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신앙상담 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Re:미사 중 무릎을 꿇을 수 없는 상황일 때 앉아 있어도 되나요?

인쇄

사랑과영혼 [121.131.241.*]

2020-07-03 ㅣ No.12375

안녕하세요? 미사 중 무릎을 꿇어야 할 때, 무릎이 아파서 장궤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의자에 앉아있어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나들이 간 처지라 몇 주 더 머물러야 하는데 어느 성당에서는 신부님이 장궤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서서 있으라고 공지사항 시간에 공지까지 하셨지요. 성당 중간 쯤 자리를 잡았는데 혼자만 서 있기가 넘 민망스러웠어요. 그 다음부터는 성당에 가기가 매우 부담스럽네요. 꼭 서서 있어야 하는 교회 법입니까? 전례를 잘 몰라서 알고 싶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 나라 법은 세상 법과 180도 다르기에 성 토마스 사도께 의탁하여 아래와 같은 말씀을 전합니다.


"나는 너희가 내게서 평화를 얻게 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이미 세상을 이겼다."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6, 33)


시람은 누구나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아파서 누워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다시 일어나 걷고 싶어집니다. 자매님 마음 한 켠에도 왜 신부님이 그러셨을까? 도대체 전례가 무엇이길레 그렇게 엄하게 말씀하셨을까?란 의문이 들 것입니다.


이날 쌍둥이 토마스 사도 축일을 맞아 전례와 말씀이 왜 이리 섞갈릴까?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우수겟 소리입니다만 필자가 아는 ○○시낭송협회장 율리에따 자매는 쉬는 교우인데 낭송을 매우 잘한답니다. 숫기가 약하고 누가 뭐라고 하면 곧바로 잠수를 타고 항거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소리는 가녀리고 남자들로 하여금 보호심리를 자극하기에 여자들이 볼 때는 저런 불여시 같은~~ 등의 속닥속닥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잠수함을 타고 할배 시인들도 도무지 엄마인지 여자인지 쌍동이 토마스 성인을 닮은 그것에 취한 지남철 효과로 그녀는 잿밥에 맘을 둔 형상으로 매우 명망 있는(?) 문인들만 독식한다는 정채성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가끔 즐겁게 수다를 떨 때는 "여러분 아름다운 밤이에요~" 장미희 음색을 닮은 그녀에게 "아니에요, 아름다운 대낮이네요"로 응답하는 저는 "河기사~ 저 여의도 엘지 쌍둥이 빌딩한테 가서 누가 형이지 물어보고 와~"로 리시브를 하는데 그런 메아리로 뭇 백성들 뱃살을 구겨줍니다.


하여 한 동안 소원해진 그녀에게 개인 카톡으로 "오늘 토마스 성인한테 누가 형이냐고 묻고 온다고 흔적을 남겨두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모두를 열 손가락 모두 사랑하는 우리 맘 이상으로 기다려 주시며 의인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시고 오셨지요. 오늘 성 토마스 사도 축일을 맞아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렉시오 디비나로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한 20, 29)


이 말씀 또한 여행지 성당에서의 엄부 자모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 마리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보, 딸아이 무릅이 아파 안되겠오, 아프다고만 생각 말고 일어나 걷게 하는 방법을 써야겠소" 이에 성모님께서는 "네에, 그렇게 하세요 하며 속으로는......, 에효, 이 남중 내편께 어떻게 해야 1. 먹여주고, 2. 재워주고, 3. 내비 둘 수 있을까? 하면서 잘근잘근 @%^&$!*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은 선택된 제자들을 더 시험하시고 쉬지 않고 잠자지 말고 복음을 설파하라 하시지만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악하여 페이스 북은 그나마 1,000명이 클릭이라도 할 때 폭발적인 파도 몰이 유튜브는 복음 전파 공유 시스템은 없고 퇴패 아프리카 방송의 물질주의, 생명경시 엑기스만 빼서 마귀들 득실 득실 거리거리는 상황입니다. 하여 가사, 원목을 병행하시는 춘천교구 정원일 신부님의 매일 9시간 관상기도 시청률은 10년 활동이어도 유튜브는 양쪽 모두 10명 미만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빛이 들어올 때 마귀의 우두머리 사탄이 자매님을 어떻게든지 성당 가기 싫도록 수를 쓴 것이기에 내 안의 마귀 전교를 위해서도 김정은, 김여정 선교를 위해서도 신의 아버지 신부님을 위해서도 주모경과 자유 기도를 바쳐주시면 사탄도 어쩔 수 없는 철창에 갇혀 숨막혀 죽으려고 하겠지만 굶어 죽고 회개를 할 것입니다. 그전에 빈틈을 노려 도망갈 궁리를 할 것이니 낙태, 재왕절개, 교통사고, 이혼률 세계 1, 2위에 3위로 밀려오는 때거지 자살마들까지 용서의 탄창, 화해의 탄환 사랑의 총으로 죽여 없애야 합니다.


