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자유게시판

아내란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의 죽음.

스크랩 인쇄

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2-03-27 ㅣ No.31435

 어떤 아내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사업을 벌려 그래도 젊은 나이에 비해서는 꽤 성공했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실했습니다.

 

허나 처음 그 사업을 벌일때만해도 그 부부는 힘들어 했습니다.

 

새로이 벌려 놓은 사업에 의한 두려움, 성공과 실패냐는 기로에서의 그 위기감...

 

남편은 정말 주위에서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하나 학교에 보내고 인형공장에서 인형들을 집으로 가져와 인형 눈을 붙이는 부업을 했습니다.

 

하나 붙일때마다 단돈 1~2원...

 

하루종일 죽어라 해봐야 하루일당으로 겨우 2~3천원...

 

그래도 아내는 콩나물값이나마 벌리는것이 신기했는지 그만 청승 떨라는 남편의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그 인형눈알을 붙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안에서 잔치를 해야하는 일이 벌어져 남편이 술심부름을 가게 되었답니다.

 

부인은 술을 사러 나가는 남편에게 어디어디 수퍼가 10원정도 싸니까 꼭 거기서 사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답니다.

 

알았다고 대답은 건성으로 했지만 남편은 다소 먼 거리에 있는 그 수퍼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수퍼에서 그냥 사왔답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부인의 바가지를 접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인이 나는 단 1원을 벌기 위해서 고생하는데 이게 뭐냐며 엉엉 울기 시작하더랍니다.

 

순간 남편은 눈에서 불똥이 튈 정도로 화가 났고 그 부부는 대판 전쟁을 치루고 화가난 남편이 그 인형들을 다 내다 버렸습니다.

 

그 남편은 저와는 친구녀석이지요.

 

그 녀석 저와 술을 함께 하며 이런말을 하더군요.

 

"사람이 작게 노니까 정말 작아지더라. 돈 몇천원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이러다 사람 버릴것 같아서 내가 못하게 했다."

 

하며 쓴 소주잔을 기울이더군요.

 

그후로 부인은 인형 눈알 붙이는 작업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우리 신혼집에 집들이를 한다며 녀석이 왔었습니다.

 

실컷 자기 아내 얘기를 흉보는듯 위장했지만 구구절절이 그것은 자랑이었고 아내에 대한 기특함이 가득 차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지요.

 

모두들 팔불출, 월남치마, 공처가, 못난놈! 이라며 우스개 삼아 놀려댔습니다.

 

총각시절 저와 녀석이 과음을 하여 녀석이 몸을 못가누기에 겨우 택시 태워 함께 녀석의 집으로 간적이 있었습니다.

 

현관문앞에서 큰대자로 쓰러진 녀석을 저와 녀석의 아내가 겨우 끌어내어 방에 눕히고 저도 그집에서 하루 신세를 진적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콩나물국을 준비한 그의 아내에게 저 엄청 원망 들었을때 세상의 아내들은 왜? 우리 남편이 주동자라는 생각을 한번도 안해보고 무조건 상대방이 주동자라고만 몰아 부칠까? 한적이 있었지요.

 

어쨌든 그 부부는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황사가 자욱히 낀 봄철... 녀석의 아내가 갑자기 열이 나며 아프기 시작해서 요즘 황사로 인해 감기에 걸렸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약을 지어다 주었답니다.

 

그래도 낫지 않기에 동네 개인병원으로 갔더니 그곳에서 혹시 혈액종양일지도 모르니 큰병원에 가보라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평상시 건강하던 아내에게 그런소리를 한 의사를 녀석은 돌팔이라고 조롱하며 몹시 불쾌해 했다더군요.

 

그래도 찜찜한 구석이 있어서 한번 속는셈치고 가보자고 둘은 여느때처럼 팔짱을 끼고 큰 종합병원으로 향했답니다.

 

병원을 가면서 둘이는 웃으며 대화도 하고 아들녀석 얘기도 나누었답니다.

 

정밀검사를 받자고 입원시키라해서 해주었을때만도 나중에 그 동네 병원 돌팔이 의사에게 항의할 생각이었답니다.

 

그러던 녀석의 아내가 입원한지 5일만에 정말 믿기지도 않는 주검으로 변했 버렸답니다.

 

아침 9시반에 골수검사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아침 8시에 운명을 했답니다.

 

제가 그 연락을 받은 시간이 공교롭게도 아침 9시반이었습니다.

 

전 그 연락을 받을때 몹시도 고얀 농담을 하는줄 알았습니다.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하루종일 남의일 같지 않음에 심란해하다 퇴근후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허탈하게 면도하지 않은 얼굴로 녀석이 자신의 분신인 아들과 함께 그 빈소를 지키는 모습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것 같았습니다.

 

두 부자(父子)가 검은 양복 나란히 입고 저와 맞절을 하며 그 빈소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기가 막혔습니다.

 

나는 아무 해줄말이 없었습니다.

 

녀석은 저의 손을 잡으며 고맙다란 말만 되뇌이더군요.

 

차라리 지병을 앓다가 갔어도 이렇게 기가 차지는 않았을거라며...아내의 운명 자리도 지키지 못했음에 가슴을 치는 녀석을 보자 시야가 흐려지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난 울음을 겨우 참으며 녀석의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아이의 아픔과 힘듦이 앞으로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메었습니다.

 

"너 몇학년이니?" 하는 싱거운 질문이 제맘과는 달리 툭 나왔습니다.

 

그 꼬마녀석은 하루종일 손님을 맞느라 피곤한 얼굴로, 그러나 대답은 또렷하게 "4학년이요!" 하는데 슬프다 못해 기가 꽉 찰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있다가 그 병원을 나서는데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흔히 하는 말대로 사는게 이렇게 어이없이 허무할까?

 

지금 내육신 멀쩡함이 또 가족의 건강함이 골백번 주님께 감사해야하는 큰 은총인지 우리는 잊고 사는것 같습니다.

 

저는 급성 백혈병이란 병을 잘 몰랐습니다.

 

아니 설사 다른병일지라도 사람은 이렇게 예고없이 한순간에 갈수도 있는 한낱 나약한 존재이건만 우리는 얼마나 오만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에 택시에 몸을 싣고 집앞에서 내리자 아내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갑자기 아내가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기다릴수 있는 멀쩡한 아내가 있음에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것 같았습니다.

 

남아있는 자의 슬픔을 걱정해주는 아내가 또한 고마왔습니다.

 

집으로 걸어들어오는 몇발자욱... 저는 아내의 손을 꼭 잡을수가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몇번씩이나 감사해하며...

 

오늘 이시간 그렇게 죽어간 영혼들을 위해 기도 합니다.



1,305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