 이상들, 우리의 상처와 나약함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무엇보다 먼저 수도자들의 삶 안에서 실천되었다(이하 중략).

 

만약 네가 하느님을 알고 싶으면 먼저 너 자신에 대하여 알도록 해라.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현장을 아는 것, 더 나아가서 자신의 무의식 세계까지 살펴봄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사람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 들어서서 그분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일방통행의 길이 아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은 그보다는 오히려 잘못된 길, 돌아서 가는 우회로, 실패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실망 들을 통해 더 잘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성덕이 하느님께로 내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첫째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나의 약한 부분들, 나의 무능, 더 나아가 나의 죄조차도 하느님을 향해 내 마음의 문을 여는 데에 우선적인 역할을 한다.

 

   위로부터의 영성은 우리 스스로 이미 주지하는 바와같이 이상적인 것이다. 이 영성은 명백한 목표들을 가지고 있고, 그 목표들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영성은 사람들이 자기훈련과 기도를 통해서 이 목표점들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을 실천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들은 성서를 공부하고,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을 익히며 자기 자신에 대하여 명확히 성찰하는 것이다(이하 중략).

 

위로부터의 영성은 항상 더 나아지기를 원하고, 언제나 더 높이 상승하며, 하느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 원리와 일치한다. 이러한 영성은 지난 3백년 동안 윤리신학에서 가르친 것이고,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수덕신학에서 강조해 왔다. 현대 심리학은 이러한 형태의 영성을 매우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런 영성은 인간을 내적으로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이상에 일치하지 못하는 자신의 실제 상황에 대하여 자주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적으로 분열되고 병들게 된다. 이와는 달리 초기교회의 수도자들이 수행했던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심리학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심리학적 측면에서, 인간은 자신이 처해 있는 적나라한 모습을 인식하고 인정할 경우에만 자신이 추구하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하느님의 음성을 나의 생각과 느낌, 나의 고통과 질병들 안에서 듣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참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에만 관한 것이 아니다. 또한 아래로 내려와 나 자신의 실제 모습을 알아냄으로써 하느님께 올라가는 일에만 관한 것도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이러한 것에서 훨씬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지닌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쳤을 때,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기 위한 마음의 문을 열어 나갈 수 있다. 초기교회의 수도자들은, 참된 기도는 우리의 덕행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곤궁의 심연에서 우러나온다고 했다. 곤궁의 심연에서 나오는 기도가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기도라고 한 장 라프랑스는 참된 기도에 도달하기까지 기나긴 실패를 경험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자기훈련, 금욕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수행하는 모든 노고들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된다. 우리는 그러한 행위를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의 불을 지배하려고 노력했던 그런 헛된 행위로 볼 수 있다. 완전성을 통해 하느님께 도달하려고 노력할 때는 그 완전성의 단계가 어디까지 나아가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길은 예수님이 복음에서 알려준 길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완전성을 향한 사다리를 놓은 일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겸손의이라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제시하셨다. ...,(이하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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