그렇게 영적 운동을 하시면 아침에도 하느님을 저버리고 돈 벌 궁리 사기 칠 궁리 복수할 궁리 자아욕이 앞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 중 좁은 길로 가기를 권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영육 튼튼 보속 또한 기쁘개 휴가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이는 산 이나 죽은 이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우실 때나 한결같으신 알파, 오메가의 주님 신호등인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 하십시오.

두려워만 하지 마시고 그 깊은 정 속의 유혹도 자녀 보호로 타파하십시오.

그것을 이겨내고 싶으면 늘 깨어나는 성무의 일도를 클릭하시어 그냥 신부님도 초대하며 기도해보십시오.


전례와 말씀은 과연 둘 중에 어떤 은사가 성부와 성모님 몫일까 섞갈릴 것입니다. 신부님께서 물(죽음)과 피(생명)를 섞갈림 자체를 거양 하시면서 사랑하는 아들, 딸들의 숙명을. 운명을 지고지순하시며 전능하신 천주 성부께 의탁하시어 바꿔 주시도록 안전 지대로 이끄실 수 있도록 또한 인간 자아로 마침내 보고서야 믿는 토마스가 아닌 성부의 아픔들(다섯 상처를 기도, 공부, 봉사, 성사, 공동체 생활로) 속속들이 만져보고 깨달은 토마스는 보지 않고도 믿는 행복한 이스라엘 백성을 찾고자 네 가지(천주존재, 상선벌악, 삼위일체, 강생구속) 도시락을 챙겨 소풍 떠나는 계시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하신 말씀과 전례 특전이오니 자매님도 그런 순례지의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드리면 됩니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옹아리도 좋치요. 그리 계속 기도하시면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의 화관도 씌워 주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계속하여 궁금한 점이나 분심 드시면 신앙 상담을 나눕시다.


오늘 그러한 독산동 성당(29일 뒤늦게 뵈러 갔더니 홍제동에 이어 벌써 10개월차시더군요.)의 유종만 바오로 신부님이 페이스북에 올려주신 글 하나 퍼 오겠습니다.


기적(奇跡)의 비결
뉴욕의 한 공동묘지 管理人이 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여인이 일주일에 5달러씩 돈을 보내 왔습니다.
그리고 편지(便紙)도 같이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몸이 아파서 아들 묘에 갈 수가 없습니다.
아들 묘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신선한 꽃을 갈아 꽂아 주시기 바랍니다."
한 주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수년이 흘렀습니다.
정말 꾸준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공동묘지를 한 부인(夫人)이 방문하였습니다.
차가 도착하자 차 뒷자리에 앉아 있던 夫人
을 운전기사가 부축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몸이 쓰러질 듯 흔들렸습니다.
곧 죽을 것같은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슴에는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管理人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1주일에 한 번씩 편지와 5불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제 이름은 아담스입니다.
제가 오늘 직접 오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나의 담당 의사(醫師)가 내 生命이 몇 주 못 갈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世上 떠나기 전에 내 사랑하는 아들의 무덤에 내가 손수 꽃다발을 갖다 놓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管理人이 말했습니다.
"夫人. 그렇군요.
그런데 나는 夫人에게 용서(容恕)받을 것이 있습니다.
저는 매주 夫人이 보내준 돈을 가지고 꽃을 사서 무덤 앞에 놓을 때마다 夫人에 대해서 유감스럽게 생각해왔습니다."
夫人은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관리인(管理人)이 말했습니다.
"꽃은 불과 몇 시간도 안 되어 다 시들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썩어 냄새가 납니다.
그 무덤에 꽃을 꽂아 놓아도 누구 하나 향기(香氣)를 맡을 사람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냄새를 맡습니까? 좋아합니까?
그것은 夫人의 생각일 뿐이고, 죽은 사람은 보지도 못 하고 즐기지도 못 합니다.
저는 敎會 나가는 신자(信者)입니다.
교회(敎會) 옆에 공립병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가족(家族)이 없이 혼자 입원하여 있는 환자(患者)들에게 꽃을 갖다 주곤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꽃을 주면 너무 좋아 하였습니다.
환하게 웃었습니다.
냄새도 맡고 기뻐하였습니다.
夫人께서도 매주마다 이제는 공동묘지에 꽃을 가져오지 말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한번 갖다 줘 보십시오.
죽은 사람에게 주어서 무엇합니까?
산 사람에게 주어야지요."
이 말을 듣고 夫人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 후 3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그 夫人이 직접 운전을 하고 健康한 모습으로 공동묘지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관리인님!
제가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꽃을 갖다 주었습니다.
아들에게 일주일에 5불씩 쓰던 돈을 아픈 이들에게 썼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너무 너무 좋아하더군요.
좋아하는 그들의 얼굴표정을 바라볼 때 내 마음도 기뻤습니다.
내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러면서 신경성(神經性) 질환(疾患)도 떠나고 몸이 이렇게 健康하게 회복(回復)이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 눈높이로 살지 않고 소외된 사람 속에 들어가 그들 눈높이로 살았더니 기적(奇跡)이 일어났습니다.
삶의 눈높이를 낮추었더니 하느님께서 祝福하셨습니다.
자아연민에 빠지면 나 자신이 죽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됩시다.

 



331 0댓글쓰기

신고

 

리스트